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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나 Sep 02. 2019

공연 본 날과 꿈 두 조각






몇 주 전에 가까스로 예매에 성공해서 공연에 갔었다.

이젠 그사람 팬들도 연령층이 완전히 어려져서 대부분 20대로 보였다.

스탠딩 공연은 오랜만이었다. 기다린 시간을 포함해 세시간 반을 서 있으려나 다리가 무척 아팠다.

나는 어린 사람들 틈에 끼여 웃으며 조용히 박수를 쳤다.

나와 동갑인 그 사람은 방청객을 향해 '지금 방학이죠?'하고 첫인사를 했다.

그 사람과 나 사이의 간격이 더 멀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 사람을 보고 싶었다. 

실제로 존재하며 땀흘리고 노래하며 눈앞에서 움직이는 모습을 확인해야 했다.

매일매일 목소리를 듣는 사람.

잊을만 하면 꿈에 나오는 사람.

나만 친근한 사람.

저 사람에게 보일 내 모습을 생각했다.

환호하는 한 덩어리의 사람들속의 조그마한 점.

그래도 당신이 행복하게 노래하면 그걸로 됐어.


딱딱해진 다리로 집에 돌아오면서, 이젠 가지 말아야지 생각했지만

확신은 할 수 없다.












일요일이라 늦잠을 잤다.

오랜만에 선명한 꿈을 꾸었다.






나는 어느 큰 댁의 남자 머슴(양동근을 닮았다), 아니면 그 친구인데 정확히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총명한 주인집 딸(6학년때 우리반 부반장을 닮았다)은 머슴의 친구이다.

우리 셋은 그 집안에 얽힌 어떤 비밀을 캐내기 위해, 비밀통로로 출입하며 필요한 것들을 조사하고 공유했다.



어느 날 조사중인 나는 해가져서 어둑해지는 산길을 걷고 있다.

그런데 산길 옆으로 평평한 언덕같은 장소에 파랗고 작은 새 두마리가 나란히 누워있다.

지나쳐서 앞으로 걸으니 더 넓은 언덕에 똑같은 종류의 파랑새들이 몇백마리나 나란히 붙어 누워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새들은 눈을 꼭 감고 있지만 죽은 것 같지는 않고 잠이 든 것 같았다.

소리하나 없이 고요한 새들 사이로 바람이 불어 파란 솜털이 가만가만 나부꼈다.



그리고 난 누군가 뒤따라옴을 느끼고 그 사람을 따돌리려 빠른걸음으로 반대방향으로 걸었다.

주인집 딸의 방으로 곧장 들어간 나는, 곧게 앉아 있는 나의 지혜로운 친구를 보았다.

그녀가 고운 얼굴을 끄덕이고 그 방의 바닥쪽 통로로 나를 빠져나가도록 도와 주었다.


그런데 그 찰나에 나는 주인어른이 이 모든걸 알아챘다는것을 직감으로 알아버렸다.









식은땀을 흘리며 잠이 깨어 물을 마셨다.

거실 베란다에 서서 촉촉히 내린 길가를 내려다보다가 다시 침대로 가서 누웠고 또 다른 꿈을 꾸었다.










나는 11-13쯤 되어보이는 여자아이로 아이들도 식구도 많은 집의 가족이다.

내 머리카락이 밝은색이고 사람들 옷차림을 보니 서양인것 같았다.

우리집에는 늘 손님이 많다.

그 손님들 중 한명이 스무살쯤 되어보이는 그 오빠였다.


웃으면 선이 가늘어지는. 머리카락 색도 흐린 상냥한 그 오빠가 나는 좋았다.

오빠를 포함해 다같이 앉아 밥을 먹을 때, 나는 식사 도중 욕실로 가서 세수를 했다.

거울을 보고 로션을 바르고 립크림도 발랐다. 최고로 예쁜 모습만 보이고 싶었다.




저녁에 가족들과 손님들이 모두 밖으로 나가 정원에서 춤을 추는 시간이 있었다.

우리는 짝이 된 사람과 어느정도 춤을 추다가 끝날땐 각자의 제스쳐로 상대에게 감사 인사를 대신한다.

그리고 다시 원으로 돌아 다른 사람과 짝이 되었다. 그게 우리 가족의 즐거운 룰이다.


나는 오빠와 다정하게 춤을 추었다. 나의 끝인사는 손으로 뽀뽀를 해서 상대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웃어주는 오빠의 얼굴을 보며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다음 짝이던 내 어린 여동생이 오빠의 짝이 되어 춤을 추다가 끝인사로 오빠에게 살짝 입을 맞췄다.

그게 그 아이의 마무리 인사였고 할머니나 언니에게도 똑같이 입을 맞췄다.

오빠는 공평하게 여동생에게도 상냥한 미소를 보냈고 

나는 그 순간 갑자기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여자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감정을 숨기려고 애쓰며 암담한 심정으로 다른 사람과 춤을 추었다.

뭉개지는 감정에 마음이 아파 어쩔 줄을 몰랐다.

정말 방법을 몰랐다.

그저 끓어오르는 감정에 쫒겨 애처로울만큼 후들거렸다.

다시는 웃어주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깨고도 한동안 그 강렬한 질투와 슬픈 감정이 남아있을 정도였다.







꿈을 꾸면 꿈 일기장에 바로 적어둔다.

적어두지 않으면 감정도 풍경도 금새 잊어버린다.

의미는 모르지만 나중에 읽어보면 꼭 다른사람이 꾼 꿈처럼 느껴져서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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