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꼬마야.
너는 다리가 있어서 걸을 수 있고 뛸 수도 있고 어디든 갈 수 있지.
이젠 많이 자라서 혼자서 이렇게 고모한테 놀러올 수도 있고 말이야.
지구 안의 모든 생명은 원래 여행자라는 사실을 아니?
왜냐면 지구도 여행으로 생긴 별이거든.
여행하는 나무 얘기 들어본 적 있니?
그럼 들어볼래?
어떤 나무가 생각하고 있었어.
사람들은 나무에 생각이 있다는걸 모르지만 말이야.
어른들 머리에는 매순간 다른 복잡한 것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나무에게까지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어.
아이들만은 나무와 친했지만 불행하게도 요즘은 아이들도 어른 못지 않은 생각으로 바쁘단다.
그건 너무 슬픈 일이야.
그러니 꼬마야. 너만은 고모에게 약속해줄래?
누가 뭐래도 너 하나만을 위한 길을 즐겁게 가겠다고.
그래, 맞아 생각하는 나무 얘길 하고 있었지.
그 나무는 생각했어.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
밤이 오면 조용함 속에서 300년동안이나 바라보았던 풍경을 바라보면서.
매일 봐도 처음 보는 것 같은 시선으로 말이야.
세상은 변하고 사람들은 오래된 것부터 없애기 시작했어.
그들은 산이 인간을 지켜주는 줄도 모르고 산과 나무를 깎고 베었단다.
그 나무도 잘려지고 베어졌어.
나무는 그 곳을 너무도 사랑했지만 그와 동시에 무척 여행하고 싶기도 했어.
그래서 무엇보다도 여행자의 하나뿐인 지팡이가 되기를 바래왔어.
무척 큰 나무였기 때문에 나무의 일부는 어떤 멋진 집의 일부가 되었고
또 다른 일부는 어떤이의 높은 사다리도 되었어.
학생들이 보는 책이 되기도 했고 악기가 되기도 했단다.
물건도 처음에는 사람처럼 생명을 담고 태어난단다.
하지만 소중히 여겨지지 않으면 그 생명은 금새 없어지고 말지.
나무는 그 모든곳에 고루고루 남은 생명을 나누어 담았는데 특히 작은 악기속에 많이 담아 두었어.
누군가 그 악기를 들고 세계를 여행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거든.
그러나 그 악기의 주인이 된 사람은 다리가 불편해서 늘 앉아서만 지내야 하는 남자였어.
나무로써는 이만저만 실망한게 아니었단다.
이번에야말로 세계를 둘러보며 여행할 수 있을 줄 알았던 희망이 사라진거지.
실망해서 축 늘어진 나무를 남자는 집어들었어.
"이번 악기는 손에 잘 감기는데. 뭔가 깊은 향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나무는 중얼거렸어.
"당연하지. 난 자네보다 삼백년을 더 살았다고"
남자는 뭔가를 들은 것만 같은 기분에 말했어.
"왠지 이 악기는 나에게 말을 하고 있는것 같아"
나무가 계속 말했어.
"자네를 보니 슬픈 마음이 드는군. 하지만 너무 그렇게 낙심 말게.
나도 한 자리에서 삼백삼십년을 살았다네.
그래도 그렇게 멈춰서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지, 이를테면 말이네...."
하고 나무는 중얼거리다 말을 멈추었어.
남자가 악기인 자기 몸을 들어 턱에 끼우고는 묘한 몸짓으로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거든.
그 때 나무는 평생 느껴본 적 없는 기분을 느꼈어.
자기 몸을 시작으로 남자와 나무에 음악이 흐르시 시작한거야.
해질녘 여름 바람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고 부드럽고 애잔하고
온갖 아름다운 풍경을 떠올리는 듯한 음악이 흘렀어.
그 멜로디는 나무의 생명을 가만히 안아 올렸어.
나무는 그 음악에 몸을 맡겼어.
그러자 나무의 영혼은 악기를 떠나 조금 하늘로 떠오를 수 있었어!
"내가 날다니! 나무였던 내가 날다니!"
음악이 그치자 나무는 다시 딱딱한 악기속으로 되돌아갔지만 아직도 나무는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지.
남자는 새로운 자기 악기가 아주 마음에 들었어.
해가지는 저녁이면 남자는 휠체어를 타고 자주 집앞 언덕으로 올라가 여러 곡을 연주했어.
나무는 조금씩 조금씩 더 멀리까지 날 수 있었어.
그래도 음악이 들리지 않는곳에까지 가고싶지는 않았지.
그래서 긴 곡이 연주될때면 언제까지고 남자의 곁을 날아다니며 춤을 추었어.
나무는 비록 남자가 걷지는 못해도 자유롭게 살아왔다는걸 느낄 수 있었어.
그 때부터 나무는 악기로써 다시 삼백년을 살았어.
남자가 죽고 남자의 친구에게, 그 친구의 딸에게, 그 딸의 제자에게.
그들 모두가 악기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겨주었기에 그만큼 생명을 지키는것이 가능했던 거야.
지금도 나무는 여행중이란다.
주인이 나무를 소중히 안고 음악을 연주하는 동안에
나무는 가볍게 날아다니며 주변을 둘러보며, 음악을 타고 여행하는 중이란다.
그러니 나의 꼬마야. 우리가 여행하듯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생명뿐만이 아니라, 너에게 끌리는 모든것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겨주었으면 좋겠다.
고모가 너를 생각하는 마음처럼.
여행하는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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