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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헌 간호윤 Oct 13. 2021

그 시절, 지팡나무

그 나무가 있던 자리는 -

지팡나무. 그렇게 불렀다.(사전을 찾아보니 지팡나무라는 명칭은 없었다.) 우연히 인근 학교 운동장 가에서 내 예전을 동여 맨 이 나무를 보았다. 내 30대 이전의 추억 중, 이 나무는 그 자체가 집이고 고향이었다. 내 시골집 바깥 마당가는 이 지팡나무 10여 그루가 병풍처럼 둘러 있었고 그 뒤로 가녀린 시냇물이 흘렀다.


꼬마둥이 시절, 나와 동네 꼬맹이들은 이 나무에 올라 즐겨 놀았다. 살에 닿는 가슬가슬한 잎도 좋았고 또 가지가 억세어 우리들의 조그만 몸을 잘 지탱해 주어서였다.  나무 열매를 훑어 던져 맞히는 놀이를 자주해서 늘 지팡나무가에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유독 이 나무에는 어른  손톱만 한 청개구리가 많았는데, 누군가 이 청개구리를 먹으면 머리가 좋아진다 하는 낭설을 퍼뜨렸고. ㅡㅡㅡ그러하여 수많은  청개구리 군과 양이 생체로 내 뱃속에 수장되는 참사를 겪기도 하였다.


그러던 내가 눈물을 훔치며 서울로 유학  올 때 뒤돌아 보고 또 본 것이 이 지팡나무였다. 지팡나무의 배웅을 받고 떠난 내가 또 고향을 찾아 동네 어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나를 맞이해 준 것도 이 나무였다.


스물다섯 살 군대 가던 어느 늦겨울 날,  "내가 너 제대하는 것을 볼까?" 라며 치맛자락으로 눈물을 닦아내시던 내 할머니. 그 할머니가 잘 다녀오라고 손을 흔드시며 몸을 의지하신 것도  이 나무였다. 그날 내 할머니는 그렇게 나와 영영 만나지 못할  이별을 하셨다.


이제 그 지팡나무는 내 시골집 마당가에 한 그루도 없다. 지팡나무가 있던 자리는 모두 시멘트가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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