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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헌 간호윤 Oct 16. 2021

어머니

되새김질하듯 새겨지는, 어-머-니란 석 자


(권정생문학관에서 찍어 온 '어머니' 조형)

1.
"아범! 오늘 바쁜가? 내가 많이 아픈데---"
아침 9시. 수화기를 통해 전해온 어머니의 말씀이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 10여 년을 묵묵히 시골의 큰 집을 지켜오신 분이다. 아들에게 귀찮은 말씀은 물론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급히 차를 몰아 시골로 내려갔다. 나를 문간에서 맞은 것은 올망졸망한 보따리. 감자, 양파, 노각, -----큰 방에 덩그러니 누워있는 어머니는 몹시도 야위었다. 그 몸으로 자식이 내려온다고.ㅡㅡㅡㅡ스무날 전에 뵈었을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ㅡㅡㅡㅡ.

집 근처로 모시고와 입원을 시켜드렸다. 이러저러한 검사를 해보아야만 알 수 있단다. 어머니가 혼자서 병실에 계신다.

되새김질하듯 새겨지는, 어-머-니란 석 자, 가슴이 먹먹하다. 


2.

온양에서 모임이 있었다. 겸하여 어머니 혼자 사시는 시골집에 들렀다. 근 두 달째 잠을 제대로 못 이루신다는 것도 걱정되었고 텃밭에 비료를 늘어놓을 겸해서다. 


늦게 도착하여 하룻밤 묵고 일찍 일어나 비료를 밭에 늘어놓고는 어머니와 식탁에 앉았다. 모처럼 모자간 겸상이다. 반찬이라야 짠지에 김치, 된장, 파무침, 감잣국이다.


"아범은 국이 있어야 먹지. 끓였는데, 내 요새 입맛을 잃어 간을 모르겠어."


 20살에 시집오셔서 이날까지 몸으로 살아오신 어머니다. 내 아버지와 평생을 농사짓느라 굽은 손가락으로 몇 숟가락질을 하시더니 물끄러미 나를 쳐다본다.


"아범, 머리 깎았구먼. 이제야 선생님 같구먼. 아버지가 살아 계셨으면 벌써 나무랐을 텐데.----"


내 아버지는 자식이 선생이라는 사실에 꽤 만족해하셨다. 당신이 시골서 농사를 지어 자식을 가르쳤다는 자부심이셨는지도 모른다. 그 직업에 대한 예우가 전과 달라졌다는 것도 끝내 인정하시지 않고 돌아가셨다. 시골 분이지만 옷차림과 예의를 꽤 따졌고 동네에서 우리 집 대문을 가장 먼저 열고 마당을 쓰셨다. 그러고 보니 내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내 아버지의 부지런함 덕이다. 그런 아버지는 내가 머리를 단정히 하는 것에 꽤나 집착을 보였다.


"거, 선생님이. 하이칼라로 머리를 싹 빗어 포마드를 바르라니까."라는 말을 나만 보면 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난 비로소 머리를 길렀다. 그리고 얼마 전 다시 예전처럼 깎았다. 몇 해, 내 머리에 대해 불만이 있었던지 어머니는 내 머리카락을 물끄러미 보신다.


"그런데 아범 머리카락이 많이 희었어. 어느새 이렇게 되었네. 부모가 물려준 것도 없고---- 나이도----"


내 늙으신 어머니의 눈가에 그렁 눈물이 고였다. 그제야 어머니 얼굴의 주름살이, 움푹 들어 간 괭한 눈이, 더부룩하게 흘러내린 흰머리카락이, 한 줌도 안 되는 가냘픈 어깨가 눈에 들어왔다.

'흥천 이쁜이'라고 조암장에서도 알아주던 어머니의 고운 얼굴이다. 그 어머니의 얼굴이 갑자기 뿌여졌다.


아마도 감잣국의 김이 올라와 안경에 서리가 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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