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13)

13장. 서경이 아즐가 서경이 서울이지마는

by 휴헌 간호윤

처음 보시는 분은 1장부터 읽으세요.


13장. 서경이 아즐가 서경이 서울이지마는


돌이는 궁궐을 보수하러 서경으로 가며 마음이 무거웠다. 궁궐 연희에서 돌이와 곰이가 주고받은 말을 누군가 들었고 임연에게 고자질하였다. 임연은 곰이와 돌이를 서경 부역하는 곳으로 보냈다.

돌이는 떠나기 전날인 어제 간신히 달님이를 서너 달 만에 만났다. 궁궐에서 본 이후 처음이었다. 달님이는 돌이에게

“우리 아이를 가졌어.”

라며 눈물지었다. 그날 늦게 참석한 것도 쓰러진 것도 모두 달님이가 아이를 서며 연일 계속되는 연희를 견디지 못하여 일어난 일이었다. 달님이는 소속된 관현방의 행수기생에게 아직 들키지 않았으며 아이를 지킬 것이니 걱정 말라고 하였다. 하지만 들키는 날에는 두 사람의 목숨은, 아니 꽃님이의 목숨까지 위태롭다는 것을 돌이도 달님이도 잘 알고 있었다.

달님이는 헤어질 때 눈물을 흘리며 ‘마음 궂게 다잡으라며, 자기는 어떻게든 살아낼거’라며 이러한 속요를 불러 주었다.


서경(西京:지금의 평양)이 아즐가 서경이 서울이지마는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닦은 곳 아즐가 닦은 곳 작은 서울을 사랑하지마는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이별할 바엔 아즐가 이별할 바엔 길쌈 베를 버리고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사랑하신다면 아즐가 사랑하신다면 울면서 따르겠습니다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서경별곡> 1-4연


돌이와 달님이가 그렇듯이 모두들 이별하는 사람들은 이 <서경노래>를 불렀다. 달님이가 앞소리를 메기면 돌이는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라는 되풀이노랫말을 가슴으로 불렀다.


구슬이 아즐가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끈이야 아즐가 끈이야 끊기리이까 나난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천년을 아즐가 천년을 홀로 살아간들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믿음이야 아즐가 믿음이야 끊기겠습니까 나난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서경별곡> 5-8연


달님이는 5줄로 된 향비파를 탔다. 달님이의 손가락 한번 움직일 때마다 노래 곡조가 하나씩 둘씩 허공에 떨어졌다.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끈이야 끊기지 않듯이 그렇게 천년이 흘러도 변치 않겠다는 저 노랫말이 돌이 마음이요, 달님이 마음이었다.


달님이의 노랫소리가 일진작의 가장 느린 곡조에서 시작하여 빠른 곡조까지 오르내렸다. 돌이의 마음은 한없이 슬프면서도 말로 풀어내지 못할 기운을 얻는 듯하였다. 달님이의 노래가 마지막 <대동강노래>로 휘감았다.


대동강 아즐가 대동강 넓은 줄 몰라서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배를 내어 놓았느냐 샤공아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네 각시 아즐가 네 각시 욕심이 많은 줄 몰라서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떠나는 배에 아즐가 떠나는 배에 태웠느냐 샤공아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대동강 아즐가 대동강 건너편 꽃을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배 타고 들어가면 아즐가 배 타고 들어가면 꺾을 것입니다 나난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서경별곡> 9-14연


돌이는 달님이 노랫소리에서 아름우면서도 소박한 운율과 살아 움직이는 노랫말을 보았다. 왕궁에서 데면데면 듣는 궁중악과는 달랐다. 구절구절마다 달님이와 꽃님이 언니, 엄니, 죽이 아저씨, 관군의 매에 목숨을 잃은 아버지, 그리고 달님이의 뱃속에 있는 아이,…백정들의 휘어진 삶이 돌이 눈앞에서 휘적휘적 돌아 흘렀다.

“걱정 마. 돌아! 내 목숨을 걸고 우리 아이를 지킬게.”

헤어질 때 달님이가 돌이의 손을 꼭 잡으며 한 말이었다. 달님이가 돌아 간 뒤에도 노랫소리는 돌이의 귓가에 쟁쟁 울렸다.


그렇게 달님이와 헤어진 돌이는 곰이와 서경에 도착하여 궁궐보수 작업에 투입되었다. 몽고군에게 입은 피해는 처참했다. 국장생(國長生:나라에서 관리하는 장승)은 반이나 불타 풀 섶에 나뒹굴었다. 커다란 석불도 쓰러져 몸은 여기에 머리는 저기에 있었다. 무너진 성가퀴 안으로 불타버린 누각 옆엔 기세 좋게 궁궐을 떠받치던 두리기둥도 쓰려져 있었다. 서경이 이 지경일진대 개경이 어떠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였다.

돌이와 곰이는 돌을 깨서 성곽을 쌓는 곳으로 배치되었다. 작업은 봄과 가을 농번기를 피해서 해야 했기에 한 여름 아니면 겨울이었다.

붉은 햇빛이 바글바글 차 끓듯 하였다. 잉걸불도 하늘이라도 녹일 듯 벌겋게 달아올랐다. 풀무질로 잉걸불 속에 바람을 일으켰다. 녹여낸 쇳물을 거푸집에 부어 정으로 쓸 쇠막대를 만들었다. 다시 이를 두어 뼘 가량 잘라 정을 만들고 갈가리 찢긴 손바닥에 붙은 엄지손가락만큼 잘라 야를 만들었다.

뾰족한 정이라야만 돌에 야가 들어갈 길쭉한 구명을 낸다. 야는 작고 야무져야만 돌을 잘 파고들었다. 힘이 돌이보다 좋은 곰이가 긴 자루 달린 쇠메를 잡고 돌이는 불에 달군 긴 쇳덩이를 모루 위에 올려놓았다. 곰이의 쇠메가 쇳덩이를 잡은 돌이의 손을 타고 온 몸을 두드렸다.

“탕! 탕! 탕!”

그렇게 한뎃잠을 자며 대장쟁이 질을 한 지 달포를 넘겼다. 홑잠방이는 이미 불똥으로 살을 드러낸 지 오래고 뙤약볕에서 하는 대장간일이라 모두들 검붉은 얼굴에 눈만 하얗게 빠끔하였다. 시나브로 수백 개의 정과 야가 쌓였다. 그만큼 곰이와 돌이 손은 부르트기 시작하였다. 불똥이 튀긴 손과 팔뚝에는 검붉은 딱지가 앉고 떨어지기도 전에 그 위에 다시 불똥이 똬리를 틀었다. 모두가 그러했다. 탐라 출신이라는 언년이 아버지는 쇠메에 진작 손가락이 두 개나 뭉개졌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부역군들을 괴롭히는 것은 굶주림이었다. 돌이와 곰이도 이곳에 온 날부터 하루 한 끼조차 제대로 음식다운 것을 먹지 못했다. 그저 소나무껍질과 풀뿌리만 씹는 것이 고작이었다. 배고픔을 끼니때마다 속이지 못했다. 성 주변 소나무껍질은 이미 벗겨져 모두 허연 속살만 남았고 칡뿌리를 캐느라 이곳저곳을 요강단지처럼 만들어 놓았다. 동이가 새끼 두 마리를 낳았지만 마땅히 먹일 것도 없었다.

며칠 전부터는 괴질까지 돈다. 돌이와 동갑인 수새는 가량가량한 몸으로 용케 견딘다 했더니 괴질에 걸려 며칠을 굶더니, 그예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수새가 죽은 날부터 서경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산다면서 <가시리>를 그렇게 잘 부르고 떡심 좋은 망아지도 몸져누웠다.


수새가 죽은 날 상여노래를 불러서인가,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노래를 불렀다. <상저가>도 불렀고, <동동>도 불렀다.

연장이 어느 정도 만들어지자 며칠 전부터는 정과 야, 쇠메를 들고 산을 올랐다. 적당한 크기의 돌을 찾고 어린애 몸뚱이만큼 잘라내야 했다. 이 돌로 성벽과 성을 보수할 것이었다. 곰이의 쇠메가 돌이가 잡은 정을 맞추면 정과 돌에서 불똥이 튀었다. 곰이도 돌이도 허리는 끊어지도록 아팠고 뼈마디는 몸에서 산산이 부서져 가루가 되는 듯 했다. 어쩌다 정의 머리를 빗나간 곰이의 쇠메는 그대로 돌이의 손을 이겨 놓았다. 검게 피멍든 돌이 손톱은 며칠 못 가 빠져나가고 새 손톱도 제대로 자라기 전에 또 그랬다.

돌이는 며칠간 잠을 버성겨서인지 보는 곳마다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어젯밤도 견우성 옆에 자리하던 살별이 긴 꼬리를 그으며 부서진 성 귀퉁이로 떨어진 뒤에는 한숨도 못 잤다. 잠시 눈을 감아도 달님이와 뱃속의 아이가 살려달라고 외쳤다. 동이는 그래도 막사 한 구석에서 제 새끼들을 끼고는 편안히 잠들었다.

잠시 도둑잠이라도 청하려 하였지만 가랑니와 수퉁니며 벼룩이 돌이의 몸을 괴롭혀댔다.

오늘은 노랫소리마저 없다. 어제 궁궐에서 관복을 입은 몇이 왔다가더니 오늘부턴 두 사람이 성벽 쌓을 돌을 열 개나 만들라며 더욱 닦달이 심하다. 돌 깨는 소리만이 산에 울렸다.

“쩡! 쩡! 쩡! 쩡!

곰이도 돌이도 말없이 연신 손만 놀렸다. 곰이의 쇠메와 바위에 야를 넣을만한 구멍을 파려는 돌이의 정이 불꽃을 번뜩였다. 한낮의 작열하는 해는 언제 구름에서 벗어났는지 다시 불을 토했다. 돌이는 땀을 훔치며 하늘을 원망스럽게 올려다보았다. 깡마른 하늘은 한없이 높고 바짝 마른 햇살은 눈을 파고들어 깔끄러웠다.

“쩡! 쩡! 쩡! 쩡! 쩡!”

동이가 돌이의 아랫도리 자락을 물고 몇 번이고 짖어댔다.

“컹!컹!”

그렇지 않아도 힘이 드는 판이었다.

아침에 막사 한 귀퉁이에서 앙상한 뱃가죽으로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제 새끼들에게 빈 젖만 빨게 하고 있더니, 어느새 여기까지 왔나보다. 돌이는 저도 모르게 동이를 차버렸다.

“이놈의 개새끼까지!”

“캥!”

동이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동이가 두어 발짝 날아가 떨어지는데, 서너 발자국 위에서 곰이와 돌이를 합쳐놓은 크기의 돌이 굴러 내려왔다. 돌덩이를 밧줄로 엮어 어깨어 메고 옮기던 목도꾼 한 사람이 쓰러지며 일어난 일이었다.

돌이와 곰이는 동시에 돌덩이를 쳐다보았다. 동이의 날카로운 짖음이 다시,

“캥!”

하고 숲을 갈랐다.

곰이와 돌이는 쇠메를 놓고 풀숲으로 몸을 굴렸다. 돌 깨는 소리에 위에서 돌이 굴러 내리는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한 것이었다. ‘동이가 나한테 알리려는 거였구나’하는 생각을 했을 때, 이미 돌은 동이 몸을 덮치고 서너 사람 드나들 만한 구멍을 성벽에 뚫고서야 멈췄다. 순식간이었다.


돌이가 뛰어 가 동이를 안았지만 이미 힘없는 눈동자만이 안간힘을 쓸 뿐이었다. 돌이는 동이 몸이 이렇게 가붓한지 몰랐다. 동이 두 다리는 부러졌고 제대로 먹지 못한 몸으로 젖을 빨려서인지 바짝 말라버린 젖가슴 사이엔 허연 갈비뼈가 비집고 나왔다. 그 버름한 틈으로 피가 흘렀다. 거의 감겨가는 눈가에서도 눈물인지 핏물인지가 흘렀다. 동이의 피도 사람과 똑같이 붉었고 따뜻했다. 동이의 남은 다리에 가는 두어 번의 경련이 돌이의 손끝에 느껴졌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동이 눈동자에서 더 이상 돌이의 얼굴이 안보였다.

그날 저녁이었다. 인수 아버지가 돌이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거, 동이가 참 신통하네. 자네들을 살렸네 그려. 자네가 그 개를 아끼는 것은 아네만, 이제 죽지 않았는가. 망아지와 납죽이도 아프고 하니, 그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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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입을 타고 나온 <서경별곡> 곡조가 흥얼흥얼 하늘로 날아올랐다.


“서경이 아즐가 서경이 서울이지마는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닦은 곳 아즐가 닦은 곳 작은 서울을 사랑하지마는”


곰이가 노래를 받았다.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쩡! 쩡! 쩡!”

“퍽! 퍽! 퍽!”

쇠메 내리치는 소리에 이어 돌이 튀는 소리가 그 노래 사이를 넘나들었다. 온 산이 노래였다. 돌이 손등에 파란 힘줄이 솟았고 곰이의 거친 숨소리는 가빴다. 정과 돌도 부딪쳤다. 돌이는 야를 넣을 길쭉한 홈이 달님이의 눈썹 같았다. 아니! 제 발길질에 채여 쓰러져서도 일어나려 안간힘을 써대던 동이의 그 서글픈 눈인지도…. 아니, 달님이 뱃속에 있는 우리 아이의 눈인지도 모른다고 돌이는 생각했다.

돌이는 갑자기 땀이 흘러 눈 속으로 들어갔는지, 길쭉한 홈이 흐릿흐릿하여 야를 넣지 못하였다. 곰이가 대신 야를 넣고는 그 위에 돌이의 쇠메를 대주었다.

“돌이야, 꼭 잡아라. 잘못하면 다친다.”

곰이가 동이 몸뚱이만 한 쇠메로 야 위에 대고 있는 돌이 쇠메 위를 내리쳤다. 쇠메 위에 쇠메가 내리치고 동이 몸뚱이 위에 동이 몸뚱이가 내리치고, 불꽃이 튄 자리를, 아니 동이의 뼈만 앙상하던 뱃가죽을 다시 내리쳤다.


“구슬이 아즐가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쩡! 쩡! 쩡!”

“퍽! 퍽! 퍽!”

어느새 왔는지 옆에서 수새 아버지와 망아지도 짝을 이뤄 돌을 깼다. 갓난아이 때 돌로 그 머리를 아예 눌러 납작했는지 뒤통수가 눌러 붙은 납죽이도 보였다. 쇠메를 놀리는 것을 보니 몸이 조금은 회복되었나보다. 목소리가 제법 힘차다.


“대동강 아즐가 대동강 넓은 줄 몰라서”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쩡! 쩡! 쩡!”

“퍽! 퍽! 퍽!”

노래에 맞춰 돌이의 몸이 울었다. 동이도 울었다. 산은 온통 노랫소리와 돌 깨는 울림으로 울었다. 순간, 돌이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고요였다. ‘우쩍’하며 무엇인가 돌덩이보다도 크고 묵직한 것이 돌이의 몸을 뚫고 나갔다. 마음속에 무엇인지 모를 뭉클한 것이 꿈틀대고 있는 것을 느꼈다.


“배 내여 아즐가 배 내여 놓았느냐 사공아”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다시 노랫소리가 들렸다. 돌이는 왈칵 눈물이 흘렀다. 돌이는 그것이 동이가 땅보탬이 되어서인지, 아니면 엄니와 아버지를 생각해서인지, 아니 죽이 아저씨 때문인지, 달님이와 뱃속의 아이 때문인지…

“쏴!”

하늘도 미안해선가 먹구름을 두엇 데려와 소나기로 울었다. 곰이의 단풍같이 벌건 얼굴에도, 돌이 등줄기에도, 나뭇잎에도 빗방울이 튀었다. 곰이와 돌이 몸에 든 동이에게도 빗물이 흘렀다.

“흐응!”

곰이 쇠메가 돌이 쇠메 위에 다시 떨어진 그 순간 돌은 그예 허연 속살을 보였다.

“흐응!”

한번 더 곰이의 쇠메가 하늘을 우려낸 듯 치고 내려와 파란 불꽃을 튕겼다.

“쩍-”

어른 몸뚱이만 한 돌은 아이 몸뚱이 둘로 나뉘었다. 전혀 쪼개지지 않을 것 같던 바위였다.

“제깟 놈이, 그러면 그렇지….”

곰이가 돌이를 보며 주먹덩이만한 잇속을 드러내고 “하하!” 웃었다.

“하!하!하!”

돌이도 미친 듯이 웃었다. 돌이는 산도 웃고, 동이도 웃고, 달님이도 웃을 것만 같았다. 그래, 골병든 삶이지만 이렇게 살아내는 거야. 그냥 살아서 사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거야. 살아 내는 거야. 그래, 왕이 아닌 우리를 위해 하는 거다. 이 돌 하나에 달님이의 목숨도, 꽃님이 언니의 목숨도, 아니 내 목숨과 돌이 형의 목숨도, 우리 아이의 목숨도 달려 있는지 모른다고 돌이는 생각했다.


네 가시 아즐가 네 가시 바람난 지 몰라셔


왕이 살고, 재상들이 드나드는 궁궐을 중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지키기 위해 이 고단한 노역을 하는 거다. 이것이 우리네가 살아가는 힘이다. 그래, 힘은 노래였어. 돌이는 후렴구를 따라 불렀다.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노랫소리는 저물도록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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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뎃잠이지만 곰이는 곤해선지 코까지 곤다.

그날, 돌이는 늦은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검은빛으로 물들인 하늘에서 별빛이 와글와글 떠들어 댔다. 마치 떡전거리에서 동무들과 재잘거리는 것처럼. 달님이 얼굴이 떠오르고, 꽃님이 언니 얼굴도 그 옆에서 웃고, 달님이 뱃속의 아이도 웃었다. 동이도 보였다. 돌이는 동이에게 말을 건넸다.

‘동이야! 미안하다. 잘 있지? 달님아! 미안하다. 잘 있지? 꽃님이 언니도…’

돌이는 이제야 세상에 어섯눈을 뜬 듯 했다. 그동안 부귀와 권력만 보느라 제 옆에 진짜 힘이 있는 것을 몰랐다. ‘소 힘도 힘이요, 새 힘도 힘이다!’라는 것을. 돌이는 중얼거렸다.

“그래, 내 깜냥만큼만 살아내면 된다!”

세상사를 따지자면 이 돌을 깨 성채를 쌓는 이치와 다를 바 없었다. 왕이 큰 돌덩이, 대신들이 자갈이라면 백정들은 쐐기돌이다. 나라에서 큼지막한 돌덩이로 기틀을 잡고, 대신들이 그 빈틈을 자갈로 채우고, 백정들이 자갈들 사이사이에 들어가 쐐기돌 역할을 한다면 그 성채는 굳건하다. 그러나 쐐기돌이 제대로 박히지 않으면, 성채는 틈이 벌어지고 이내 무너지고 말 것은 정연한 이치였다.

돌이는 낮에 분명히 보았다. 한 마음이 되어 부르던 노래의 힘을, 백정들의 마음으로 불러낸 속요야말로 살아갈 힘이란 것을 알았다. 돌이는 가만히 손을 꼭 쥐었다.

“그래, 속요집을 만들거야!”

돌이는 그 제서야 일연 스님에게 들은 이야기도 이해가 되었다.

신라 성덕왕 때 순정공의 부인인 수로부인을 바다 용왕이 끌고 들어가자 한 노인이 “‘뭇사람의 입은 무쇠도 녹인다’했으니 어찌 많은 사람의 말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인근 백성들을 모아 노래를 부르게 하며 막대로 언덕을 치면 부인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한다.

“그래, 이게 힘이었어. 모두 함께 부르면 힘이 되는 거야. 죽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는, 그래 죽고 싶을 만큼 힘들 때 사람들이 마음을 합하여 살려고 부르는 것이 속요의 힘이었어.”


돌이의 생각은 끝없이 이어졌다.

‘백정들이 노래를 부르는 것은 사람살이의 슬픔을 극복해주고 노동의 수고로움을 덜어줘서였어. 속요는 마음의 고통을 없애주고 삶에 활기를 불어넣어줘. 세상에 대해 괘씸타는 말 한마디 내지 못하고 등가죽에 붙은 곯은 뱃가죽을 움켜쥐고 그래도 살아야겠다고 부르는 것이 노래였어. 금방이라도 눈물이 함빡 쏟아질 것 같은 말들이 옹기종기 모여 숨 쉬는 노래였어. 쓰린 가슴에 쓰린 씀바귀나물 한 입 넣고 맑은 냉수로 입가심할망정 결코 고운 심성을 버리지 않겠다는 것이 노래였어. 꾸밈이 없지만 풍요로운 노래이기에 사랑이 있고, 이별이 있고, 웃음이 있고, 슬픔이 있고, 한이 있고, 흥이 있고, 별나라도 달나라도 그 속에 있고, 삶과 죽음도 속요에 있었어. 그렇기에 숨김없는 우리네 인간성이요, 생활 그대로의 삶보다 더 삶의 처절함을 감춘 것이 속요였어.’

“그래, 이것이 우리네 몸의 노래인 힘이야.”

‘몸! 엄니가 꽃님이 언니와 나를 지켜낸 것도 몸이요, 죽이 아저씨가 달님이와 꽃님이를 지켜낸 것도 몸이었다. 동이가 나를, 아니 곰이 헝을 살려낸 것도 몸이다. 속요에 힘이 있다면 몸을 살려 내서이다. 암, 몸의 노래이지. 그래, 달님이는 틀림없이 우리 아이를 지켜낼 거야. 몸의 노래를 부르며 엄니가 나와 꽃님이 언니를 지켜냈듯이.’

돌이는 비로소 아버지가 왜 고려속요집을 만들려고 했는지 이해가 갔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사랑했던 거였어. 맞아,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가는 힘이 노래임을 알았던 거야. 그래서 그 노래들을 모은 거였어.’

그런 노래집이 몽고군에게 집이 불타면서 사라졌다는 것을 떠 올리니 소중하게 간수하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돌이는 ‘나는 아버지기 못다 한 이 노래집을 꼭 모아야겠다. 우리 몸의 노래를…. 이 일만 끝나면 달님이를 찾아가 속요집을 만든다고 할 테다.’라고 마음먹었다.

“꼬끼오! 꼬끼오!”

멀리서 닭들이 벌써 두 홰를 친다.

동이의 새끼 두 마리는 돌이 품을 제 어미 품속인양 잠든 것을 새벽 별들이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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