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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나 Aug 27. 2019

새 식구야, 환영해

매일 일어나서 먼저 베란다로 간다.

물에 담가놓은 벤자민 나뭇가지의 작은 싹을 보러간다.


처음으로 싹을 틔웠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물꽂이에 실패했었는데.

뾰족하게 나온 하얗고 가느다란 뿌리가 기특해서 자꾸만 바라보게 된다.






우리집에는 오래된 벤자민 화분이 있다.

이 나무가 우리집에 온지는 15년쯤 된다. 그런데도 나이에 비해 앙상하고 듬성듬성한 이 나무가 나는 애처롭다.

우리집은 식물을 특별히 잘 기르는 사람이 없다. 

식물에게 필요한 건 지속적인 관심과 관찰인데 그정도의 인내를 가진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 부모님이 잊지 않고 물을 주셨었다. 나는 화분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벤자민 화분은 빼빼 마르면서도 마지못해 조금씩 새 잎을 틔웠다.



이 나무는 우리집의 고통의 역사를 보았다.

아빠가 엄마를 위협하며 큰 가위-젊을 때 양복점을 해서 칼처럼 날카롭고 무거운 가위를 갖고계셨다-로 찌르겠다 협박할때, 울면서 말리는 내 모습을 보았다.

온몸으로 미움의 에너지를 내뿜는 엄마의 모습을 보았다.

보다못한 주민신고로 출동한 경찰관이 들이닥치는 모습을 보았다.

어느 날은 술에 취해 온 집안 물건을 부수는 오빠의 모습을 보았다.

또 어떤 날은 숙취에 바닥에 누워 자기 혐오로 얼룩진 내 모습을 보았다.



오빠도 나가고, 아빠도 결국 떠나고나서 누구보다 평화로워진건 바로 나였다.

그리고 두번째가 이 벤자민 화분일 것이다.

엄마와 나는 봄이면 흙을 사서 분갈이를 해주고, 웃자라거나 뒤틀린 가지도 잘라 주었다.

아주 가끔 탁해지고 납작해진 잎사귀 하나하나를 닦아 준다.

잎이 오래될 수록 검은 먼지를 얹고 있다.






한 때는 모든 것을 보았을 이 나무의 존재가 불편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 어느 화분보다 나에게 가까운 존재가 되었다.

화원에 파는 같은 종류, 비슷한 키의 벤자민 화분을 보았을 때 내 마음이 아팠다.

원래는 그토록 굵직하고 잎이 통통하고 윤기가 흘렀어야 하는 나무였던 것이다.

그리고 올해 처음으로 뿌리를 낸 꺽꽂이 뿌리를 보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예쁜 화분을 가져오고 촉촉한 흙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해 줄게.

네가 기억하는 그 어떤 장면들보다 평화로운 마음만 보여줄게.

그러니 마음을 놓고 뻗어나와, 나를 만나러 와 줘.

우리집의 새 가족이 되어 줘.

하고 마음으로 말한다.

식물은 마음의 말을 알아듣는다고 믿는다. 

언젠가 내가 높은 주파수를 내는 날이 오면, 우리집 벤자민 화분하고도 대화할 날이 올까.




올 여름에 우리집에 아주 작은 새 식구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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