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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나 Sep 09. 2019

도움이 되길 바라긴 했나요

아버지는 예전에 말하셨었다.

'내가 하는 말 중에 도움되는 것만 대강 가져가라' 고.

진지하게 한 말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맥락없던 여러 말 중에 하나였다.

근데 가끔 그 말이 생각난다.

도움 되는 것만 대강 가져가라.




아버지는 모든 말에 필터가 없었다. 생각나는 대로 뱉으시는 편이었다.

상대의 반응을 살피거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집에 손님들이 올 때면 아버지는 들뜨다 못해 넓지도 않은 집을 뛰어다니실 정도였다.

흥분해서 얘기하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싸우는 것처럼 컸다.

그리고 쉴 새없이 바로 떠오르는 것들을 얘기했다. 

말할 때 침이 튀는 것도 모르시는 듯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조증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버지는 지금도 어디선가 흥분하며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로 말하고 계실까.

아니면 혼자 조용히 식사하고 넥타이를 멘 후 운전하러 나가고 계실까.


아버지를 생각하면 밉다는 생각보다 안됐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차단한 아버지 번호를 풀 용기가 없다.

단지 어디에 있든 아버지가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아버지가 한 말씀 중 도움이 되는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수영장 큰 물에서 처음으로 수영했다.

어제 강사님이 깊은물 쪽에 서서 우리반 모두 이 쪽으로 넘어오라고 크게 손짓했다.


나와 그리고 동양화여자애는 - 머리가 까맣고 눈이 가늘고 피부가 아주 희다- 우리 둘만이 이번달에 한달만에 월반을 했으므로 우리는 제외라고 생각하고 처음엔 가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도 포함이었다.


처음 들어간 1.2미터 풀은 낯설었다. 

몸을 돌리다 뒤로 한참 넘어져도 엉덩이가 닿지 않았다.

덜컥 겁도 나고 현실적이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밖에서 봤을 땐 몰랐는데 1.2미터 풀은 끝으로 갈수록 바닥이 비스듬히 깊어져 맨 끝은 1.5미터였다.

키판을 들고 아무리 자유형을 해도 끝이 보이지 않아 새로웠다.


수업이 끝나고 다른 분들은 익숙한 0.8미터 초보자 풀로 연습하러 가셨다.

나는 가지 않았다.어차피 없어질 자전거 보조바퀴에 익숙해지기 싫었다.

현실에 익숙해지고 싶었다.












수박과 냉면을 열심히 먹은 여름이었다.

어제 엄마랑 수박을 갈랐는데, 겉보기와 달리 속이 스펀지같았고  한쪽에 섬유질이 뭉쳐있는곳도 있었다.

분명히 아주머니가 맛있고 좋은 수박이랬는데.


투덜거리며 먹고 있다가, 섬유질 한쪽이 찌그러져 하트모양이라는 걸 알았다.

엄마에게 알려주자,

"수박 요놈 이런거 만들고 있을 시간에 맛있기나 하지.

학생이 공부 안하고 딴짓하는거랑 똑같애"

라고 해서 엄청 웃었다.


엄마는 가끔 무방비 상태로 나를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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