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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나 Dec 09. 2019

약한 나를 인정하되 탓하지 않기로

요즈음 할 일이나 작업을 할 때, 유튜브를 통해 자주 틀어놓는건 비오는 배경음이다.


유리창에 톡톡톡 떨어지는 빗소리.

빗물을 밟고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

비와 천둥소리 사이로 들리는 실내의 장작불 소리.


그런 소리를 들으며 앉아있으면 편안하고 아늑하다.

여기가 아닌 나만의 장소를 상상할 수도 있다.



어젯밤 친구와 통화를 하며 그녀의 몇 마디에 화가 나서 나도 짜증을 내고 말았다.

능력이 없는 나를 걱정해주는말, 장난으로 나를 비난하는 말, 가진게 많다고 부러워하는 말.

하나같이 나에게 와 닿지 않던 이유는 그녀가 내 감정에 동일하게 서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반대편에 서 있는 듯한 공감 없는 말들이 전화기를 통해 느껴졌다.



내 열등감 때문이라고만 여기기에는 이런일이 이번 뿐이 아니었다.

어제 침대에 누워 새벽 내내 그 일로 고민을 했다.

호흡명상도 몸에 힘을 빼는 일도 별로 소용이 없었다.

발끝은 찬데 머리와 가슴만 과열된 듯 뜨거웠다.











수면부족으로 수영장에서는 좀 어지러웠지만 마음은 훨씬 후련해졌다.

샤워를 하고 젖은 머리로 돌아오는길에 다시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사실 화가 났고 서운했다고.

그녀는 놀라며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 했다.

자기는 늘 누구보다 내 옆에서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항상 나를 친구 이상의 감정으로, 무엇을 주어도 아깝지 않다고 했다.

지금 내 상태가 너무 예민하고 꼬여있는것 같아 마음이 안 좋다고 했다.

때때로 나에게 힘들고 서운한 적이 있지만 늘 내 편이라는 말도 했다.

내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전화기를 귀에 댄채로 바보처럼 아파트 현관에 서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미안해서도 아니고 고마워서도 아니고 마음이 풀어져서도 아니었다.

외로웠다.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가장 나를 아프게 만드는것이 괴로웠다.

늘 문제의 근원은 나라고 은근히 알려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게 외로웠다.











나라는 사람의 인간관계가 어디서부터 잘못된건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느끼는 감정을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

잘못을 나에게만 돌리거나 비난하지 않기로 했다.




원래도 외출이 몇번 없지만 당분간은 내키지 않는 외출은 아예 하지 않기로 했다.

괜찮은 척 하지도 않기로 했다.

그래서 마음과 곁을 잃는다해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집에 들어와서 다시한번 시원하게 울었다.

그런 다음 눈물을 닦고 바로 목을 가다듬고 휴대폰으로 조명가게의 번호를 찾은다음 전화를 했다.

전기 기사님 전화번호를 받아 주소를 말씀드리고 출장을 부탁드렸다.

저번주부터 내 방 조명이 문제가 생겨서 아예 안정기를 갈아야한다는걸 알았었다.

기사님이 오시고 상의끝에 LED전구로 바꾸기로 하고 설치를 보고 불이 잘 들어오는걸 보았다.

감사인사를 하고 금액을 지불하고 배웅하고나서 주변 정리를 했다.


이럴때 내 생활력을 느낀다.

감정은 감정이고 생활은 생활이다.

전구가 들어오니 이제 다시 방에서 영어수업과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눈부신 조명으로 새롭게 시작된 월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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