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주인인가? 나그네인가?

휴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108

by 휴헌 간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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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108


투표: 주인인가? 나그네인가?



“사전투표 공식 깨졌다… 최악의 상황” 2025년 6.3 대통령 선거, 그 사전선거 첫날에 뜬 기사이다. ‘내란’과 ‘탄핵’으로 치르는 선거인데 그 첫날부터 우려 섞인 뉴스이다.



“주인인가, 나그네인가를 묻고 싶은데, 여러분! 오늘 우리 사회에 주인 되는 사람이 얼마나 있습니까? 조선 사람이라면 물론 다 조선 사회의 주인인데 주인이 얼마나 있느냐고 묻는 것이 이상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선인으로 태어난 사람은 누구든지 명목상 주인은 다 되지만 사실 주인다운 주인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독립운동가요, 교육자인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1878~1938) 선생의 <동포에게 고하는 글>이다. 이 글은 1924년 북경의 한 곳에서 망국(亡國)의 백성으로 떠도는 선생이 자애로운 어머니 곁을 떠난 어린아이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심정으로 고국의 동포들에게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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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감치 일어나 설레는 마음으로 21대 대통령 사전투표를 하고 왔다. 뉴스대로 20대 대선과 지방선거에 비하여도 사전선거하는 줄이 확연히 줄었다. 12.3쿠데타와 탄핵, 헌법재판소 판결, 내란수괴를 풀어준 판사와 검찰의 행태, 대법원의 비상식적인 판결, …대통령 후보들의 3차 토론에서 입에 담지 못할 ‘젓가락’ 운운까지. 그 길고도 혹독한 겨울을 지나 오늘까지 6개월간 상식을 벗어난 기이하고 참담한 일들의 나날이었다.



선생은 말한다. “어느 집이든지 주인이 없으면 그 집이 무너지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이 그 집을 점령하고 어느 민족사회든지 그 사회의 주인이 없으면 그 사회는 패망하고 그 민족이 누릴 권리를 다른 사람이 가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민족의 장래를 위하여 생각할 때, 먼저 우리 민족사회에 주인이 있는가? 없는가? 또 있다 하면 얼마나 되는가 하는 것을 생각지 않을 수 없고 살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각해 본다. 나는 과연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주인인가? 주인 행세를 해본 적이 있고 주인 대접을 받은 일이 있는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분명 선거를 할 때면 주인인 듯한데, 선거만 끝나면 지나가는 애완견만도 못한 존재가 된다. 분명 대통령 취임선서도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시작하건만 주인으로 존경을 받아본 일도 없다.



선생은 다시 묻는다. “나로부터 여러분은 각각 우리의 자신이 이 민족사회의 참주인인가? 아닌가?를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인이 아니라면 나그네인데, 주인과 나그네를 무엇으로 구별할까. 그 민족사회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감이 있는 사람은 주인이고 책임감이 없는 사람은 나그네입니다.” 저 시절, 나라는 빼앗겼고 투표권도 당연히 없었지만 선생은 저렇게 주인으로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외쳤다.



내가 주인이 되지 못한 이유는 저들에게도 있지만 나에게도 있다. 참주인으로서 책임감이 없었음을 실토한다. 물론 이렇게 된 데는 역사의 한 측면이 분명 있다. 일제 식민지, 이승만 독재, 박정희와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쿠데타를 거치며 전체주의적인 프레임으로 강압적인 위계질서가 고착화·구조화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지배와 순응이라는 한국 사회 틀거지를 만들었고 ‘그들만의 리그’는 곳곳에서 카르텔을 형성하여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을 휘둘렀다. 리그 밖, ‘기타 국민’들은 무기력과 체념(특히 그 놈이 그 놈이라는 정치의식)에 빠져버렸다. ‘기타 국민’에게 현실은 강파르고 희망은 신기루이니 미래는 암담할 뿐이었다. 바로 선생이 말하는 ‘나그네’이다.



나그네는 마치 <어린 왕자>에서 여우와 흡사하다. “내 생활은 복잡할 게 없어. 나는 닭을 사냥하고, 사람들은 나를 사냥해. 병아리들도 모두 비슷하게 생기고, 사람들도 모두 비슷하게 생겼어. 그래서 나는 아주 지루해.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이면 내 생활은 빛으로 가득 차게 될 거야.” 여우는 자신이 지루하다며 사람에게 자신을 잘 길들여달라고 한다.



선생이 말하는 참주인! 손에 쥔, 이 ‘한 표’가 바로 나그네가 아닌, ‘책임감이 있는 참주인’임을 확인하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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