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사 여섯 번째 이야기 : 억새밭 너머로 스쳐간 생각들
그동안 혼자 출사를 다녀왔다. 성격상 그 쪽이 편하기도 했고 사진에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진에 한계를 느껴 소모임에 가입했다. 마침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 하향으로 노들섬 출사 공지가 올라왔고 다음 날인 일요일 출장에도 불구하고 참가 신청을 했다.
오후 1시에 노들역에 도착해 인사를 나눴다. 사진 출사는 물론, 소모임 활동이 처음인 만큼 조심스럽기는 했지만 홍보 업무를 맡은 이래 붙임성이 좋아져 어려움은 없었다. 더욱이 3년 이상 운영하고 있는 소모임으로 운영진이 자연스럽게 초보 출사 회원의 적응을 도와주었다.
노들역 2번 출구에서 나와 한강대교를 걸었다. 쾌청한 하늘 아래 상쾌한 가을 바람을 마주했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였다. 출퇴근길에 매번 눈에 띄었던 장소에 발을 내딛었고 운영진의 가이드에 맞춰 사진 촬영을 시작했다.
노들섬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초입에 설치된 조형물을 배경으로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주변으로 억새가 바람결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회원들은 억새와 함께 화단의 꽃을 아웃포커싱으로 촬영하는 데 열중했다. 확실히 가을 햇살을 받은 모습이 인상 깊었지만 흥미를 느끼지 못해 억새를 배경으로 몇 장 남기는 데 그쳤다.
사실 초입에는 눈길을 끄는 것이 없었다. 노들섬 내부의 북카페 계단을 올라 전경을 봐도 흥미가 동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회원이 자발적으로 모델이 되어 사진을 촬영한 점은 인상 깊었다.
특히 혼자 출사를 떠나는 경우, 얼굴이 노출 되지 않는 선에서 뒷모습만 촬영할 수밖에 없는데 직접 포즈를 잡아줘 인물 사진을 담을 수 있었다.
또한 이날 남자 회원이 불참하고 30분 전에 새로운 회원이 번개로 참가해 출사 회원이 모두 여자였다. 이에 여자 모델을 대상으로 인물 사진 촬영에 대한 노하우를 쌓기도 했다.
다만 원래 인물 사진 촬영을 선호하지 않고 특히 여성 회원 얼굴이 노출되는 부분을 고려해 신상이 드러나는 사진을 블로그 및 소모임 커뮤니티에 업로드하지 않을 생각이다. 회원을 대상으로 촬영한 사진은 개인에게 전달하고 노들섬 출사를 계속 진행했다.
초입을 지나 광장에 들어서자 돗자리를 펴고 사람들이 즐거운 휴일을 보내고 있었다. 광장은 행사와 관련한 소품이 늘어섰고 조경으로 인해 한강이 보이지 않아 사진 촬영이 아쉬웠다. 따라서 억새밭으로 들어선 직후 본격적으로 카메라를 꺼내 촬영을 시작했다.
과연, 눈앞에 가을 햇살을 잔뜩 머금고 바람에 흔들리며 한강의 물결과 호흡을 맞추고 있는 억새밭이 펼쳐졌다. 청량한 하늘 아래 시원스레 펼쳐진 억새밭을 눈에 담느라 회원들은 한동안 카메라를 놓았다. 다음에 돗자리를 가지고 오면 좋겠다는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일상에 받는 스트레스와 소위 코로나 블루에 시달리는 우리의 마음을 환하게 밝혀주는 정경이었다.
연인과 가족이 함께 억새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냈다. 솔직히 혼자 왔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단체로 움직이다보니 빠듯하게 움직였기 때문. 여기에 이촌으로 이동하자는 운영진의 제안에 일정이 다소 변경된 점도 한몫했다.
거리가 상당했는데 하루에 만 보 이상 걷는다는 회원들은 끄덕없는 모양이었다. 하기사 강바람이 꽤 세차게 불어 노들섬에 계속 머무르기도 쉽지 않았다.
이동하기 전에 노들섬 내부에 있는 북카페에 들려 몸을 녹이고 담소를 나누었다. 주된 내용은 핸드폰 카메라 어플이었는데 덕분에 유용한 어플을 추천받아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을 촬영했다.
한 시간 정도 카페에 머무른 뒤 이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촌의 냄비우동으로 유명한 '수락'과 단팥죽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는 '동빙고'에 들렀다. 오후 4시에 도착해 줄을 서서 기다리지도 않고 여유롭게 대표 메뉴를 맛보았다.
이촌 한강공원의 야경을 촬영하기 앞서 시간이 남아 용산가족공원까지 또 걸어가기로 했다. 다들 옷도 가볍게 입고 왔는데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 또한 운동도 되고 기분도 상쾌해 이른바 건강한 출사를 즐겼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어 노을빛이 공원을 메웠다. 저녁 추위에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고 볕이 들지 않는 곳은 서늘했다. 그럼에도 냄비 우동 한 그릇에 가득 에너지를 채운 회원들은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다.
"혼자가 편하다, 그러나 외롭다" 오랫동안 나를 괴롭힌 문장이다. 사람과 어울리며 에너지를 얻기보다 소모되는 경우가 많아 단체 활동을 피해왔다. 학창시절부터 이어져온 삶의 방식이다. 대학교에 입학해 동기 모두 율동을 연습할 때 혼자서 연습에 불참한 기억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각종 동아리 활동을 하며 사람들과 밤새 어울린 추억도 있다.
나는 언제나 혼자는 아니었다. 그리고 항상 외롭지는 않았다. 단지 혼자인 것도 함께인 것도 선택하지 않았을 뿐이다. 노들섬의 억새밭을 보며 잠시 스쳐간 생각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