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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나 Sep 05. 2019

일상과 나라는 성질

하기 싫은 일이 너무 많다.

모든게 귀찮고 버겁다.

어쩌면 그 이유가 집에 누가 있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그게 아니면 '해야하는 일'에 지친걸까.

해야하는 일을 해야만 하고싶은 일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다. 나는 쭉 그렇게 해왔다.


수영장에 가기위해 집을 나설 때도 몸을 일으키기가 너무 귀찮다.

다만 어른이 된 나는, 수영 후 샤워하고 스포츠센터를 나서는 상쾌함을 기억할 뿐이다.

그 기억으로 나를 달래 터덜터덜 수영장을 향한다.

매일 영어공부하고 운동을 10분이라도 하고, 일기를 쓰는 것도 하기 싫어 괜히 시간을 끈다.

일기는 매일 쓴 지 벌써 13년이 넘었는데도 일기장을 펼치며 그냥 자고싶다 생각한다.

그래도 그걸 하고 난 작은 성취감을 나는 알고 있다.

그 성취감이 쌓여 매일의 나를 새롭게 다진다.









페어나 모임에 다녀오면 받거나 산 물건을 그냥 방 한쪽으로 쌓아둔다.

그 쌓아둔 물건더미를 보며 잠이 깨고 잠이 들고 머리를 말리고 로션을 바르고 커피를 마신다.

그렇게 완전히 내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 만지고 싶어질 때까지 내버려 둔다.


3년전 알게된 모임에서 옆옆에 앉은 분의 향이 너무 마음에 들어 다가가 물어 본 적이 있다.

그 분은 친절하게도 약속을 잡아 나를 만나 직접 만든 향수를 작은 병에 나누어 주셨다.

감사해 어쩔줄 모르며 받으면서도 나는 그 플라스틱 병을 화장대 한켠에 따로 두고 외면했다.

뚜껑도 열어보지 않고 만지지도 않은 채 한 달이 넘게 방치했다.

그리고 한 달 반쯤 지나 손목에 뿌려보고, 내가 얼마나 이 향에 반했었는지가 기억났다.

그 향수는 아껴서 소중히 쓰고 2년만에 깨끗하게 비워졌다.












10년만에 비즈커튼을 빨았다.

고무장갑을 끼고 커튼을 대야에 담고 비눗물을 넣어 문지른다.

평평하고 둥근 자개로 만든 비즈 커튼은 2미터 길이에 모두 10줄이다.

짤깡짤강 조가비 소리가 나는 빨강색과 하양의 교차된 동그라미.

지금은 마치 네일샵 커튼을 떠올리게 하지만 10년전 내눈에는 세련되고 예쁘게 보였었다.

둥근 자개를 하나하나 흐르는 물에 씻어 널었더니 처음처럼 색이 밝아지고 대야는 먼짓물로 검어졌다.


원래는 오늘 저 커튼을 떼어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했었다.

유행도 지났고, 오래되기도 했고, 무엇보다 전 남자친구가 사준 물건이기 때문에.

그런데 엄마가 버리기엔 너무 아깝다며 몇번이고 말리셨다.

그런가 싶어 의자를 두고 올라가 떼어 욕실로 가져와 천천히 씻었다.

"네 방, 그거 떼니까 엄청 허전해 보인다, 그치?"

엄마가 욕실문 앞에 서 있다.


"그래? 난 모르겠는데"

"허전해, 그 커튼이 네 방 트레이드 마크였는데 쓸쓸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엄마가 무척 외로운 사람이라는걸 새삼 느꼈었다.


커튼은 작업방 베란다에 달았었는데 바람소리때문에 시끄러워서 결국 다시 떼어 상자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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