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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응민 Dec 19. 2020

[잠실 석촌호수] 함께 기록하는 것

출사 일곱 번째 이야기 : 빛보다 말이 많아서

지난 10월, 친구와 석촌호수 둘레길을 걸었다. 봄과 여름, 두 계절을 건너 오랜만에 만났다.  긴 대화를 이어가며 자정이 가깝도록 둘레길을 걷는 일은 익숙했다. 그러나 카메라를 들고 친구와 산책하는 일은 처음이다. 여기에 늦은 밤 출사를 나온 일이 없으니 석촌호수의 정경을 오롯이 담기 쉽지 않았다.


밤의 호수를 담는 일은 처음.


특히 대부분 구간이 어두워 빛을 확보하기 어려웠고 둘레길에 사람도 적지 않아 불편을 주지 않도록 신경썼다. 물론 프로 사진가도 아니어서 훌륭한 사진을 뽑아낼 수 없었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과 장비탓을 하며 한두 장 건지는 데 최선을 다할 뿐. 괜히 장비탓을 하며 투덜대는 가운데 친구가 아이폰 프로 모드로 연달아 멋진 사진을 선보였다. 내가 '이러려고 DSLR 카메라를 샀나' 자괴감이 들었다.


우선 석촌호수의 랜드마크인 '잠실 롯데타워'를 사진에 담는 데 의의를 뒀다. 셔터 스피드를 낮추고 ISO 값을 최대한 높이는 등 최대한 애쓰며 석촌호수에 왔다는 흔적을 남기는고자 힘썼다.



잠실 롯데타워를 중심으로 억지로 구도를 잡은 느낌.


각종 SNS를 통해 프로부터 훌륭한 아마추어 사진가의 작품으로 눈요기를 하다보니 초라한 나의 사진이 영 마음에 차지 않았다. 보는 눈 자체가 없는 것인지. 사진 관련 책을 몇 권 사두었는데 슬슬 읽어볼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모로 구도를 바꾸어봐도 마음에 차지 않는다.


미안합니다. 롯데타워 씨.


다리를 지나며 페인팅과 사진 작품 전시, 피아노 등 흥미로운 소품과 그것을 즐기는 사람을 보며 사진기를 들었다가 이내 가방에 집어 넣었다. 그 대신 친구와 발걸음을 천천히 옮기며 좀 더 이야기를 나누기로 마음먹었다. 오랜만에 본 친구와 산책에 좀 더 무게를 싣기로 했다.



어둠이 내린 호수를 다채로운 색으로 물들이는 조명빛.
행인들이 거치대를 두고 촬영하길래 옆에서 꼽사리(?) 껴서 찍은 사진.


거창하게 출사라고 타이틀을 달았지만 친구를 만나 사진을 많이 담기 어려웠다. 더욱이 잠실 석촌호수에 집중을 못한 까닭도 있으리라. 


영업시간이 지나 어둠이 내려앉은 롯데월드를 한가운데 품은 석촌호수를 바라보며 상사의 말을 떠올렸다. DSLR 카메라는 빛을 기록하는 도구라는 것. 아직 그것을 깨닫는 데 이른 모양이지만 앞으로는 마음이 동하는 곳에 출사를 떠나리라 다짐했다.

석촌호수를 마주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속삭이는 연인들. 그 뒤로 러너들이 땀을 한껏 흘리며 잔잔한 바람을 가르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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