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나 Oct 01. 2019

수영장에서도 궁금한 내 나이


오늘도 수영 수업종료 20분 전에 1.2-1.5m 일반풀로 들어가 연습했다.


수업이 거의 끝나고 내가 좋아하는 '밑바닥 가라앉기'를 다시 연습해보다가,

우리반 여사님 한 분의 심장을 떨어뜨릴 뻔 했다.

여사님 말씀으로는 접영 연습을 더 하려고 앞으로 걸어나와 시작하려는데, 밑바닥에 묵직한게 걸려서 너무 놀라셨다고. 정말 몇 번이나 말씀하시며 가슴을 쓸어내리셨다.


나는 물 위로 얼른 올라와서 당황하고 죄송한 마음에 "죄송해요"라고 한다는걸 그만

"어엇 미안 미안"이라고 해 버렸다.


그 이후로 여사님이 나를 '겁없는 아가씨'라고 부르신다.

나 엄청 겁쟁인데.


오늘 평형 팔 다리 따로 하는 박자를 드디어 익혔다.

아무래도 개구리 다리 할 때 접은 상태에서 무릎을 너무 벌리는 것 같은 생각에 수영장 끝을 손으로 잡고 엎드려 발만 연습하다가 강사님에게 '손이나 연습해! 손 완전 이상해!!'라는 말을 들었다.


니예 니예 니예, 다음 시간엔 더 완벽하게 감 잡아서 잔소리를 안 들어야겠다.













오늘 마지막 수영을 끝내고 돌아왔다. 두 달동안 단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엊그제 수영 수업중에 내 나이를 묻는 분이 있었다.

우리반 중 서너명이 좀 어린 아가씨들인데 잘 뭉쳐서 꺄르르 웃곤 하는 모습이 물의 요정들 같아서 귀엽다.


그날도 구석에서 꺄륵거리다 한 명이 내 쪽으로 와서 나이를 물었고 나는 당황해서 왜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이번엔 더 포괄적인 질문으로 물었다. " 20대? 30대?"

내가 30대라고 하자 무슨 말을 하며 웃었는데 잘 못 들었다. 

그냥 나는 부끄러웠다.


수영법 자세를 설명하던 강사님이 무슨 일이냐며 나무라는 어조로 물었다.

이 분 나이 얘기중이었다고 누군가 얘기하자 강사님이 나를 보며 물었다.

"그래서 몇 살인데요?"

나는 어이가 없어 웃으며 얼버무렸다.





집에 오며 어째서 내가, 사람들의 어려보인다는 말에 순수하게 기뻐하지 못하고 부끄러워하는지 생각했다.

물론 젊어보인다는 말은 기쁘다. 문제는 내가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내가 내 나이를 떳떳하게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을 들킨 부끄러움이었다.

나는 내 나이를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내 나이가 아직도 익숙치 않다.





그래서 오늘 강사님이 뜬금없이 연습 중에 몇살이냐고 물었을 때 얼버무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태연하게 행동하고 싶었다.

내 나이를 있는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서른 여덟인데요"

옆에 있던 스물 두살 아가씨가 히익 놀라는 얼굴을 모른 척 하면서.



강사님은 얄밉게도 내가 나이가 있어서 습득이 느리다고 했다.

처음 왔을 땐 정말 못했는데 노력파라 단시간에 이렇게 많이 나아진거라고.

웃겨서, 제가 그렇게 못했냐고 묻자 "어"라고 정색했다.





샤워를 하며 왜 나도 그때 강사님 나이는 몇 살이시냐고 되묻지 못했을까 한탄했다.

상대방이 무례하게 구는데 나는 왜 꼬박꼬박 대답만 했을까. 쳇쳇쳇

이렇게 소심한 후회를 하며 머리를 벅벅 감았다.






수영은 이제 보조 도구없이 평영으로 숨을 위며 앞으로 나아간다.

자유영은 서툴지만 배영으로도 갈 수있고, 오늘은 접영으로 가며 숨쉬는 법을 약간은 알았다.

그리고 오늘도 바닥에 쪼그려앉기를 하다가 물의 요정중 한 명을 놀래키고 말았다.




손가락으로 머리를 말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바람에서 서늘한 가을냄새가 난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치과를 다니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