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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헌 간호윤 Oct 21. 2022

우물 속 달 읊조리다


글 읽다 고려 대문호 이규보(李奎報) 시를 본다.



<우물 속 달 읊조리다(吟井中月)>-(이규보)




山僧貪月色(산승탐월색) : 산중이 달빛을 탐해


竝汲一甁中(병급일병중) : 물길 때 함께 담았다네


到寺方應覺(도사방응각) : 절에 이르면 바로 알겠지


甁傾月亦空(병경월역공) : 병 기울이면 달도 없다는 것을



현자들은 말한다. 욕심 내려놓으라고. 이 세상에서 가져 갈 것 아무 것도 없다. 물에 비친 달빛 보았으면 됐지 무에 물병에 담아가나. 담아간들 제 것이 되든가. 육신조차 잠시 빌려 쓴 것이거늘. 목숨 마치는 날, 육신조차도 내 것이 아니다. 육신뿐이랴. 부모자식, 형제, 연인, 모든 인연(因緣)도 그렇게 헤어지는 이연(離緣)인 법. 인연 있을 때 잘하라할 밖에.


그러고 보니 요 며칠 아주 심기 불편케 한 사람도 별일 아니다. 저 이를 몇 번이나 더 보겠는가. 언젠가 헤어질 것을. 미워하는 마음도 좋아하는 마음도, 또한 저 스님 우물 속 달빛 길어올리기 아닌가.


허나 문제는 알고도 실행치 못한다는 번연한 사실. 하나씩 하나씩 떼어내도 따라붙는 고뇌들. 병 기울이면 달빛도 없는 것을, 오늘도 산중은 달빛을 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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