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나 Aug 19. 2020

이모가 죽고싶다고 말했다.

전화기속 기타이모가 울면서 말했다. 

어제 상처줘서 미안했다고. 내가 미쳤었다고.

마음이 아팠다.


어릴때 이모들은 나에게 있어 아름다운 별들이었다.

엄마보다 나에게 상냥했고 저마다의 매력을 갖고있어 어린 내 눈에는 한없이 예뻐보였다.

특히 기타이모는 기타를 좋아해서 - 이모는 늘 기타를 키타라고 불렀다. 그 독특한 이모만의 느낌 - 혼자서 기타를 안고 독학해보기도 하고 낡은 피아노를 쳐보기도 했었다.

언젠가 한번은 우연히 기타이모방에서  친척동생이 보여준 이모가 끄적인 그림들을 보았다.

대부분이 손과 얼굴, 식물들의 연필 드로잉이었다. 

제일 기억나는건 발가벗은 아이가 등을 돌리고 고개를 숙이고 구부정하게 서 있는 그림이었는데,

그 아이의 애처로운 등에는 작은 날개가 달려있었다.

기타이모는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만큼 성격의 기복이 심해서 어릴때 기타이모가 화를 못참는 장면을 몇 번이나 본 기억이 있다.




어릴때 엄마가 나를 기타이모집에 가끔 맡겼을 때, 이모는 나를 위해 도너츠를 만들어 주었다.

우리는 이모의 옥탑방에서 마주앉아 설탕이 자근자근 씹히던 갓 만든 동그란 도넛을 먹었다.


그런 기타이모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다시 이혼을 하고 머리 수술을 두 번이나 하는, 

여러번의 삶의 위기를 겪는것을 나는 그저 지켜보았다.





엊그제 우리는 밭일을 도우러 시골에 갔었고 기타이모는 머리가 아프다고 잠을 잠깐 잤었다.

잠에서 깨어난 기타이모가 갑자기 뭔가를 오해하기 시작했고 굳은 표정으로 입을 꾹 닫고

모두가 말리는데도 그 땡볕에 나가 혼자서 계속 풀을 베었다.

나는 몇번이나 기타이모를 달래고 물을 가져다주고 화를 내보기도 했지만 이모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혹시 나에게 화나난건 아닌가 생각했을 정도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볕이 너무 뜨거워 다들 집안으로 들어온 그 햇빛 속에서.

그리고 자신을 학대한 기타이모는 탈진이 되고 지네에 다리를 쏘였다.

나중에 물으니 자기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그냥 빨리 죽고 싶다고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기타이모에게 심리상담을 권했지만 이모는 대답하지 않았다.

심리상담이든 명상이든 요가든 상관없으니 기타이모가 이모 자신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랬다.










전화로 나는 말했다.

나는 상처 받은것 하나도 없다고. 그러니까 괴로워 말라고.

이모 자신을 괴롭히지 말고 잘 지켜주라고.

기타이모는 내 말이 들리는지 안들리는지 여전히 자신에게 험한말을 하며 울었다.


전화를 끊은 뒤 기타이모가 보내준 아이스크림 쿠폰을 보았다.

기타이모에게는 마흔이 다 되어가는 내가 마냥 어린 조카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 제일 슬픈 아이스크림 쿠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타이모는 더 이상 기타도 피아노도 치치 않지만 내 기억속 기타이모는 늘 기타를 안고 있었다.

삼촌과 함께 기타를 치며 서툰 목소리로 '그대 그리고 나'를 부르고 있었다.

아니면 도넛을 반죽하다가 나를 보며 웃고 있는 모습.


그 어떤 모습이라도 좋으니 기타이모가 안정을 찾기를 바라도 또 바랬다.

이제는 기억에 흐릿한 이모가 그린 그 구부정한 천사아이가 고개를 들고 날개를 펴기를.

조카가 아닌 같은 하나의 사람으로서 그저 바라고 또 바랬다.





매거진의 이전글 들린다고 말할수 있는게 아니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