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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헌 간호윤 Apr 04. 2022

인사,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사회학

“아범! 여기 앞집 아줌마셔. 인사해.”

“아범! 아범! 여기 앞집 아줌마셔. 인사해.”


 시골집 벽에 페인트칠을 하는 중이다. 마당 저 끝에서 어머니가 나를 몇 번씩이나 부르신다. 두어 해 전, 동네 한가운데 큼지막하게 2층 집을 지어 이사 온 앞집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시키기 위해서다. 앞집 분께는 이미 인사를 한 터였기에 말리는데도 기어코 나를 인사시키고야 만다. 이 아주머니 말 몇 번 해보니, 그 눈초리며 말투가 여간 사나운 게 아니다. 상대를 대하는 태도에 예의라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나이는 나보다 댓 살쯤 많아 보이는데 나보다 더 이 동네에서 오래 산 사람같이 행동한다.


점심을 먹으며 어머니에게 말씀 드렸다.


“엄마! 내 몇 번 이야기했잖아요. 그리고 나 일하는 중이잖아요. 내 나이가 몇인데 동네 분들께 인사하라 시키세요.”


내 어머니, 아들 말 아랑곳없이 말씀하신다. 당신 말씀이 이치상 맞으니 꼭 인사를 해야한다고.


“아! 앞집 여자가 여간 고약해야지. 아들이 내려와 인사도 안 했다고 동네 사람들한테 말할까봐. 제가 고등학교를 나왔다고 우격다짐이 심하고 제 말만 옳다해. 동네가 형편 없다고도 하고----”


난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글을 쓰다 보니 꼭 작년 이맘때(2021. 3. 11)쯤 블로그에 올려놓은 글이 있다. 아마 그때도 이와 같은 일이 있었나 보다. 내 삶은 이미 내가 태어난 동네에서 60년도 전에 정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아래 글에 나오는 운동하는 데서 보는 사람과 서재 앞 세탁소 주인은 지금도 만난다. 지금도 볼 때마다 마음이 편치 못하다.)


<아래는 2021. 3. 11. 블로그에 올려놓은 글이다.>


시지프스만 오늘 이른 아침부터 산등성이로 돌을 굴리는 게 아니다. 누구나 오늘을 사는 사람이라면 다 그렇다. 그렇게들 살아내는 게 인생이다. 언젠가부터 시지프스가 오늘을 나보다 좀 쉽게 살아낸다는 생각이 든다. 시지프스야 혼자 고독하게 돌을 굴리는 거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아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를 증명이나 하듯 늘 사람은 사람과 인생길을 걷는다. 그런데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게 그리 쉬운 게 아니다.



나같이 300년 된 씨족마을에서 성장한 경우는 더욱 그렇다. 코 흘리기 전부터 “어른들께 인사 잘해라”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지금도 시골 내려가면 내 어머니께서는 “동네 분들께 인사 잘하라”고 하신다. 아들 나이 몇이 되었고, 집안이라야 겨우 일곱 집이요, 모두 타지인들이 들어와 사는데도 조금도 개의치 않으신다. 그래 그런지, 저래 그런지, 서른이 넘어 가정을 꾸린 아들이 한 번은 이런 질문을 했다. “아빠, 아빠는 시골만 내려가면 왜 차를 세우고 동네 사람들에게 다 인사를 해? 난 어릴 때부터 그게 너무나 싫었어.” 어린아이가 보더라도 내 인사가 과해 보였던 듯하다.


 난 남에게 매몰찬 소리조차 해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러던 내가 두어 해 전부터 두 사람을 외면한다. 정확히 말하면 한 사람은 그쪽이 먼저 내 인사도 안 받은 지 일 년 만에 그러한 것이요, 또 한 사람은 세탁소 주인으로 맡긴 옷이 분명 못 입게 된 것을 따지다 그렇게 되었다. 앞사람은 운동하는 데서, 뒷사람은 서재 앞 세탁소이기에 참 고역이다. 그래도 마땅히 딴 방법이 없다. 나에게 모욕적인 행동을 하는데 그것을 감내하자니 내 인격이 모자라고. 하여 나 역시 외면하지만 마주칠 때마다 여간 마음이 불편한 게 아니다.


세상을 살며 가장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이 있다. 자식 자랑, 건강 자랑, 아는 게 많다 떠들어 대는 사람은 그래도 들어줄 만하다. 은연중 돈 자랑, 제 말만 하는 사람은 그다음이다. 가장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은 부끄러움과 예의가 없는 사람이다. 저런 사람들은 상대방은 아랑곳없이 제 생각대로 말하고 행동한다. 제 삶만이 옳은 길이고 알고 있는 지식만이 진실이라는 확증적 편향을 갖고 있어서다. 상대가 그 나이에서 한 치도 어그러짐 없는 인생길을 걸은 존엄한 인간이란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다.


 저런 사람의 또 한 특징은 모든 잣대를 대부분 물질에 둔다. 아파트 평수로 사람을 재단하거나 지위로 사람을 평가하고, 저보다 위계질서가 높거나 이익이라도 생기면 철저히 복종하거나 기생한다. 저런 사람을 만나면 그 말과 행동에 상대 인생길은 여지없이 초라해지고 삶은 피폐해진다. 술 좋아하는 나지만 저런 사람을 만나면 술맛조차 꼭 소태 씹는 맛이다.



문제는 저런 사람을 안 만나면 되지만, 그게 그렇지 않다. 저런 사람들 특징이 처음에는 너무 경우 바르기 때문이다. 하나둘씩 제 본색을 드러낼 때쯤이면 이편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이미 인생길 여기저기서 만나는 사이가 되어버려서다. ‘안 만나자니 야박하고 또 누구나 한두 가지 흠은 있는 법’이니 하고 참아버린다.



오늘 이런 생각을 했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24시간이다. 잠자는 시간과 이지 가지 꼭 해야 될 일, 수업, 약속, 기타 등을 제하면 겨우 서너 시간쯤이다. ‘이 소중한 서너 시간을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예의가 무엇이지 모르는 저런 사람들과 함께할 바에는 차라리 시지프스처럼 고독한 인생길을 걷는 게 낫다.’ 결론을 이렇게 내자니, 어떤 이는 ‘너 참 속 좁다’할 것이요, 또 어떤 이는 ‘그러는 너는 뭐가 대단해서’라 할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가 그러든 말든, 이제 내가 저런 이를 멀리하려 한다. ‘내 인사를 안 받은 저 이’나 ‘세탁소 주인’에게도 불편한 마음 안 가지려 한다. 써놓고 보니, 글이 참 야멸차고 인정머리 없다. 책깨나 읽고 공부한 게 다 소용없는 짓처럼 여겨진다. “어떻게 하면 인생을 달관할까요? 그런 날이 올까요?” 하늘을 우러러 물어보니 하늘도 괴롭다 묻지 말란다. 세상 산다는 게 참 어렵고도 어렵다.


오늘, 사람 냄새나는 인간다운 인간을 만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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