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사 다섯 번째 이야기 : 누구나 마음에 공원 하나 품고 산다.
누구나 마음에 공원 하나 품고 산다. 사람과 함께 쌓은 추억부터 방향 없는 고민을 한가득 풀어 놓았던 인생의 공원 말이다. 비록 거리는 멀어도 마음은 언제나 가까운 곳. 오랜 시간의 흐름에도 그 공원의 이름과 마주할 때 삶의 단편들이 채도를 찾기 시작한다.
이처럼 미사여구를 잔뜩 풀어낼 만큼 보라매공원은 특별하다. 30년 인생에서 수많은 사람과 함께 발걸음을 맞췄고 고민에 대한 답안지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린 곳이다. 학창시절에는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가거나 청소년 기자단 활동을 하며 학교 밖에서 처음으로 우정을 나눴다. 여러 사정으로 인해 대학교가 위치한 동대문구로 거처를 옮기고 인근에 중랑천을 자주 오갔지만 보라매공원만큼 가까워질 수 없었다. 그리고 30대를 맞은 올해도 어김없이 보라매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보라매공원의 부지는 꽤 넓어 여러 곳에 입구가 있다. 우선 신대방역 출구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위치하고 도림천을 통해 진입 가능하다. 서울특별시보라매공원과 롯데백화점 관악점, 농심 본사 사옥 인근에도 입구가 있다.
주로 신대방역 인근의 입구로 진입하는데 호수와 바로 인접하나 운동장과 부속 건물의 맞은 편에 위치한다. 이 쪽에서 보라매공원 탐방을 시작하면 바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어르신들의 불꽃 튀는 승부의 장(?)이다.
화장실을 지나치면 언덕에 어르신들로 북적인다. 색이 바랜 나무판의 잠을 깨우듯 장기말 놓는 소리가 울린다. 코로나 이전에는 정기적으로 대회도 열렸다. 이 쪽은 나처럼 내공이 약한 사람이 어슬렁거리기 위험하다고 판단해 좀 더 호수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자에도 마이너리그(?) 같은 느낌으로 열심히 대련을 펼치고 있다. 승부에 방해되지 않도록 조심스레 사진 촬영을 진행했다.
주목받는 승부도 있는 모양이다. 자전거 여럿이 임시로 주차되어 있고 어르신들의 열기가 대단하다. 여기서 누구도 훈수를 두지 않는다.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탁'하는 경쾌한 소리만 들릴 뿐이다.
평소에는 어르신들이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 장소 정도로 여겼다. 그러나 다시 보니 이곳은 어르신들이 함께 사람의 온기를 나누며 소중한 시간을 만끽하는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치 학창시절에 학교나 공원의 농구코트를 두고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였던 것처럼. 이른 바 '만남의 장소' 역할을 하고 있어 더욱 의미 있게 비추어졌다.
광각렌즈를 가져오지 않아 호수는 따로 촬영하지 않았다. 특히 수위가 낮아 주변의 갈대밭과 완연한 가을색으로 치장한 나무들에도 불구하고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학과 오리를 비롯한 새들의 모습도 담지 않았다. 오히려 흔하디 흔하고 날갯짓 한번에 사람들을 흩어 놓는 비둘기 사진만 찍은 것 같다. 의도가 있던 건 아니지만 지난 도림천에서 학이나 오리 중심으로 사진을 너무 많이 담았던 까닭일까.
쾌청한 가을 하늘 아래 사람이 많았다. 부모는 자식과 함께 뛰어놀거나 자전거를 가르쳐주는 등 가족의 풍경을 그려낸다. 연인은 낙엽이 떨어지는 가운데 대화와 미소를 주고받는다. 강아지는 신나는 표정으로 주인을 앞서간다. 어느 공원이든 풍경은 비슷하다. 그럼에도 공원이 질리지 않는 까닭은 사람이 살아가는 단면을 가장 평화로운 모습으로 그려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보라매공원 광장에는 트랙이 있고 이를 따라 사람들이 운동과 산책을 한다. 한가운데 잔디밭이 있어 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다만 마스크를 철저히 쓰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어도 북적이는 모습을 촬영하고 게재하는 데 신경쓰여 사진에 담지 않았다. 그래서 주변 둘레길의 풍경을 담는 데 집중했다.
롯데백화점 관악점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운동장이 있다. 최근 경전철 착공으로 기존에 있던 농구코트부터 X게임장을 비롯해 사람들이 모일 장소가 줄어들었다. 현재 클라이밍은 가능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오랫동안 문을 닫아 한산했다. 주목할 곳은 반려동물 놀이터인데 소형견과 대형견을 분리한 곳으로 산책을 나온 가족과 반려동물, 그리고 구경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주변에 산책하던 강아지들도 함께 뛰어놀고 싶어 온몸으로 주인을 놀이터로 이끄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동물을 매우 좋아하는 편이지만 작년에 회사 카메라인 NIKON D700을 들고 사진을 찍은 적이 있어 여기는 피하기로 했다. 앞서 언급했듯 북적이는 사진은 최대한 피하고 싶었던 까닭도 있다. 보라매공원이 인생의 공원인 만큼 부정적인 이미지로 비추어지길 바라지 않는 것도 있다. 여론을 좌우할 만큼의 인플루언서는 아니지만 웹상에 업로드할 때는 한번 더 조심하게 된다.
운동장에는 족구를 하는 팀이 가장 많았다. 축구는 인근의 잔디구장에서 진행돼 동호회 차원에서 많이 활동하는 듯 보였다. 가변에 위치한 운동기구에는 건강해보이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일몰과 함께 추위가 닥치는 데 불구하고 열심이어서 보기 좋았다.
공사가 진행되기 전에는 근처에 농구코트가 있어 열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도림천의 농구코트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팀을 꾸려 뜨거운(?) 저녁을 보내기도 했다. 지금은 다들 어디서 농구를 하고 있을까. 물론 농구는 어디서든 할 수 있다. 학교의 체육관을 빌리든 조금 더 먼 곳으로 가든 크게 지장은 없다. 그럼에도 '만남의 장소'가 하나 사라졌다는 사실은 씁쓸할 따름이다.
최근 주말에 일이 좀 있어 출사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시간이 비어 보라매공원에 다녀온 것이다. 공원으로 향하는 길에서 추억과 연관된 장소를 촬영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정작 그 쪽으로는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다. 농심 본사 사옥 방면의 옛 공군사관학교 부지의 흔적이 남아 있는 에어파크나 청소년을 위한 건물에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물론 10대와 20대를 통틀어 지금의 삶을 꾸리는 단편들의 무대가 된 곳이지만 당장에는 이 정도 출사로 만족했달까.
입동을 넘기고 늦가을의 색채가 일몰과 어우러진 공원의 모습. 오늘은 그것을 보고 싶었다. 더욱이 사람이 붐비는 곳을 피하다보니 동선이 제한됐다. 하지만 만족스럽다. 완연한 가을 속의 피사체들이 보여주는 생동감과 에너지를 한껏 받아간 것 같아서. 그러고 보니 출발하기 전에 김광석의 <나른한 오후>라는 노래가 떠올랐는데 정작 오가는 길에 듣지 않았다. 신나게 뛰어노는 강아지들 덕분에 다소 씁쓸한 그 노래가 떠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올해의 가을은 필연적으로 마침표를 찍겠지만 보라매공원은 오래도록 인생의 공원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끝]
최근 코로나19 재확산과 함께 업무 과중(?)으로 인해 출사를 못 가고 있습니다. 이에 부득이하게 지난 계절의 사진을 글과 함께 풀어내고 있습니다. 올해도 지나고 있어 여름의 사진까지 풀어놓을 예정입니다. 시점이 다소 어긋나고 사진 퀄리티가 다소 낮아도(지금보다 더욱 실력이 모자랐던 까닭에...) 양해 부탁드립니다.
특히 브런치에는 수준 높은 사진과 글이 많아 조심스럽습니다. 다들 몸과 맘, 모두 건강한 연말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