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겠다!” 고(考)

by 휴헌 간호윤


“죽겠다!” 고(考)


“죽겠다!”

이 죽겠다는 말은 인간으로 생명을 끊는다는 극한적인 뜻이기에 말하기도 듣기도 영 불편하다.


그런데 우리의 언어 상황은 그렇지 않다. 우리말 중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말이며, 죽겠다. 뻗다. 뒈지다. 곱죽다,… 등 유의어도 여간 많지 않기 때문이다. 몇 예만 보면 ‘추워 죽겠다. 바빠 죽겠다. 싫어 죽겠다. 배고파 죽겠다. 슬퍼 죽겠다. …’ 모두 죽을 만큼 힘들다는 뜻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반대 상황에도 죽겠다를 쓴다. ‘더워 죽겠다. 심심해 죽겠다. 좋아 죽겠다. 배불러 죽겠다. 웃겨 죽겠다.…’ 죽겠다의 상황이 바뀌었기에 죽지 말아야 하거늘 여전히 죽겠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죽겠다 죽겠다 하면서 정작 죽으라면 싫어한다’라는 속담도 버젓이 쓰인다. “거미줄에 목을 매어 죽을까 부다. 호박잎 고인 물에 빠져나 죽을까 부다”라는 민요도 앞 문장과 도 긴 개 긴이다. 단순한 과장으로만 여길 게 아니다. 곰곰 되새김질할 필요도 없이 죽겠다 속에 들은 뜻은 '죽기 싫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말라는 꼼수 속엔 살겠다는 의지가 숨어있다.


‘죽겠다’는 말의 관용적 일상화이다. 이쯤 되면 죽겠다는 말이 혹 우리의 몸에 기억으로 남은 역사가 아닌지를 의심해 보아야 한다. 『17세기 국어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태학사, 1995)에서 ‘죽다’를 찾아보니 ‘주거’, ‘주거나갈’… 등 140여 용례가 무려 20쪽에 달한다. 이에 반해 ‘살다’는 ‘사나’, ‘사노니’ 등은 80여 용례에 5쪽에 불과하다.


한 세기를 일반화할 수는 없으나 언어의 역사성을 고려한다면 그 해답을 외침 당한 숫자에서 귀띔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자그마치 1000여 회! 이 나라 2000년 역사에 기록된 1000여 번이라면 2년에 한 번 꼴 전쟁이다. 여기에 나라 안에서 죽고 죽이는 정쟁까지 합친다면 이리저리 치이는 백성들로서는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만하다.


특히 이에 관한 한 고려는 우리의 역사에서 안팎으로 비할 바가 아니었다. 고려는 왕건이 29명의 호족 딸과 정략혼인을 하여 건국한 나라였다. 호족들의 권한이 막강했다는 의미이다. 호족들의 정쟁은 학정으로 이어지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다. 도처에서 민란이 일어났다. 여기에 혹독한 무신정권 100년과 삼별초의 항쟁까지 겹친다. 밖으로는 거란, 여진, 몽고, 왜구의 침입도 이어졌다. 특히 1200년대는 더욱 그러하였다. 이미 200여 살로 건강성을 잃은 고려는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몽고의 7번이나 되는 침입을 받고 몽고 부마국으로 전락하기에 이른다. 그야말로 겹으로 닥쳐오는 내우외환의 시기였다.


‘죽겠다’는 말의 관용적 일상화에는 저러한 역사도 한몫 거들었다. ‘죽겠다’와 같은 단 석 자도 이렇게 살펴본다면 그 속에 역사적 사실과 연결되는 색다른 결과를 얻는다. 그러니 문자의 기록과 몸의 기록을 양축으로 하여 돌아가는 역사의 수레바퀴는 어떻겠는가.


역사는 두 개의 기록으로 되어있다. 하나는 문자의 기록이고 하나는 몸의 기록이다. 문자의 기록이 승자와 지배층의 역사라면, 몸의 기록은 패자와 피지배층의 역사이다. 문자의 기록에는 영웅과 투쟁의 핏줄기가 흐르지만 몸의 기록에는 무지렁이들의 인정 어린 삶과 건강한 근로가 보인다. 문자의 기록은 각종 문헌에 남아있어 눈으로 보이지만 몸의 기억은 유전적으로 내려오는 몸에 남아있어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제대로 된 역사, 역사의 진정성을 보려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숨김과 드러남의 틈새를 온몸으로 읽어내야 한다. 온몸을 통해 보고 읽어내려면 문헌과 몸이란 역사의 겉과 속을 뚫고 들어가려는 철저한 역사적 사고와 그만큼의 무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래서인가 볼테르는 이 어려움을 “역사란 옛날에 죽어버린 것을 갖고 노는 것”이라고 다소 불량스럽게 비꼬았지만 새겨들을 말이다. 우리말 중, ‘죽겠다’라는 썩 불량스러운 말을 그래 살펴본 것이다.


생각해보니, 나도 꽤나 입에 달고 사는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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