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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응민 Dec 13. 2020

[일산호수공원] 빛의 기록, 마음의 기억

출사 세 번째 이야기 : 그렇게 우리는 어른이 된다

지난달 아버지가 된 친구를 만나러 일산에 갔다. 숲속마을에 위치한 친구의 신혼집으로 향하는 길에 완연한 가을빛으로 몸단장한 가로수가 줄지어 있었다. 과연, 가을이 왔구나 싶어 눈호강 하는 느낌이었다.


아내가 산후조리원에서 막 나온 터라 친구는 만성 수면부족에 시달리는 듯 보였다. 여기에 경찰인 친구는 출산 휴가 중에도 업무에 신경 쓰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차피 출발 전에 1시간 내외로 짧게 보기로 했으므로 3시쯤 되어 헤어졌다. 8년 이상 인연을 맺고 있는 친구인 만큼 약소하게 선물을 주고 추천 받은 장소인 일산호수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미니 동물원을 지나 한울광장으로 향하는 가로수길 초입


일산호수공원은 거진 10년만에 오는 셈이다. 일산호수공원 제1주차장에서 시작해 한울광장 쪽으로 향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 하향 이후 맞는 첫 주말로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모두 마스크를 쓰고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모습이었다. 가족과 연인이 가을볕 아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곳곳에 한껏 몸단장을 하고 나온 반려동물도 눈에 띄었다.


호수를 마주보고 한껏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출사 과정에서 휴일을 보내는 사람들에 방해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특히 얼굴이 노출되지 않게 신경을 썼는데 뒷모습으로 괜찮은지 모르겠다. 실제로 촬영 시 전자음이 나도록 설정했는데 개의치 않는 분이 많아 다행이었다.


핸드폰 카메라였다면 분명 매서운 눈초리가 쏟아졌을 텐데 DSLR 카메라를 들고 있으니 출사 왔나 싶어 넘어가는 모양새였다. 주로 호수를 포함한 전경에 포커싱을 맞춘 까닭도 있을 것이다.


가을볕을 쬐며 그네를 타는 가족들. 어머니의 손이 차양막이 되어준다. 아이의 두 눈에 온전히 호수의 정경이 담길 수 있도록.


호수를 따라 벤치그네가 곳곳에 설치돼 가족과 연인이 앉아 가을볕을 쬐고 있었다. 멀찍이서 앞뒤로 흔들리는 벤치그네를 멍하니 응시하다보니 나른함이 몰려오기도 했다. 다정한 모습이 보기 좋아 조심스레 사진에 담고서 자리를 옮겼다.


오리 한 쌍을 줄맞춰 따라가는 꼬마 아이가 참 귀엽다.


벤치 외에도 잔디 위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나들이를 즐기는 사람이 많았다. 오후 3시를 넘겨 쌀쌀한 바람이 호숫가를 따라 불어왔지만 가을볕 아래 담요를 덮고 좀 더 버텨볼 심산인 듯 했다. 사람들 가운데 오리 한 쌍이 뒤뚱거리며 호수 근처를 어슬렁거렸고 주변을 지나던 반려견의 이목을 끌었다. 여자 아이 하나가 신기한 듯 오리의 꽁무니를 좇았다.


초점도 맞지 않고 그다지 훌륭한 사진은 아니지만 눈에 담은 풍경을 조금이나마 재현할 수 있기를 바라며...


솔직히 갈대 사진은 촬영하고 싶지 않았다. 요 근래 갈대와 억세는 물론, 핑크 뮬리까지 훌륭한 사진을 계속 본 까닭에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프로 작가도 아니고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온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조심스레 한 장씩 담을 수 있었다.


한울광장을 앞둔 샛길. 한 커플이 열심히 사진 촬영을 하고 있어 서둘러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래도 광장에 다다르기 직전 샛길에서 핑크 뮬리를 보았다. 비록 들판을 전부 뒤덮을 만큼 장관을 이루어내지 않았으나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번 출사는 태양빛 아래서 사진을 촬영하게 되어 역광으로 사진을 담아보려고 노력했다. 내장 플래시도 터뜨리고 조리개도 여는 등 연습을 했다. 사진에 플레어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느낌이 좋으면 충분하다는 지론이었다.



올해 전까지만 해도 출사는 물론이거나와 핸드폰 카메라로 풍경 하나 찍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사진이 대체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기록을 남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저 그 순간에 눈으로 담으면 족할 뿐. 그러나 돌이켜보면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렇게 DSLR 카메라를 들고 온갖 폼은 다 잡으면서 열심히 사진을 찍는 걸 보면 말이다.


호수만 담으려니 심심해서 눈에 띄는 기계나 시설을 담아보았다 (호수만 담을 실력이 안 되기도 했다)


여하간 잠실 석촌호수 이후로 호수 촬영에 도전했으나 이번에도 광각렌즈가 없기 때문에 쉽지 않다는 변명을 내세웠다. 지난번에 추천받은 토키나 19-35mm를 구입하기로 마음먹었지만 그 비용은 고스란히 친구의 딸에게 전달했다. 김라희, 이름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쾌청한 하늘 아래 시원스레 호수를 담은 사진은 오늘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선보일 것이라 여기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느덧 해가 저물고 한기가 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호수공원을 미처 한 바퀴 다 돌지 못할 판이었다.



광장의 가로수는 다채로운 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어 가을볕과 섞여 화려한 모습을 보였고 그 아래 형형색색 만발한 꽃으로 가득한 화단이 눈에 띄었다. 광장과 이어지는 장미원도 멀찍이 보였으나 일몰이 다가왔고 더욱이 정갈하게 꾸며진 정원에 큰 관심이 없어 그대로 호수를 따라 걸었다.



광장 인근에는 가로수와 국기 게양대가 나란히 줄지어 있어 출구까지 이동해 사진을 촬영했다. 마침 국기 게양대가 늘어서 있는 곳에 한 커플이 자전거를 잠시 세워두고 열심히 사진 촬영을 하고 있어 재빨리 자전거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밋밋한 길 한복판에 귀중한 소품을 가져다준 커플에게 마음 속으로 감사를 표했다.



호수공원 여기저기 조형물이 배치되어 있으나 위치가 좋지 않아 지나치기 일쑤였다. 조형물을 감상할 공간이 없거나 아예 바로 앞에 벤치가 설치된 경우도 있었다. 그러한 까닭에 애수교 직전의 조형물을 두고 사진 촬영을 하는 데 만족하는 수밖에 없었다.



애수교를 건너 반대편에 다다르니 빛이 들지 않았다. 오후 5시에 가까워져 이쪽은 볕이 들지 않는 곳이 많아 더욱 쌀쌀했다. 또한 건너온 쪽에 비해 길이 상대적으로 좁아 산책하는 사람들에 방해되지 않도록 피하느라 사진에 별로 담지 못했다. 게다가 일산호수공원 8경이라 불리는 곳을 대부분 들르지 못해 다소 아쉬웠다.


달맞이섬과 월파정을 통해 건너편으로 넘어갈까 싶었지만 길이 이어져 있는지 모르고 그대로 지나쳤다. 이번에도 올봄의 서울대공원 동물원 출사와 같이 반쪽짜리 출사나 다름없었다.


다만 일산에 온 목적 친구와의 만남인 까닭에 나 자신에게 좀 더 관대(?)해지기로 했다. 자연학습원을 지나 다시 호수공원 주차장으로 돌아왔을 때 오후 6시에 가까웠다.



사실 번개나 다름없는 이번 출사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굳이 사진에 담지 않아도 훌륭한 풍경을 연이어 눈에 담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친구가 시간이 지나 딸이 좀 더 크면 나들이를 오고 싶다고 말한 직후여서 부모와 어울려 천진한 웃음을 짓는 아이들의 모습이 특히 눈에 띄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 위주로 사진을 촬영해 비록 대단한 사진은 아니지만 일산호수공원을 추천해준 데 고마운 마음을 담아 사진을 전해주었다. 친구의 아내도 굉장히 만족해 다음에 밥을 해줄 테니 꼭 방문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이유에 대해 조금 알 것도 같았다. 함께 나누는 데 의미가 있다. 사진은 단순히 기록하는 것 그 이상이라는 사실. 오늘 하루가 그동안 전투적으로 출사를 떠나 애쓰던 날과 다른 이유가 있었다. 다음에 시간이 되면 일산호수공원을 제대로 둘러보겠다는 마음가짐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번 출사의 핵심은 친구에게 사진을 보내준 데 있었으니까.



다시 한번, 출사 과정에서 긴 고민을 매듭지었다. 더 이상 문학 창작이나 등단에 미련을 갖지 않기로. 호수공원을 거닐며 들려오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대화를 넘어서는 작품을 그려낼 자신이 없었다.


특히 대학시절 문학상 수상 이력이나 신춘문예를 비롯한 문예지 최종심에 오른 기억은 빛나는 과거로 포장되고 있어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현재의 결핍을 (왜곡된) 과거의 영광으로 메우는 작가와 교수를 많이 봤기 때문이다.


하여,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또는 '어떻게 살 것인가' 같은 고민은 계속되리라. 단지 삶의 의미와 행복의 원천은 오직 사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만 되새기길 바랄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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