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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응민 Dec 14. 2020

[서울숲] 우리의 가을은 채도가 높다

출사 네 번째 이야기 :  뷰파인더 너머의 세상을 담다

서울숲을 다시 찾은 지 꽤 오래됐다. 그 때는 여름이었고 혼자였다. 곳곳에 공사가 진행돼 길이 차단되어 있고 사방에 흙먼지가 날렸다. 당시 식물원 구경을 했던 기억이 있는데 확실치 않다. 여하간 서울숲을 제대로 둘러보지 못하고 돌아선 이래 5년 이상 지났고 다행히 업무 일정이 변경돼 토요일에 출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늦가을 사진은 채도를 높이지 않아도 다채롭다는 생각을 가지고 출사에 참여했다. 서울숲 곳곳에 가을볕이 자리잡고 있어 가을의 풍부한 색감을 오롯이 마주할 수 있었다.


초입에 들어서자 바로 보이는 거울연못.



서울숲공원 초입에 들어서자 거울연못이 가장 먼저 보였다. 연못에는 가을빛으로 물든 나무와 함께 그 사이를 걷는 사람들, 그리고 오후의 찬란함을 더하는 햇살이 담겨 있었다.


바닥이 훤히 보이는 얕은 연못의 수면 위로 오후의 정경이 일렁인다.


거울연못을 지나 입구 쪽을 바라보면 그 유명한 갤러리아 포레가 보인다. 얼마 전 청약 접수를 받았다는데 경쟁률이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올해 정부의 규제로 인해 서울 지역에 소위 '영끌' 광풍이 불고 있다보니 이런 소식이 입소문을 타나보다. 사실 나 자신은 갤러리아 포레에 대한 소문이나 거주하는 연예인에 대해 관심이 없지만 서울숲 바로 앞 마천루로 손색없는 외관을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숲에서 올해 가을이 떠나기 전 여유를 만끽하는 사람들.


거울연못 맞은편에는 늦가을의 정취가 흠뻑 느껴지는 풍경이 펼쳐진다. 바람이 불면 장단에 맞춰 형형색색의 낙엽이 흩날린다. 사방에 깔린 낙엽을 쿠션 삼아 한 쪽 무릎을 꿇고 사진을 촬영하는 사람이 눈에 띈다. 한여름에는 시선을 끌지 못할 것 같은 조형물이 곳곳에서 추억의 한 장면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타이틀은 <약속의 손>으로 강인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공원인 만큼 어김없이 낙엽을 헤집고 뛰노는 반려동물도 눈에 들어온다. 지난번 보라매공원에 비해 자주 눈에 띄지 않았다. 아무래도 날씨가 추워지고 있어 노령견은 밖으로 나오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한편으로는 추위에 맞서 각자 개성을 살린 옷을 입고 있는 모습도 보기 좋다.


어쩐지 쓸쓸한 모습을 담아버렸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즐겁게 뛰놀고 있었다.


사진 촬영에 적합한 스팟이 있는 모양으로 거울연못을 지나서 조금 걷다보니 은행나무길이 펼쳐졌다. 온통 샛노란빛으로 가득한 숲 속에서 나무 사이로 사람들이 가을의 단편을 사진으로 남기고 있었다. 그래도 북적이지 않아 충분한 공간이 있어 다양한 모습을 담아낼 수 있어 좋았다.


올려다본 은행나무길. 그 아래 사람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인물 사진 촬영이 쉽지 않았다. 실력은 고사하고 주변에 사람이 많았던 것. 그래도 최대한 잘 담아낼 수 있도록 힘썼다.


최근 출사에 일행의 정면 사진을 업로드 한 적이 없다. 초상권의 문제도 있고 사진 유포와 관련해 여러 뉴스가 돌고 있는 까닭에 원본 사진은 전달하고 바로 삭제하고 있다. 이전에 노들섬 사진도 실제로 인물 사진이 훨씬 많았지만 이러한 이유로 블로그에 게재하지 않았는데 모자이크 처리를 하고 조심스레 게재해본다. 여기에 인물 보정에 자신이 없어 자칫 무례한(?) 사진이 나올까 염려해 공개하지 않는 점도 있다.


은행나무길을 벗어나 조금 걷다보니 이번엔 새빨간 단풍나무를 만날 수 있었다.


은행나무길 맞은편에는 연못도 있었는데 광각렌즈를 가지고 오지 않아 만족스러운 풍경을 담기 어려웠다. 특히 볕이 잘 들지 않기도 했다. 일행이 알려준 바에 따르면 반대편에서 바라본 호수의 정경이 괜찮다는데 그 쪽까지 발걸음을 옮기기 좀 귀찮기도 했다. 지난번에 일산호수공원 출사로 만족하자는 마음으로 손쉽게 포기해버렸다.


다행히 그러한 귀찮음에 대한 합리화에 따른 판단을 상쇄할 만큼 멋진 단풍나무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사실 이전처럼 단풍나무를 중심으로 한 컷 찍고 자리를 뜨려고 했는데 여러 사진을 담을 수 있었다. 인물 사진을 촬영할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업무와 관련한 행사를 제외하고는 왠지 내키지 않는다. 아마 나 자신이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일까 싶기도 하고. 어쨌든 평소와 같은 풍경 사진 대신 다채로운 연출컷을 연습할 수 있어 즐거웠다.


인물 사진은 보정하는 데만 한세월 걸린다.



아마 혼자 왔으면 가족과 연인들의 뒷모습, 신나게 뛰노는 아이들과 반려동물 촬영에 그쳤을 테지만 이번에는 여러모로 인물 사진 촬영에 공들였다. 어차피 계속 출사를 나가는 이상 익숙해지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이다. 그저 허접한 촬영에 미안해서 그럴 뿐이다. 실제로 올여름에 촬영한 인물 사진은 죄다 형편없어 차라리 핸드폰으로 찍는 게 나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러다보니 단렌즈보다 광각렌즈를 먼저 마련한 것도 있다.


일행이 담은 어린이정원과 앞서 언급한 호수의 사진. 미러리스로 촬영한 원본이다.


미러리스를 준비한 일행의 사진도 괜찮은 게 많았다. 특히 할로윈 컨셉의 어린이정원과 함께 각종 오브제를 촬영하는 연출, 구도에 있어 새로운 자극을 주기도 했다. 업로드하고 싶은 사진이 많지만 따로 보정하기도 그렇고(귀찮고) 해서 미처 사진에 담지 못한 풍경을 이 사진으로 갈음해볼 생각이다.


시원스레 달려나가는 삼륜차의 모습을 우연히 찍었다.


일행이 돗자리를 지참해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서울숲의 크기가 적잖아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이번에는 전투적으로 촬영을 진행하기보다 올해의 처음이자 마지막 가을이 지나가는 모습을 감상하는 데 집중한 것 같다. 이에 평소 연출과 구도를 답습한 여러 사진이 있음에도 인물 사진을 집중적으로 업로드한 것 같다.


실제로 혼자 출사를 떠나기보다 함께 움직이는 걸 선택한 까닭이 바로 앞서 말한 전투적 출사를 지양하기 위함이었고 요 근래 사진 컷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단한 사진을 건지기 위한 프로의 모습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자칫 아무것도 담지 못할까봐 열심히 셔터를 누르는 습관이 있다. 업무로 먼저 사진을 접한 탓인 것 같다. 만약 현장에서 사진을 얻지 못하면 말 그대로 끝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네 인생처럼 뷰파인더를 통해 세상을 보고 열심히 셔터만 누르다보면 놓치는 것들이 너무 많다. 특히 바로 옆에서 함께 걷는 사람이 아웃포커싱 된다면 출사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다.


잘 찍기 위해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이 아니다. 잘 살고 싶어서 카메라를 들었던 것이다. 올가을 다시 한번 그 점을 명심하게 되어 기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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