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산 할아버지와 비구름 ]

by 카나




비오는 수요일에 태어난 남자아이가 있었어.


비를 좋아해서 사람들은 '우산 소년' 이라고 부르곤 했지.


우산 소년은 우산 청년이 되고, 우산 청년은 우산 아저씨가 되었어.


그리고 우산 할아버지가 되어도 여전히 비를 좋아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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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할아버지는 물론 햇빛이 반짝반짝한 날도 무척 좋아했지만


일주일이 넘도록 비가 오지 않으면 여전히 초조하게 비를 기다렸어.


가족보다 더 비를 기다릴 정도였다니까.
















하지만 딱하게도 비는 점점 적어지기만 해서 할아버지의 속을 태웠지.


어느 해 가뭄이 심한 초여름이었어.


할아버지는 비를 기다리느라 야위고, 계속 목이 마른 기분이었어.


우산 할아버지 말고 농부도 비를 기다리고,


물고기들도, 나무도, 새도 비를 기다렸지만


아무도 할아버지만큼 비를 사랑하지는 않았어.








그리고 드디어 비가 오던 날,


할아버지는 우산도 쓰지 않고 비를 마중하러 나갔지.


비는 언제나 그렇듯 가만히 온 세상을 빠짐없이 적셨어. 하지만 이내 가늘어졌어.




- 그렇게 빨리 떠나지 말아 다오. 조금만 더 여기에 있어줘.


할아버지가 하도 간절한 온 마음으로 비를 바라봤기 때문에 비의 마음도 흔들렸어.


그래서 이틀 더 비가 내렸어.
















할아버지는 잠든 사이에 비가 조용히 가버릴까봐 깊이 잠들지도 못했어.


비가 망설이는 사이에 촉촉했던 땅에도 물이 넘치기 시작했어.


이대로는 홍수를 내겠다 싶던 비는 할아버지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작별인사를 했어.


할아버지도 더 이상 막을 수는 없었지.





대신 한밤중에 마을의 가장 높은곳에 올라가 비구름에 자기 몸을 묶은 밧줄을 던지려고 했어.


비를 따라가고 싶었던 거야.


하지만 아무리 매듭을 던져도 구름은 당연히 잡히질 않았어.


할아버지는 거기 주저앉아 엉엉 울었어.
















우산 할아버지가 애처로워진 비가 말했어.


꼭 다시 올테니 그때까지 즐겁게 나를 기다려 달라고.


할아버지는 사랑하는 비의 말을 새기고 또 새겼어.







그리고 비가 올 때까지 태양 아래서 꽃씨를 심고 나무를 키웠어.


할아버지의 나뭇잎들이 생기가 없어지고 꽃들이 먼지속에 말라갈때면 어김없이 비가 찾아왔어.


우산 할아버지는 자기 나무들옆에 작은 집을 짓고 변함없이 비를 기다렸어.


그러다 비가 공기냄새로 보낸 엽서를 코로 맡으면, 우산도 없이 마중을 나갔지.



비구름이 그 사람을 데려갈 때까지 우산 할아버지는 그렇게 살았단다.
















할아버지의 몸이 생명을 다하자, 비는 할아버지를 구름속에 껴안고 온 세계를 함께 다녔어.


마침내 우산 소년은 구름을 만지고 비구름에 밧줄로 자기몸을 맬 수 있게 된거야.



비가오는 어둡지 않은 낮에는 어쩌면 할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도 있을거야.


어느 비구름과 함께 있는 행복한 할아버지의 모습을 말이야.



몇 주째 비가 오지 않는 때면, 자기가 아끼던 나무들과 꽃이 말라죽지는 않았나.


누가 함부로 베어가지는 않았나 하는 걱정때문에


가끔 밧줄을 길게 풀고 땅을 내려다보러 오곤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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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할아버지와 비구름

2017 ⓒ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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