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나 Dec 02. 2019

버스를 타고 옛날로

단짝친구들이었던 A와 B를 6년만에 만났다.


토요일.

출발시간을 잘못 계산해서 내가 거의 한 시간이나 늦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처음 가보는 A네 집에 가는길 풍경은 새로웠다.

버스로 한 시간을 넘게 달려 소래포구를 지나쳐 오이도역에 내렸다.

둘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미안한 마음에 먼저 계산대로 달려가 커피를 샀다.

셋이 카페에서 얘기하다보니 시간이 그렇게 흐른건지 잘 실감이 안 났다.


안부를 묻고 재밌었던 일을 얘기해주고 많이 웃었다.

아쉬워 음료 한잔씩을 더 마시며 장장 5시간을 카페에 있었던것 같다.





밤엔 친구네 집으로 가서 아이들과 친구의 남편도 만나고 다같이 저녁을 먹었다.

나와 아이들을 제외하면 다들 술을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안주와 술을 더 가져와서 술자리가 되었다.

이제 나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분위기는 좋았었다.

안주를 조금씩 집어먹으며 아이들을 케어하는 친구A의 모습도 보고,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주는 친구B의 모습도 구경했다.

무뚝뚝한 나에게 아이들은 잘 다가오지 못했지만 굳이 노력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자고가라는 약속 도장 찍으라고 빨간인주를 가져오는 첫째아이의 말에 얼떨결에 지장까지 찍고 왔다.




그리고 늦은 새벽, 잠을 못 이긴 아이들이 먼저 잠들어 방으로 옮겨 뉘이고 나자, 실내온도가 확 떨어졌다.

남편분도 피곤하신지 잠을 자러 들어가시고 우리 셋만 남았다.

한결같고 무던한 A도 여전하고, 늘 취하면 강한 에고가 나오는 B도 여전하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내 모습도 여전하다.

격한 말을 써가며 B가 나에게 말하는 횡설수설한 서운한 감정을 들어주었다.

A와 겨우 달래 B를 재우고 둘이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챙겨서 새벽 첫차를 타러 나왔다.

오랜만에 타는 일요일 새벽 첫 버스에는 늘 사람이 많아 놀라게 된다.




무사히 잘 탔다는 메세지를 A에게 남기고 창밖풍경을 보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태어나줘서 고마워. 생일 축하해'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예전처럼 술자리에서 돌아오는 새벽길이 허망하지도 미칠것 같지도 않았다.

그냥 좀 피곤하고 덤덤했다.

옛 친구들을 더 자주 만나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다시는 보고싶지 않을 정도로 싫지도 않았다.

과거로 하루 훌쩍 놀러 다녀온 기분이었다.



집에와서 옷을 갈아입고 익숙한 내 침대에 기어들어갔다.

명상을 하고싶었지만 너무 졸려서 뜻대로 되지않아 포기했다.

이렇게 긴장을 풀고 잠 잘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것에 감사하며 기절하듯 잠들었다.



세월이 지날수록 나 자신에 대한 감정은 예민해 지고

내가 남을 바라보는 감정에는 확신이 없어진다.

그럼에도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매년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페인식 감자 오믈렛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