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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조 Aug 13. 2022

진화론과 하락장에서의 대응

손절한다는 게 참 쉽지 않다. 자금이 완전히 먹혀버린 '22년 3월 이후 손만 빨고 있었던 게 그 이유다. 손절하지 못해서. 그렇다면 손절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심리일 것이다. 손실이 확정되어버린다는 두려움 그리고 내가 내린 결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에서부터 도망치고 싶은 수치심. 손절해야 될 상황까지 왔다면 분명 계좌는 이미 박살 난지 오래고 주변에서는 너도 나도 계속해서 경보를 울려댄다.


경보는 울리지만, 듣고 싶지 않다.


왜 듣고 싶지 않을까? 이런저런 이유는 다 책상 밑으로 던져버리고 남은 단 한 가지의 진짜 이유가 있다.


왜? 대비하지 않았으니까.


물리적인 위험이 닥치면 신속한 대응을 위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동공이 커진다. 신경이 곤두서 주변의 작은 움직임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앞으로 벌어질 격렬한 육체활동에 대비하는 방편으로 체온을 낮추기 위해 등에서는 식은땀이 흐른다. 우리 몸은 이렇게 현실의 위험, 신체에 육박하는 위험에 대한 대비는 훌륭하게 되어 있다. 그렇기에 긴 시간 살아남고 살아남아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다.


그런데 물리적인 위험이 아닌 복잡한 위험에 대해서는 대응하는 법을 모른다. 구석기시대에는 정착생활을 하지 않았다. 식량을 따라, 기후 변동에 따라 끊임없이 이동하는 수렵생활을 했다. 그렇기에 가뭄이나 홍수 메뚜기 떼 등 자연재해로부터 자유로웠다. 재해를 생기면 피해 이동하면 그만이었다. 이동의 과정 역시 배고프고 고달프고 중도 탈락한 사람도 많았겠지만 농경시대에는 그런 이동이 거의 불가능했다는 점에서, 농경 이전 시대에는 적어도 이동의 자유가 있었다. 중요한 건 당장 오늘의 사슴사냥이었고, 똑같이 사슴을 노리는 여러 고양잇과 맹수와의 혈전이었다.


우리 인류의 전체 기간을 100%라고 잡으면, 농경을 시작한 신석기 이전 구석기시대의 기간이 99%에 이른다. (98.8%) 99%의 절대다수의 시간을 육체적인 위기에 대비하도록 최적화된 프로세스로 온 몸을 무장한 인류다. 최근 일어난 단 1%의 기간에 정착 생활을 시작하고 농경을 시작하면서 자연재해에 대한 걱정과 이웃 부족과의 정치적인 갈등, 구성원이 늘어나며 생긴 여러 계급들, 그리고 그 계급들 사이의 갈등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여러 가지 복잡한 비 신체적인 갈등에 대한 대비 프로세스가 발달하기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았다.


그래서 우리는 주식시장의 변동과 자산 가격의 하락 같은 복잡하고 머리 아픈 위기에 대비하는 방법을 모른다. 대비는커녕 대응하는 법도 모른다. 본인의 수준에서 대응이 불가능하다고 느끼고 가공의 절대자를 내세워 기도하거나, 죄를 뒤집어 씌우기 좋은 희생양을 내세워 그를 핍박함으로 불안감과 공포를 해결한다. 우리의 행동방식은 저 옛날 단군조선시대 제정일치 사회에서 가뭄이 들 때 사제가 나서서 기우제를 지내는 딱 그 정도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금은 기우제라는 단어가 '존버'라는 단어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른 척하고 있을 수는 없다. 우리 머리와 우리 몸이 위기에 자연스럽게 반응하지 못하는 점은 안타깝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 모두가 그렇게 생겨먹었기에 반대로 생각하는 자에게는 기회가 온다. 두렵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비를 하면 된다. 상술했듯이 육체적인 위기가 닥쳤을 때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동공이 커지고 주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참고하자. 주가가 떨어지는 것이 직접적인 생명의 위기는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그런 육체적인 반응이 나오지 않는 것이지만, 시장이 폭락하고 부동산이 망가지는데 어찌 생명의 위기가 아닐 수 있을까. 뇌에 조건반사적인 기능으로 탑재되지 않았다면, 의식적인 레벨에서 준비하면 그만이다.


첫 째, 미리 하는 대비가 있다. 하락을 대비해 현금을 마련해 둔다는 관점이다. 언제 주식 시장이 하락할지 예측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미리 예비비를 준비한다. 일정 비율의 현금 비중을 유지한다. 혹은 언제든지 투입할 수 있는 마이너스 통장을 준비해 둔다. 하지만 주가가 오를 때는 더 빨리 부자가 되고 싶은 욕심 그리고 나만 뒤처질 수 없다는 생각에 현금은 물론 여기저기 돈 끌어와서 고점에 올인 치기 쉽다. 미리 위기를 대비해 일정 비율의 현금을 유지한 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두 번째, 닥치고 나서 하는 대응이 있다. 하락에 대비한 현금이 없기에 위기를 인지하고 손절을 통해 자금을 융통하거나 변동성을 이용한 매매 등을 하는 것이다. 이 대비는 심리적인 대비 혹은 하락 시 실행할 시나리오 준비다. 예를 들어 현금이 전부 소진되고 계좌 평균 단가가 일정 비율 이상 하락하면 전체 자산의 몇 퍼센트를 손절하고 더 큰 하락을 대비한다거나, 하락장에 대응할 능력이 없음을 깔끔하게 인정하고 처음부터 하락해도 강건한 종목 혹은 자산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존버 하는 것이다. (*전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 애플의 '22년 8월 13일 주가는 172달러로, 전 고점 '22년 1월 3일 182달러까지 10달러 차이, 5.8%만 오르면 전 고점에 도달한다. 같은 날 애플이 포함된 나스닥 종합 지수는 13000포인트로, 전 고점 16000포인트에 비해 3000포인트, 아직도 23% 상승해야 전 고점을 탈환한다.) 혹은 하락 시 일정 비율에 따라 사고팔고를 반복하며 평균 단가를 낮추고 수량을 늘려나가는 그리드 매매법 등 여러 대응법이 존재한다.


보통은 하락하기 전까지는 이렇다 할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혹여나 계획이 있더라도 역대급 하락까지는 계산에 넣지 않는다. 닷컴? 리먼? 다시 오겠어?? 다시 온다. '22년 상반기의 하락처럼 말 그대로 '역대급'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하락장의 중간까지는 어떻게 어떻게 남은 현금과 누군가의 조언을 재료 삼아 수습해보지만 끝까지 정신 차리고 대응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진짜 차이는 여기서 나온다. 하락장의 중반을 넘어선 패닉으로 이어지고 자포자기로 넘어가는 이 시점이 중요하다. 이때 어떤 준비를 해서 어떤 시나리오를 이행하느냐에 따라 자산의 퀀텀점프가 이뤄질 것인지, 또 손절하고 방황하다가 남들 수익 실현할 때 풀 배팅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느냐가 갈린다.


'20년 상반기의 충격적인 하락, 그리고 하반기부터 시작된 자산시장의 폭발적인 상승과 더불어 수많은 슈퍼개미와 부동산 자산가들이 등장했다. 유튜브 재테크 채널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50억, 100억대 자산가가 여럿 나왔고, 구독자 수 100만이 넘는 유튜버가 우후죽순 등장했다. 특정 채널은 시장가치 1조를 목표로 상장을 준비할 정도로 시장이 커졌다. 자산가들의 등장과 더불어 플랫폼까지 함께 성장한 것이다. 그들은 위기에서 기회를 봤다. 그리고 그 기회를 잡았다. 모두를 망연자실하게 만든 위기를 누군가는 기회로 삼아 자산을 몇 배로 불렸다.


위기에서 기회가 온다. 그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온다. 다만, 그 기회를 기회로 인식하느냐 못 하느냐. 그리고 그 기회를 인식함에도 잡을 수 있느냐 못 하느냐는 얼마나 대비가 되어있느냐에 달려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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