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복 후 또 다시 비가 시원히 오더니 공기가 갑자기 선선해졌다.
열대야가 없어지면서 이제는 드디어 거실이 아닌 내 방에서 잠을 잔다.
저녁에는 시원한 바람이 분다.
마침내 여름중에서도 가장 예쁘고 맛있는 부분만 남았으니 이제 천천히 맛보면 된다.
오늘 수영장에서 물을 마셔버렸다.
수영을 시작할 때 물 먹어도 별 수 없다는 각오로 가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물을 꿀꺽 삼키는 일은 없었다.
코로 들어가 머리가 띵하거나 귀에 물이 들어가는 일이 종종 있는 정도였다.
그런데 오늘은 세번이나 수영장물 꿀꺽을 해 버렸다.
키판과 거북이(작은 스티로폼 판이 붙은 허리띠)를 떼고 드디어 제대로 몸을 띄우며 호흡하기 시작한 것이다.
몸으로 물을 누르며 잠깐 머리가 수면으로 올라올 때 재빨리 숨을 쉬어야 한다.
그렇다고 조급한 마음에 수면에 올라오자마자 숨을 쉬면, 입과 코로 물이 너무 많이 들어온다.
꼭 턱까지 완전히 올라왔을때 쉬어야 한다.
언제나 문제는 공포다.
숨이 막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나는 물에서 제대로 호흡을 내뱉지 못하거나 수면에서 숨을 너무 빨리 쉬었다.
그럴때면 여지없이 물을 삼키게 된다.
수영장 물은 아주 더럽다. 우리는 매번 같은 물에서 수영한다.
매일 밤 찌꺼기와 불순물들을 걸러내는 기계들 덕분에 깨끗해 보일 뿐이다.
샤워를 한다고는 하지만 사람 몸에서 나온 각질과 머리카락, 침.. 그리고 엄.. (생략)
그래서 켁켁거리며 배수구에 물을 뱉으려고 하지만 한번 삼킨 물이 뱉어질리가 없다.
마냥 그러고 있을 순 없으므로 곧 다시 수영 연습을 한다.
나같은 결벽증이 수영장 물을 마시며 수영을 하다니.
새삼 신기하고 어쩐지 싫지않는 기분이다.
오늘 한 아주머니가 사물함 열쇠를 수영장 바닥에 떨어뜨리셨는데 1.5미터 바닥에 아무도 가라앉을 수가 없어서 열쇠를 쉽게 찾아드리지 못했었다.
그러자 강사님이 바닥으로 완전히 가라앉아 엎드리거나 앉는법을 가르쳐 주셨다.
숨과 힘을 완전히 빼고 당황하지만 않으면 된다.
다들 무서워했으나 어쩐지 나는 조금 되는것 같아 신이 났었다.
수면에 올라와 숨을 쉰 후 다시 한번 숨을 빼고 이번엔 바닥에 완전히 다리를 펴고 앉아보았다.
조금 더 되는 것 같았다.
물안경 너머로 사람들의 다리와 온통 파란 타일들이 보였다.
단 몇초밖에 되지 않았을텐데 그 순간이 영원처럼 고요하게 느껴졌다.
그 때, 강사님의 힘 센 손이 다급히 날 끌어 올렸다.
"사고 난 줄 알았잖아!"
나는 히히히 웃었다.
그 후에는 바닥에 엎드려도 봤다. 금새 일어나야 했지만 폐활량에 욕심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씻고 나와서 머리를 멀리며 윗층 전망대 창가에 앉아 수영장을 바라보았다.
일제히 노련하게 수영하는 사람들과 강사님들.
단체로 같은 수영모를 쓰고 능숙하게 접영하는 아주머니들.
언젠가 저렇게 정말 할 수 있으려나.
돌아올 때, 늘 인사하는 보리수나무와 인사하고 돌아왔다.
벤치까지 가지를 곡선으로 늘어뜨린 멋진 나무였는데,
얼마 전 구청 직원들에 의해 무참히 가지치기를 당했다.
거의 기둥밖에 남지 않은것처럼 보였다.
그 날 아침 수영하러 오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하지만 뿌리와 중심이 남아있으니 다시 가지와 잎을 뻗고 열매를 맺겠지.
불평 한 마디 하지 않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