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재현

산수도 모르고 그림도 모른다

by 휴헌 간호윤
<금지된 재현(1937)> 르네 마그리트

한 남자가 거울을 본다. 그러나 거울 속에 얼굴이 없다.(반면 사물인 책은 정확히 반사되어 보인다.) 그는 비슷한 가짜인 시뮬라크르의 눈만 지녔다. 시뮬라크르의 눈으로는 자기를 찾을 수 없다. ‘파블로브의 개’처럼 과거에 경험한 형식과 규범의 문화가 너무 몸에 젖어 조건반사 (conditioning)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과거에 경험한 문화 중, 대다수는 시뮬라크르임을 모른다.(시뮬라크르는 원래 플라톤에 의해 정의된 개념이다. 플라톤에 의하면, 사람이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원형인 이데아, 복제물인 현실, 복제의 복제물인 시뮬라크르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현실은 인간의 삶 자체가 복제물이고, 시뮬라크르는 복제물을 다시 복제한 것을 말한다. 시뮬라시옹(프랑스어: simulation)은 시뮬라끄르가 작용하는 것을 말하는 동사이다.)


자유의지가 없는 삶은 타인의 삶이다. 제 생각이 아닌 남 생각만으로 사니, 그 눈이 비어 있을 수밖에 없다. 텅 빈 눈으로는 사물을 볼 수 없다.


글 쓰고자 하는 자라면 제 눈으로 사물을 보아야 한다. 인습이 된 관습의 폭력을 넘어 보이는 것 너머를 보아야 한다. 남의 의식을 온전히 받아들인 코드화 된 눈으로는 남이 보는 내 뒷모습 밖에는 볼 수 없다. 이런 자들을 ‘산수도 모르고 그림도 모른다’고 하는 것이다.

자신이 속한 성(性), 출신지, 학교, 신분, 여기에 물질 따위가 자신의 삶을 얼마나 옥죄고 있는지, 내가 정녕 나를 보는지를, 살펴볼 일이다.


산수도 모르고 그림도 모른다: 연암 박지원의 <난하범주기>에 보인다.

배를 타고 가던 사람들이 “강산이 그림 같은 걸.”이라고 하자 연암은 이렇게 말한다.


“자네들이 산수도 모르고 그림도 모르는 말일세. 강산이 그림에서 나왔겠는가? 그림이 강산에서 나왔겠는가? 이러므로 무엇이든지 ‘비슷하다似, 같다如, 유사하다類, 근사하다肖, 닮았다若’고 말하는 것은 다들 무엇으로써 무엇을 비유해서 같다는 말이지. 그러나 무엇에 비슷한 것으로써 무엇을 비슷하다고 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것과 비슷해 보일 뿐이지 같은 것은 아니라네.(君不知江山 易不知畵圖 江山出於畵圖乎 畵圖出於江山乎 故凡言似如類肖若者 諭同之辭也 然而以似論者似 似而非似也)"


“자네들이 강산도 모르고 그림도 모르는 말일세. 강산이 그림에서 나왔겠는가? 그림이 강산에서 나왔겠는가?” 산수화라는 모사본을 들고, 산수인 원본에 비기는 어리석음을 통박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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