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나에게도 고향이 있다. 그곳으로 언젠가 돌아가리.
며칠 전, 볼일로 분당에 들렀다가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정자동으로 이어졌다. 분당구 정자동은 내가 유년시절을 보낸 곳이다. 갈색 벽돌로 지은 빌라 3층에 이사를 왔던 날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나는 그곳에서 지금까지도 인생을 동반하는 두 친구를 만났다.
동네 놀이터에서 만난 한 살 어린 여동생과 같은 빌라 반지하에 살던 동갑내기 여자애. 모두 비슷한 또래에 동생들까지도 나이가 비슷하여 엄마들은 빠르게 친해졌다. 그렇게 우리는 해가 질 때까지 흙장난을 하고, 친구 엄마의 미술수업도 받고, 놀이동산도 같이 가고, 교회도 가고, 같이 월드컵을 응원했다. 주말이 되면 아빠들은 동네 공원에서 족구를 했고, 엄마들은 음식을 하고, 아이들은 쉴 새 없이 놀았다.
우리 집 근처엔 둘리분식이 있었는데, 나는 매일 유치원과 피아노 학원을 마치고 네 시쯤 떡꼬치를 먹는 게 행복이었다. 손에 오백 원을 꼭 쥐고 개미 같은 목소리로 떡꼬치를 주문하면 아줌마는 잔소리 하나 없이 떡꼬치를 튀겨주었다.
저녁시간이 되면 가끔 두부장수 아저씨가 동네에 왔다. 엄마는 저녁밥을 짓다가 딸랑딸랑 종소리가 나면 나에게 급히 이천 원을 쥐여주고 두부 한 모를 사 오라고 내보냈다. 그러면 나는 그 종소리를 따라서 두부장수 아저씨를 찾는 것이다. 동네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다 천천히 굴러가고 있는 두부 트럭이 보이면 아저씨를 놓칠세라 더 빨리 뛰어갔다. 어느 날은 까만 봉지에 따뜻한 두부를 들고 집에 오면서 귀퉁이를 조금 파먹어보았다. 처음으로 두부가 맛있었다.
떠난 지 15년이 되었는데도 가끔 정자동에 돌아가면 마음이 사무친다. 야트막한 산 아래 숲을 끼고 있는 조용하고 정감 가는 동네가 그리운 걸까, 아니면 어린 시절 함께했던 이웃들과의 시간이 그리운 걸까.
그날 집으로 돌아와 엄마 아빠에게 물었다. 혹시 돌아가고 싶은 동네가 있느냐고. 나는 마치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회귀하듯 언젠가는 정자동으로 돌아가고 싶다. 나는 그곳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 그곳을 우리의 고향으로 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