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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나 Nov 17. 2019

예감에는 이유가 있다

"아까도 지적했는데 왜 그렇게 못 알아들어욧!"

발레 선생님이 반쯤 웃으며 다시 다가와 턴아웃의 방향과 몸의 중심에 대해 다시 알려주신다.


아까 낮에.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하고 있을 때 그런 말을 들은 나는 당황해 어쩔 줄을 모른다.

땀이 끊임없이 흘러 레오타드를 진하게 적시고 있다.

이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솔직한 말을 한다.

"아직 정확히 이해를 못하겠어요.. 감이 안오네요"

전면 거울속에 환하게 웃고 있는 내가 보인다.



남들이 보기엔 마치 이 상황을 재미있어하거나 즐기고 있는것처럼 보이도록.

남들이 민망하거나 어색하지 않도록 웃고 있다.


수업은 좋았다. 

선생님이 지적한 말씀도 다 맞는 말이라는 것도 알겠다.

그런데 가끔 발레선생님이 유독 나에게 더욱 심한 말을 하는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작은 말들이 또다른 나의 사랑하는 발레선생님과 멀어지는 계기가 되었었다.

작년 내내 일주일에 두번 꾸준히 함께 했던 나의 선생님이 계셨다.

수업을 같이 듣는 나와 몇몇 분들은 모두 선생님의 열정 가득한 클래스를 사랑했었다.

정확하게 지적하는 선생님이 말 또한 날카롭게 한다는걸 알기에 매번 웃어 넘겼다.

그러자 말의 강도가 미묘하게 점점 더 심해졌다.


- 이런건 개인레슨이 아니면 고치기 힘들다니까, 몇번을 말해!


사정이 생겨 다른 회원들의 시간이 들쑥 날쑥해지면서 정규수업보다 개인레슨 수업의 비중이 높아진 때였다.

내 적은 돈으로 개인레슨은 도저히 무리라 그냥 묵묵히 버텼었다.


거의 결석하지 않았던 유일한 회원인 나는 어느날 집에 오며 울고 싶어졌다.

나보다 일곱살이 적은 선생님을 한번도 어리다고 생각해본 적 없고 늘 존중하고 존경했었다.

그랬기에 나쁜 의도가 아닐거라고, 그런 뜻이 아닐거라고, 내가 예민한 모양이라고

매번 나를 달래왔었다. 

그리고 그 감정이 올해 8월말에 정점을 찍었다.





나는 선생님을 떠남과 동시에 발레와도 조금 거리를 두었다.

이제는 일주일에 단 한번, 토요일에만 다른 발레학원에 다닌다.



어쩌면 남들이 내게 함부로 말하도록 내가 행동하는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내 문제이기도 하다.

늘 어떤 그룹에 속해 있으면서도 누군가 한 명이 기분이 안 좋아보이면 신경이 쓰였다.

'내가 뭘 실수했나?'

무작정 내 잘못인가 라는 생각부터 먼저 든 것이다.

나를 먼저 탓하기라는 가학에 가까운 습관이 성인이 되어서도 나아지지 않았던 것이다.









3년 전,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자주 마주치던 성진씨가 기억난다.

쾌활했고 늘 웃는 얼굴에다 영어가 능숙해 주변에는 늘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이 많았다.

영어가 서툴다는 열등감 때문인가 나도 모르게  자꾸 성진씨에게 의지하게 되는게 싫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 날은 좀 더 일찍 일어나 혼자서 멀리까지 걸었다.


순례자들이 적은 숙소에 짐을 풀고 식사를 주문해 조용히 식사하고 있을 때였다.

밖에서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리더니 곧 성진씨 일행이 들어왔다.

나는 놀람과 동시에 반가웠었다.


-누나, 왜 우리 버리고 먼저 갔어요? 계속 찾았는데...

나는 놀라고 미안한 마음에, 정말요?? 하고 물었다.


-아뇨. 거짓말인데.


하더니 무표정하게 체크인하고 올라가버렸다.





내 기분은 순식간에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졌었다.

방으로 돌아와 조용히 스케치를 조금 했지만 손에 잡히지 않았다.

창 밖으로 작은 수영장을 둘러싸고 성진씨와 친구들이 물에 발을 담근 채 영어로 웃으며 얘기 나누는게 보였다. 나는 밖으로 나갔지만 성진씨는 선글라스를 쓴 채 나를 휙 지나쳐 버렸다.

내 존재 자체가 거부된 것 처럼 느껴졌다.

눈물이 날 것 같아 입술을 깨물고 침대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마음을 먹었다. 직접 대면하고 물어보기로.

성진씨는 밖의 레스토랑에서 식사중이었다. 


내가 뭐 기분 상하게 했냐고. 잘못한게 있냐고. 알려달라고 다짜고짜 말을 걸었다.

어? 하는 얼굴로 성진씨가 나를 올려다 보았다.

선글라스를 벗지 않아 햇빛에 반사된 눈이 아주 흐리게 보여 표정을 읽을 수가 없다.

당황한 얼굴인지 짜증이 나는건지 미안한 얼굴인지 놀란 얼굴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닌데. 누나. 저 기분 안 상했어요.


그대로 다시 올라와 침대에 누웠다. 갑자기 순례길도 사람들도 모든것에 염증이 났다.

그 때 성진씨가 올라와 말했었다.


- 저 진짜 기분 안 나빠요. 누나. 그냥 피곤해서 그랬나봐요.


대답도 못하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내가 들은 저 말들이 정말 나를 상처주려는 의도였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저 내 열등감이나 자신감의 부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내가 느낀것이 있다.

나는 좀 더 나를 믿어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모든 느낌에는 이유가 있다.

나를 믿어줘야만 그 다음으로 나아가 내 문제를 바라볼 수도 있다.

이유가 뭐든간에 그 다음으로 나아갈 수가 있다.


더 많이 내가 느끼는 감정을 알아차리고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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