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9)

소설로 부르는 고려속요

by 휴헌 간호윤

9장. 비 오다가 개어 눈 많이 내리신 날에


곰이와 돌이는 일연 스님께 말씀드리고 절을 나섰다. 병점으로 가기 위해선 손돌목 쪽으로 건너는 것이 가장 빨랐다.

일찍 나섰건만 강화도를 건넜을 때, 이미 하늘엔 성근별이 하나 둘 자리했다. 손돌목의 물살이 너무 거칠어 뱃사공이 배를 띄울 수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돌이와 곰이가 통사정을 하여 겨우 탈 수 있었지만 물살이 어찌나 거친지 한 나절을 넘기도록 씨름하고서야 건널 수 있었다.

겨우 건너 와서야 뱃사공 늙은이는 건너온 강화도 하늘에 눈길을 두고 혼잣말을 하였다.

“여름에는 사공, 겨울철엔 뱃놈이라더니. 손돌의 원한이 맺혔나보네, 손돌 추위란 말도 그렇고. 하긴 원, 그럴만도 하지. 그렇게 죽었으니. 그나저나 날이 벌써 이렇게 어둑한데도 길을 가려나. 산 사람은 살아야지.”

겨울철 해는 짧았다. 서산마루에 노루꼬리처럼 남았던 노을은 이내 사라졌다. 제 아무리 밤길이 붇는다 해도 길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관솔에 불을 밝혀 밤을 낮 삼아 허위허위 떡전거리에 도착했을 때, 서늘한 아침 안개만이 떡전거리에 옴두꺼비처럼 납작 엎드려 있었다. 이미 떡전거리의 집들은 모두 불에 타거나 허물어져 예전의 모습은 없었다. 돌이네 집이며 곰이네 집은 아예 형체조차 없었다. 안개가 꼈다하지만 이미 주인 없는 무덤이 되어버린 듯한 떡전거리가 돌이의 눈에 그대로 들어왔다.


이 나라의 불행을 떡전거리가 한몫에 받아낸 듯 몽고군의 침입은 그대로 흔적을 남겼다. 길거리도 스산하기 짝이 없었고 살아남은 자들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곰이와 돌이가 정표를 새겨 둔 감나무도 반은 불탔고 반은 부려져나갔다. 우물둥치엔 형체를 알 수 없는 시체 두엇이 깨진 두레박을 산소 삼아 쓰러져 있었다. 아니 시체는 그 뿐이 아니었다.

산으로 숨어 간신히 살아남았다는 동고리를 본 것은 곰이와 돌이가 시체들을 수습하여 간신히 타다 남은 짚으로 가려준 뒤였다. 동고리는 곰이의 엄니는 죽었으며 꽃님이와 달님이는 몽고놈들에게 끌려갔다는 말과 그로부터 며칠 뒤 죽이 아저씨가 왔었다고 하였다. 말을 하는 동고리의 눈에 핏발이 섰고 공포가 스쳤다. 늘 사람이 좋다 못해 어리눅고 늘쩡늘쩡한 동고리였다. 그날 일이 얼마나 가혹 했는지가 그 눈에서 짐작되었다.

동고리가 그 핏발 선 눈으로 콩팔칠팔 떠들며 데리고 간 곳은 곰이의 엄니와 동네 아줌니들의 시체더미였다. 장례를 치를 수도 없어 그대로 벌말 들 한 귀퉁이에 버려두었다. 얼어붙은 시체더미 위에 개미와 구더기가 끓고 까마귀와 솔개가 떼를 지어 앉아 파먹었다. 시체는 누가 누구인지도 알 수도 없었다. 제 아무리 땅보탬이 되는 게 인생이라지만, 참혹한 이 지경을 보고 곰이는 울지도 못 했다. 땅이 얼어붙어 덮을 흙조차 없었다.

곰이는,

“이런 생눈 나올 일이 있나. 이런 제길헐 놈들! 제길헐 놈들!”

만 되뇌었다.

곰이와 돌이는 동네로가 타다 남은 짚을 가져다 대충 덮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는 곧 등걸잠을 자며 온 길을 되짚어 갑곶을 거쳐 강화도로 다시 들어왔다. 곰이의 엄니의 주검도 못 찾았지만 살아있을지도 모를 꽃님이와 달님이도 급하였다. 몽고로 끌려 간 꽃님이와 달님이를 찾으려면 죽이 아저씨의 말대로 힘 있는 자가 필요했고 힘 있는 자들은 죄다 강화도에 있었다.


우선 일연 스님에게 말씀을 드렸으나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만 욀 뿐이었다. 승려로서 깨끗한 삶을 사는 일연 스님이었다. 힘 있는 자들을 알지도, 또 누구에게 청탁을 넣을 만한 터수도 못되었다. 돌이에게는 일연 스님의 말씀도 중이 빗질하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곰이와 돌이는 하릴없이 북산에 올랐다. 북산(송악산)에서 내려다 본 이 나라 왕이 머무는 강화도는 마치 비단을 펼쳐 놓은 듯, 도끼로 깎아놓은 듯 딴 세상이었다. 궁궐과 관아건물이 즐비하였고 정궁 이외에도 행궁·이궁·가궐을 비롯하여 수많은 궁과 궐이 강화도를 딴 세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정문은 승평문이고, 양쪽에 삼층루의 문이 두 개, 동쪽엔 광화문이 있으며, 바닷가를 따라 외성도 쌓았다. 이 성은 흙과 돌을 섞어서 쌓은 성으로 바닷길을 따라 강화도를 맴돈다. 이 외성 안에 중성과 강화읍성이란 내성을 더 쌓고는 그 안에 궁궐을 두어 고려의 왕과 신료들은 전쟁과는 별개인 그들만의 삶을 살았다. 끼니때마다 떡하니 붙어 앉은 호화로운 집들에서는 밥 짓는 연기가 서로 잇달았다.

곰이가 벌떡 일어나,

“제길헐! 저놈들은 저렇게 잘 사는데…우리는 천생 누룽지 팔자란 말인가.”

하며 돌멩이 하나를 집어 아래로 던졌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돌은 허공에 잠시 떠있다 이내 숲으로 떨어졌다.

돌이는 열흘 전에 읽은 최자(崔滋)라는 이의 <삼도부>란 글이 불현 듯 생각났다. 그야말로 화려함의 극치였다.


“공경들의 저택은 10리에 뻗쳤는데 엄청난 큰 누각은 봉황이 춤추는 듯했다. 서늘한 마루하며, 따스한 방이 즐비하며 금벽이 휘황한데 단청이 늘어섰고 비단으로 기둥 싸고 채전으로 땅을 깔았다. 주변엔 온갖 진기한 나무와 이름난 화초들로 꾸며 봄의 꽃이 피고 여름엔 열매를 맺었다. 푸른 숲에 붉은 대청꽃이 그윽한 향내를 뿜고, 퍼진 향기가 그늘을 만들었다. 여기에 한껏 곱고 아양을 떠는 뒷방의 미인들은 구름같은 옷에 안개같이 소매 없는 웃옷을 입고 갖은 자태와 요염을 부리며 열 지어 둘러 모시고 있다. 화문석 비단요를 깔고 천 잔에 담긴 술에 생황소리와 북소리 드높구나. 그야말로 신선이 마시는 술이 이 아닌가.…”



“돌이야! 저게 연미정이지? 제길헐 놈들! 지놈들은 여기까지 와서도 자식 교육이로군.”

곰이가 이렇게 말하며 다시 돌멩이 하나를 짚었다. 돌이의 눈에 저 널리 연미정(燕尾亭)이 들어왔다. 한강과 임진강의 합해진 물줄기는 하나는 서해로, 또 하나는 강화해협으로 흘렀다. 이 모양이 마치 제비꼬리 같다고 해서 정자 이름을 연미정이라 지었다. 연미정은 자연경관을 보며 풍류를 즐기고 학문을 하라는 교육기관이었다.

나라는 어찌되든 내몰라라 하면서도 제 자식만 교육시키는 저들의 행태가 돌이는 참으로 무섭다. 그것은 대를 이어 자기와 같은 삶을 만들어 주려는 글자를 아는 이들의 전형적인 꾀부림이다. 물론 이 모든 공사의 노역은 백정의 몫이었다.

돌이는 ‘저것이 힘이 아닌가?’하고 생각했다. 개경의 궁궐과 비슷하게 지어 산의 이름도 생게망게 송악이라 지었다는 이 산이며, 호화로운 궁궐과 고관대작들의 으리으리한 저 집이 힘이었다.

고종 왕 때(1234년)에는 어떤 중이 “부소산(扶蘇山:송악산)에서 나뉘어 좌소(左蘇)가 된 것을 아사달(阿思達)이라 하는데 옛날 양주(楊州) 땅입니다. 이곳에 궁궐을 지으면 나라가 8백 년은 연장될 수 있습니다”

라는 말을 믿고서 남경(南京)에 가짜 궁궐을 만들고 왕의 옷을 가져다놓았다고도 한다.

저들은 힘을 지키려면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았다.


작년 가을, 강화도에 들어와 처음으로 이 북산에 오른 돌이는 그 웅장함에 놀라 일연 스님에게 물었다.

“시님! 북산에 올라가 보니 궁궐이 되게 대단하던데요. 그런데 이 나라 셔울도 지키지 못하여 이리 들어온 저 사람들의 힘이 짜장 힘인지 모르겠시유?”

그때 일연 스님은 북산을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사백장란(四百瘴難:사람의 몸은 땅·물·불·바람, 네 요소로 되었고 각각 101종의 병이 있다한다. 모두 404종의 병을 이르는 말)인 세상사. …난 『삼국유사』나 써야겠다”라는 얼토당토 않는 말만 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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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이와 돌이는 의논 끝에 강화도의 세력가인 임연(林衍,?~1270)의 도방(都房)이 되었다. 돌이는 백정들이 사족을 못 쓰고 오금을 못 펴게 하는 힘이 저들에게 있다고 생각하였다. 일연 스님의 글이 아니라, 저들의 힘만이 달님이와 꽃님이를 데려 올 수 있다고 믿었다.

곰이도 돌이의 의견에 순순히 따랐다.

임연은 진천 사람이었다. 고을 아전 딸의 아들이라 하는데 몽고병과 싸운 공으로 작은 벼슬아치를 지내다 지금 이 나라를 움직이는 김준(金俊)의 눈에 들었다. 임연의 정치적 지위가 크게 상승하자 여지저기 견제를 받게 되면서 그는 자신의 사병집단인 삼별초와 육번도방(六番都房)을 크게 늘리기 시작했다. 때마침 골격이 좋은 곰이와 글을 읽을 줄 아는 돌이가 지원을 하였고 뽑히게 되었다.


돌이와 곰이는 임연의 도방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그에 대한 말은 들었다. 하지만 도방에 들어가서 직접 본 그의 인상은 참으로 험악하였다. 눈은 벌의 눈이요, 목청은 승냥이 소리를 냈고 전체적으로 고약하기 짝이 없었다. 또 몸은 어찌나 민첩하고 힘이 센지 거꾸로 서서 팔을 짚고 다니고 혼자 이엉을 들어서 지붕 위로 던져 올릴 정도였다. 하지만 꾀는 여간내기가 아니었다. 왕에게 잘 보이고자 왕 앞에서 휘파람도 불고 궁궐 기둥에 매달려 원숭이 흉내도 거리낌 없이 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임연의 힘을 빌려 달님이와 꽃님이 언니를 찾으려던 돌이와 곰이의 계획은 점점 멀어져만 갔다. 몸뚱이 뿐인 곰이와 돌이는 하루하루 그저 살아가기조차 힘들었다. 임연과 아들인 임유무는 삼별초와 육번도방 군사들을 제 집 종 부리 듯하였다.

그렇게 한 해를 넘기었다.

이제는 도리가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돌이와 곰이는 달님이와 꽃님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몰랐다. 아무런 힘도 없는 자신들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돌이와 곰이는 언제부터인지 서로 말조차도 하지 않았다.

도방에서 나오던 곰이가 돌이를 보자 넋두리를 하였다.

“쳇! 오늘은 아들 자식이 놀아나는 기생집까지 따라가야 하네. 이까짓 데가 무신 힘이 있다고 들어가자 해서는…”

곰이의 넋두리가 돌이를 두고 하는 말임을 돌이가 모를 리 없었다. 사실 임연의 도방에 들어가자는 말을 돌이가 먼저 하지 않았더라도 당시로는 그 수밖에 없다는 것을 곰이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돌이는 아무 말도 없이 임유무를 수행할 준비를 하였다.


아직 해가 떨어지지도 않았건만 임연의 아들 임유무(林惟茂, ?~1270)와 사위인 홍규(洪奎, ?∼1316)는 기생집으로 향했다. 임유무와 홍규는 검은 복두를 쓰고 화려한 꽃무늬를 수놓은 황동 가죽 허리띠를 두르고 가죽신을 신은 관인 차림이었다. 오늘은 명가군(鳴笳軍,행렬을 따라가며 태평소를 불던 군악대)까지 앞세우고 태평소를 불어대며 몹시 거만하게 기세를 높였다. 어찌나 요란한 지 임연의 행차와 다를 바 없었다.

돌이와 곰이는 이 행렬의 맨 뒤를 따라가 기생집 문 밖에서 보초를 섰다. 이 기생집은 처음 와보는 데 꽤 크고 화려했다. 아직 해도 저물지 않았건만 여기저기 불도 벌써 켜 놓았다. 보초는 두 사람씩 짝을 지어 교대로 잔치가 끝날 때까지 계속 서야했다. 돌이와 곰이가 먼저 한 조로 보초를 섰다.

얼마나 지났을까? 빨갛게 대춧빛처럼 여문 저녁 저녁노을은 한참 전이었다. 늘 이맘때면 떡전거리에도 대춧빛처럼 여문 저녁놀이 떨어졌다. 곰이와 돌이는 말도 없이 멍하니 하늘만 보았다. 딱히 할 말도 없었다.

벌써 하늘엔 초저녁별이 내려앉은 지도 오래되었다.

“아니! 이놈들이 우리보다 먼저 들어왔다고 행세부리네. 오줌도 마려운데.”

곰이가 볼멘소리를 할 때쯤 보초 교대가 나왔다. 보초를 교대하고 곰이는 소피를 보러 저쪽 길가로 가고 돌이는 목이 말라 잠시 집안으로 들어가 부엌을 찾을 때였다. 기방 안에서 아름다운 목소리가 밖으로 나왔다. 그것은 달님이가 가끔씩 부르던 노래였다.


비 오다가 개어 눈 많이 내리신 날에

서린 서걱서걱 좁게 굽어든 길에

다롱디 우셔마득 사리마득 너즈세 너우지

잠 앗아간 내 님을 생각하여 깃든

열명길에(옷깃일랑 열며) 자러 오리이까


<이상곡>이란 속요이다. ‘이상(履霜)’은 서리를 밟는다는 뜻이다. 서리를 밟게 되는 늦가을이면 장차 단단한 얼음을 밟는 겨울이 올 것을 염려하는 뜻이다. 또 세상을 살다보면 작은 조짐에서 앞으로 닥칠 힘든 일을 살필 줄 알아야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였다.


돌이는 서리 내린 밤길을 밟으며 달님이네 집과 제 집을 오가던 그 때가 떠올랐다. 그렇게 마실을 오갈 때면 하늘에 떠있는 새초롬한 달님도 함께 따라왔었다.

돌이가 이런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다시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죵죵! 벽력 아! 삶은 무간지옥에 떨어지리

곧 죽어질 내 몸이

죵죵! 벽력 아! 삶은 무간지옥에 떨어지리

곧 죽어질 내 몸이

내 님을 두옵고 다른 산을 걷겠는가

이렇게 저렇게

이렇게 저렇게 하려던 기약입니까

아아! 님아!

함께 살아 갈 날을 기약합니다. <이상곡>


‘아! 이 목소리는!’

하마터면 돌이는 큰 소리로 외칠 뻔하였다. 돌이는 처음엔 제 귀를 의심했으나 분명 달님이의 목소리였다. 노랫가락은 화려한 들장지로 흘러나와 하늘로 높이 날아올랐다.

비록 달님이를 만나 무간지옥에 떨어진다 한들 어떻다는 말인가. 그래 이로 인해 죽는다한들 달님이와 함께라면 난 얼마든 서걱이는 서리를 밟아도 좋다.

돌이는 정신이 없었다. 소리 나는 기방으로 뛰어 들어 가려는데 어느새 왔는지 곰이 가 가로 막았다.

곰이도 소피를 보러 기생집 뒤채를 돌아가다가 노랫소리를 들었다. 분명 달님이 목소리인 것 같아 돌이에게 달려 온 것이었다.

“돌아! 다음에, 다음에.”

“헝! 저 노랫소리는 달님이가 분명하잖아.”

“내 귀가 바늘귀냐? 나도 들었다. 그렇지만 긴가민가 확실치도 않구. 저 보초 서는 놈들이 보면 어쩌려고. 저쪽으로 가자.”


곰이는 늘 귀둥대둥 떠들어대고 되나마나한 행동이 앞서는 것과는 달랐다. 사람들이 안 보이는 울타리 깨로 끌고 온 곰이는 제법 조리 있게 돌이에게 말했다.

“돌이야! 저 자리가 어떤 자리라구. 안 된다. 들어갈 수도 없지만 또 들어가선 뭘 어떻게 할 건데. ‘송도 오이장수 꼴’ 나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구. 그럼 우린 저 놈들 손에 죽어. 일단 다음 기회를 보자. 잉.”

들음들음 곰이 이야기가 맞았다. 저들은 지금 이 고려를 쥐락펴락하는 권력을 쥔 자들이었다. 저들에게 돌이나 곰이는 한낱 자신들의 삶에 부역하기 위해 공출된 인생정도로 밖에 더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돌이라고 모를 리 없었다.

돌이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에이, 씨! 이런 드런 놈의 시상!”

돌이는 주먹으로 제 가슴을 쳤다. 까딱 잘못했다간 파리 목숨과 다를 게 없는 게 제 목숨이었다. 돌이는 올려다본 밤하늘에 박혀 있는 별은 잔뜩 물을 머금었다.

‘이런 가위눌리는 현실을 얼마나 더 견뎌야 할까.…’

돌이의 생각도 새벽이슬처럼 물기를 머금으며 주저앉았다.

임유무와 홍규의 놀이는 밤새 이어졌다. 그렇게 까만 밤을 하얗게 새고 새벽닭과 새벽안개가 아침을 부를 때 쯤 되어서야 자리가 파하였다. 그날 돌이와 곰이는 달님이를 끝내 보지 못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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