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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단이 Dec 04. 2022

퇴사를 번복하고 후회한 이유

내년에는 '퇴사'할 수 있을까

2022년 '버킷리스트 1순위'는 '이직'이었다. 그러나 2022년 막바지에 들어선 지금, 올해도 내 버킷리스트는 장렬히 실패했다. 생일 때도 케이크 위에 고고하게 서있는 촛불을 불면서 '제발 이직하게 해주세요.'라고 빌었는데 말이다. 


난 흔히 말해 '글로 먹고사는 직업'을 가졌다. 글 쓰는 일도 창작의 일환인지라 머리에서 쥐가 날만큼 써지지 않을 때도 종종 있지만, 그렇게 힘들게 쓴 글은 내게 뿌듯함을 안겨줬다. 또 누군가 내게 "너 글 잘 쓰더라."는 칭찬을 하면 "에이, 많이 배워야죠." 하면서도 올라가는 입꼬리를 막을 수 없었다. 내게 글이란 내 안의 희로애락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도구였다. 


글 쓰는 직업으로 진로를 정한 까닭도 내가 가장 재밌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글 쓰는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시계를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몰입했으니까, 나는 '글'이 나의 천직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회사'라는 공간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연차가 조금씩 쌓이면서 업무 외 일을 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심지어 올해 4월에는 나와는 무관할 것이라 생각했던 신생 부서로 발령나버렸다. 발령 이전에는 글 쓰는 일을 주로 했다면, 부서를 옮기고 나서는 남들이 글 쓰는 일을 서포트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결국 주인공이 아닌 주인공을 빛나게 해줄 조연1 역할 정도라고 해야 할까. 허무했다. 


내가 일을 못했던 것도 아니었다. 지난해 인사평가에서는 A등급을 받았었고, 이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다. 그런데 이도 저도 아닌 신세로 전락한 내 처지를 보며 '아 이렇게 열심히 일해도 결국 회사에 버림받는구나' 생각했다. 그게 내가 회사에 버림받은 첫 번째 사례였다.


나는 이때 퇴사를 결심했다. 3년을 넘게 다닌 첫 회사라 정도 많이 들었지만, 더는 다닐 수 없을 것 같았다. 인사팀에 사직서 양식을 요청해 받았고, 상사에게는 차마 '지금 이 부서가 마음에 안 들어서 떠나렵니다.'라는 말은 못 하고, 그냥 건강상의 문제로 퇴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당시 내 몸상태는 좋지 않았다. 원래 안 좋았던 손목은 더욱 악화됐고, 출퇴근 시간 지하철에서 공황장애를 겪었던 적도 꽤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상사에게 결재받은 사직서를 들고 인사부장을 만나러 갔다. 인사부장은 한 손에 사직서를 든 나를 보며 "그동안 일을 참 잘했잖아요. 아쉬워서 그러는데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건 어때요?"라며 나를 회유했다. 그러고 나를 정말 돌려보내며, 하루만 더 생각하고 내일 오전에 다시 오란다. 


내  결정이 하루 만에 바뀔 수 있을까 했는데 참 어이없게도 바뀌었다. 회사 임원분이 건강상의 문제라면 휴직 1개월을 보장해주겠다고 한 게 결정적인 이유였다. '나 같은 말단 사원을 위해 휴직 1개월을 보장해준다고?'라는 생각과 함께 당시에는 고마움을 느꼈다. 또 당시 임원분은 내가 이 회사에 계속 다니면 처우가 더욱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옆팀 친한 부장님께서도 나를 은밀히 불러 "회사에서 너를 주시하고 있는데 아깝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현혹되지 않으리. 난 하루 만에 사직서를 철회했다.


이후에는 민망스러운 상황이 많이 연출됐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와중에도,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있는 와중에도 "언제 퇴사해요?", "이직하는 거예요?" 등 여러 질문이 오갔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민망함을 숨기며 "저 그냥 회사 다니기로 했어요."라고 겸연쩍게 말한 게 여러 번이었다. 


내 '퇴사 철회' 소식을 들은 이들은 보통 두 부류로 나뉘었다. 내 결정을 지지해주는 이들과 내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 직장 사람이 아닌 내 친구들은 대다수 후자였다. 심지어 내 친구들은 나의 이런 결정을 두고 '호구당했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호구당한 게 맞았지만 말이다. 하하.



그렇게 몇 개월에 걸쳐 처우 개선을 기다렸다. 연봉을 확 올려주는 걸까? 아니면 다시 부서를 옮겨주는 걸까? 기대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6월 회사에서 보내온 연봉 계약서를 보니 연봉이 오르긴 올랐다. 그런데 애초에 내 연봉은 인턴과 다를 바 없는 연봉인데, 여기서 조금 올랐다고 기뻐해야 하는 걸까? 그래도 일단 올랐으니까, 만족해야 하는 거겠지? 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시련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상사는 뜬금없이 회사에서 운영하는 아카데미의 조교가 되라고 내게 통보했다. 조교? 대학생 때도 해보지 않은 조교를 직장인이 돼서 해보다니, 심지어 나는 이 일을 하기 위해 매주 3일 3시간씩 한 달간 초과근무를 했다. 


직장 생활과 조교 일을 겸업하고 있는 와중에 상사는 "조교 일 괜찮죠? 분명 도움될 거예요." 하는 속 편한 소리나 늘어놨다. 물론 조교 일이 단순하긴 했다. 수강생이 모두 왔는지 출석 체크하고, 강사진들에게 발표자료를 미리 받아 화면에 띄워놓는 게 주된 업무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로 인해 내 일상이 없어졌다는 거다. 직장에서만 10시간을 넘게 있는데 내 일상을 챙길 틈이 어디 있었겠는가.


또 어이없게 저 아카데미로 회사에서 상을 받은 사람은 내가 아니라 우리 상사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상사를 비롯한 몇 명이었는데, 내가 "왜 저는 상을 못 받나요?"라고 물어보니 "초과근무 수당을 받아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최저시급과 다를 바 없는 초과근무 수당 때문에 상을 받지 못하다니. 이게 내가 회사에서 버림받은 두 번째 사례였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나는 글을 사랑했다. 사랑했기 때문에 이 직장에 계속 있으면 글을 쓸 기회가 분명 다시 올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서서히 마모되는 나를 보며 '이렇게 나를 갉아먹으면서까지 회사를 다녀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이직 서류를 이곳저곳 몰래 넣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과는 '서류 탈락'이었다. 연봉을 너무 높게 적었나? 토익 점수가 없어서 그런가? 자기소개서를 너무 대충 적었나? 여러 생각이 오갔다. 휩쓸리지 않으려 했는데 자신감은 점점 떨어졌다. 그 와중에 내가 내린 고민의 해답은 '글 말고 다른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거였다.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 우선 사직서를 낼 결심을 했으면, 주변에 휩쓸리지 않고 이를 강행해야 한다는 거다. 사직서를 내겠다고 생각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고된 업무 강도, 갑질을 일삼는 상사, 잘난 체를 많이 하는 동료 등 제각기 다른 사정이 있을 거다. 


여러분이 사직서를 철회한다고 해도 이러한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회사는 여러분을 그냥 하나의 부품 그 이상 그 이하로 보지 않는다. 회사에 기대하면 안 된다는 게 내가 내린 결론이다. 내년에는 꼭 다시 사직서를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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