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우울증임을 인정하니 마음이 더 편해졌다
처음 우울증에 대한 의심이 든 건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반오십'의 나이에 부서에서 고참이 된 이상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연차가 1년도 안 된 사회초년생이었으나, 제가 몸담고 있던 부서는 6개월짜리 인턴들로 구성된 팀이었기에 결국 계약기간을 연장한 제가 그곳에선 가장 연차가 높은 선배였습니다. 어떨 때는 그게 한없이 부담스럽다가도 어떨 때는 한없이 어깨가 올라갔습니다. '25살에 내가 벌써 선배 소리를 듣다니'라는 철없는 생각이 들기도 했죠.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난이도 높은 일을 제가 맡게 되는 경우가 잦아졌습니다. 인턴들은 당장 배우기 바쁘고, 상사는 본인 업무가 바쁘다는 이유로 어려운 업무를 제게 미뤘습니다. 저는 괜한 자존심에 어려운 일을 '어렵다'고 말도 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일을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업무의 완성도를 높이려 하기보다는 정말 일을 끝내는데 의의를 뒀죠.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해 겨울, 제 딴에는 '대형 프로젝트'라고 생각한 일을 혼자 맡게 됐습니다. 부담감에 잘하고 싶은 욕심이 컸습니다. 그러나 일을 하는 방법도 서툴렀고, 제가 가고 있는 방향이 맞는지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선배가 없었기에 결과적으로 그 프로젝트는 장렬히 '망했습니다'. 그 일이 바로 트리거가 됐습니다.
무던했던 성격이 예민하게 변하고,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하는 말에도 의미를 담기 시작했습니다. 입맛은 점점 떨어지고, 잠은 쏟아질 듯 왔습니다. 그렇게 일찍이 잠에 들다가도 새벽에 다시 일어나기 부지기수였고, 결국 잠을 자기 전에는 '제발 잠 좀 푹 자게 해 주세요.'라고 작은 주문을 외웠습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설마 내가 우울증인가'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인터넷에 '우울증', '우울증 증상' 등을 검색하면서 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거진 내 이야기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몇 달을 전전긍긍하며 결국 정신과를 찾았고, 제 병명은 역시 '우울증'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진단을 받은 뒤, 제 마음은 더욱 편해졌습니다. '차라리 우울증이라 다행이다'라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흔히들 하는 '마음의 감기'같은 것이니, 감기를 치료하면 제 인생도 다시 행복해지리라 생각했습니다.
망가진 멘탈을 회복하기 쉽지 않았으나, 지금은 어느 정도 평탄대로를 달리고 있습니다. 물론 가끔 찾아오는 불행에 좌절감을 느끼는 일들이 많지만, 스스로 감정을 제어하는 법을 깨우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