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계질은 이제 딱 질색이네. 그만 하시게!

“여보게! 자네 삶을 응원하네.”

by 휴헌 간호윤


<여보게! 자네 삶을 지지하네.>


말을 함부로 내뱉는 사람들이 많다. 숨 한번 내쉬는데 5000만 개의 분자가 뿜어져 나온다고 한다. 한 마디 말 속에는 얼마나 많은 분자가 쏟아지겠는가.


엊그제 어떤 이와 술자리다.


“호윤아! 인마 너 그렇게 살지 마. 그렇게 산다고 세상이 달라지냐. 넌 세상을 너무 몰라.”


제 딴에는 나를 위해 한 말이다. 아마도 방안풍수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내가 꽤 안타까웠나 보다. 난 술기가 날아가도록 웃었지만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훈계하지 마라. 나도 너만큼 세상을 살았다. 내가 네 말처럼 살 수도 없지만, 네 말처럼 세상을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 네가 내 친구라면 ‘그래, 호윤아! 너 세상 잘 산다. 내 응원하마.’ 이 한 마디면 나에 대한 정은 차고도 넘친다.”


왜 다들 나를 가르치려 들까? (나도 그 이유를 모르는 게 아니다. 나보다 제가 더 물질이 넉넉해서다. 내 쪼들리는 살림살이를 제가 알아서다. 내 주머니가 넉넉하다면 절대 말하지 못한다. 이 땅에서는 돈이 가장 우듬지에 있다는 사실을 내가 모르기에 알려주려는 것이렷다. 그렇다고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나에게 술 한잔 제대로 사지도 않는다.)"야! 네 책은 너무 어려워. 좀 쉽게 써." 수 백 번은 들은 말이다. 나는 이렇게 말 했다. "쉽게 쓸 사람도 있고. 나처럼 쓰는 사람도 있는 거야. 나는 책 잘 팔리게 쓰는 사람과 달라." 한 마디 더하고 싶었다. "여보게, 자네는 나처럼 살아봤나?"라고.


한 번은 ‘인문학(人文學) 강의’를 가 이런 경우도 있었다. 강의를 마치고 함께 식사를 하고 찻집으로 옮겼다. ‘작가와 대화’ 정도를 하는 자리 정도였다. 한 사람이 와 앞에 앉더니, 자기는 누구라며 꽤 거창한 명함을 주며 이렇게 말했다.


“저 간호윤 교수님, 거 TV에 나오는 000처럼 강의를 해보시지요. 문답식으로, 그러면 교수님께서 ---”


난 저 이의 나를 향한 충고와 염려를 생각하며 이렇게 답해주었다.


“그러면 내가 000이지요. 오늘 강의 주제는 ‘인문학’ 즉 사람의 무늬 찾기였습니다. ‘나는 나이다’였습니다.”


37살에 박사 과정 입학, 16년 차 교직을 버리고 배움의 길로 들어선 나다. 지금까지 40여 권의 책을 썼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나와 같이 세상을 사는 이가 대한민국에 몇 %나 될까? 비록 물질은 없지만 자존감이 없지는 않다. 못 났든 잘 났든, 난 내 길을 그렇게 걸어간다.


나이로 보아도 이미 평균치는 넘어섰다. 이미 남의 말을 듣고 삶을 바꿀 내가 아니다. (이는 배움과는 다르다. 난 늘 배운다. 학문(學問)이 배우고 묻는 것, 어린아이에게도 묻고 배운다. 죽는 그 순간까지도 배울 게 있으면 배우고 배워야 한다.) 그런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드는가. 저 이의 삶과 내 삶이, 저 이의 강의와 내 강의가 같다면 나는 저 이인가? 나인가?


30년 넘게 선생 노릇을 하며 터득한 진리가 있다. ‘제아무리 선생이 훈계(訓戒)를 해도 제자에게 순연히 먹히지 않는다.’ 말로는 절대 사람을 바꿀 수 없다는 진리이다.


차라리 나를 생각한다면 이런 말이 어떨까.


“여보게! 자네 삶을 응원하네.”

“선생님! 선생님의 강의를 지지합니다.”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다면 아예, 말을 말았으면 좋겠다. 훈계질은 이제 딱 질색이다. 그만 하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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