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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가든 Mar 21. 2024

어떻게든, 사랑 <어느 멋진 아침>

사물에, 영혼과 육체에, 일상에 스며드는


어떻게든 사랑.



영화를 다시 생각해 보니 떠오르는 말이다. 산드라도, 게오르크도, 클레망도 어떻게든 사랑을 자신의 삶 속으로 끌어오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 속 사람들은 각자의 단조롭거나 지겨운 일상을 살면서, 아니, 그래서인지 더욱더 사랑을 쫓는다.

사랑이란 정말 그런 존재인 걸까. 지친 현실 속에서 숨을 트이게 해주는, 나를 계속 살아가게 해주는 그런 존재 말이다.


미아 한센 뢰베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긴 영화 <어느 멋진 아침>(Un beau matin, 2022) 사랑, 언어, 세대, 돌봄 등을 따뜻한 필름의 질감으로 이야기한다.

감독의 조용하게 빛나는 이야기 방식을 사랑하는 나에게  영화는, 사람과 사랑을 너무나 어려워하는 나에게 따뜻한 햇살 같은 위로를 주었다. 따뜻하게 맑은 날씨를 닮은 감독의 언어로.



영화는 ‘산드라’가 그가 아버지 ‘게오르크’의 집으로 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집과 병원에서 아버지를 돌보고, 학교로 딸 ‘린’을 데리러 가고, 린과 함께 독거노인을 방문하고, 집에서는 번역일을, 밖에서는 통역일을 하는 산드라의 일상은 이 일들의 반복이다. 누군가를 돌보고, 누군가의 언어를 전달하고, 누군가의 사물을 정리하는 일들.


마치 누군가를 위해 하는 일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은 산드라의 일상은 어느 날 재회한 ‘클레망’으로 인해 바뀐다. 산드라가 누군가의 연인으로서, 사랑과 보살핌을 받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내뱉을 수 있는 사람으로서 존재하는 순간이 클레망의 존재로 인해 만들어진다. 산드라의 마음과 육체는 계속 클레망을 찾는다.

‘클레망’은 산드라에게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존재가 되고, 그 자신도 산드라를 사랑하지만, 아내와 아들이 있기에 죄책감과 책임감을 쉽게 떨쳐버릴 수 없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계속 산드라를 찾는다. 이렇게 그들은 계속 서로를 찾는다.


게오르크는 기억의 감각을 잃어가면서도 자신의 연인을 계속 찾는다. 혹시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전화가 오진 않을까 하며 휴대폰을 꽉 붙잡고 있고, 집에 있든 병원에 있든 연인의 이름을 부르며 항상 그리워한다.

중요한 건 그가 사랑한 많은 책들은, 이제 그의 기억에서 사라져 간다는 것이다. 그는 대신 그 자리를 연인의 존재로 채우는 것처럼, 연인의 존재는 더욱더 존재감이 강해진다. 자신이 사랑하던 글, 음악, 사물, 감각이 사라져 가는 동안 연인의 존재만은 사라지게 하지 않으리라는 듯.


산드라는 지금의 아버지보다  책들에서 느껴지는 아버지가  아버지 같다고 말한다.


산드라: 할아버지보다 책이  가깝게 느껴져.
: 왜요?
산드라: 요양원의 할아버지보다  책에서 할아버지가  느껴져. 거기 육체는 이제 껍데기고 이건 영혼이니까.
: 직접  책도 아닌데요.
산드라: 하지만 직접 선택했잖아.  책들을 통해 할아버지가 드러나거든. 마치 각각의 책이 다른 색채를 지녀서 할아버지의 초상화가 완성되듯이.


이렇게 어떤 이는 그가 사랑했던 것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에 남는다. 그러니까, 사물에 사람이 남겨진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그 사람에 대해 기억하고 싶은 면을 그 사물을 통해 감각한다.

게오르크가 남아있을, 그가 사랑하던 책들은 다음 세대, 어느 학생들의 책장으로 옮겨진다.


이렇게 물건을 정리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정말 좋아하는 장면.


게오르크의 몸은 점점 감각을 잃어가고, 린은 성장통 때문에 한쪽 다리를 아파한다. 어린 사람들은 성장하며, 늙은 사람들은 낡아간다. 한쪽은 성장하고 한쪽은 낡는데도 양쪽 모두에게 고통이 따른다는 , 아마도 우리의 삶에서 고통이란  떼어놓을  없다는 것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세대가 그래도 같은 ‘사람이라는 걸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하게 만든다.


*


우리, 사람은 계속 고통받고, 사랑한다. 잊고 잊히는 와중에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살아가는 동안 누군가를 사랑한다. 그 누군가의 영혼이 깃든 사물을, 누군가의 영혼과 육체를, 누군가와 함께하는 날들을 생각하고 원하고 그리면서.


이렇게 우리는 어떻게든 사랑을 하고, 어느 멋진 아침은 어느새 일상에 스며든다.


산드라와 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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