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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단 Nov 20. 2022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서정주는 해, 달, 그리고 물과 바람을 걷어냈나보다

꽃 없는 봄 국화와 가을의 국화꽃을 직접 연결해서 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찬 바람 불기 시작하는 늦가을에 핀 한 송이 국화꽃이 어떻게 피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해는 당연히 꽃을 피우는 주역을 담당했을 것이고, 달도 적지 않게 도움을 줬고, 물도, 바람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리고 가늠하기 쉽지 않지만 별도 힘을 쏟았을 것이다. 과학으로 설명가능하다.


국화꽃을 피운 공을 따져보면 해가 가장 컸을 것이니 이를 강조하면 다른 모든 영향이 하찮아진다. 하지만 해가 없었다면 국화꽃은 결코 필 수 없다. 해가 있어 달, 공기, 물 등의 영향이 빛을 발할 수 있다. 그런 연유로, 달, 물, 바람 등의 사소한 영향이 강조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한 공리주의적 해석이다.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국화꽃을 피운 해의 역할은 워낙 커서 굳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모두 안다. 해 정도는 아니지만 물, 바람, 땅, 달의 영향도 적지 않다. 이런 종류의 영향은 누구나 잘 알고 있어 강조하기 오히려 쉽지 않다. 그런데 밤하늘 별이 국화꽃을 피웠다고 하면 사람들은 의아해 하면서도 관심을 가진다. 뉴턴의 만유인력법칙으로 계산하면 매우 적은 숫자이기는 하지만 별과 국화 사이 힘은 엄연히 존재한다. 이렇듯 꽃을 피우는데 역할을 한 작은 힘이라도 빼지 않고 살피는 것이 염세주의다.


직감적으로 알기도 힘들고 과학으로 계산할 수도 없지만 국화꽃을 피운 힘이 하나 있다. 바로 소쩍새 울음이다. 소쩍새는 울어서 국화꽃을 피운 것이다. 이를 발견했으니 시인은 시인인가 보다. 아무리 시인이라 하더라도 소쩍새 울음이 국화꽃을 피운 것을 바로 알아차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강렬해 누구나 알 수 있는 해와 달, 물과 땅, 그리고 과학으로 증명가능한 별의 영향력 모두를 걷어 내야만 비로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화꽃을 피운 소쩍새의 슬픈 울음이 없었다면 국화꽃은 피지 않았을 것이라고 시인 서정주는 말하고 있으니 그는 염세주의자 중 으뜸이다.


사실은 현상과 진실 두가지로 분류된다. 관찰가능한 사실은 현상이고, 관찰 안되는 사실은 진실이다. 가을 국화꽃이란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해와 달, 물, 땅 그리고 바람이란 현상이 필요하다. 현상은 이치가 확고하다. 하지만 진실은 보이지 않으니 믿어야 한다. 늦가을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운 소쩍새의 울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실이 필요하다. 국화꽃을 피운 해와 달, 물과 바람을 걷어내야만 비로소 소쩍새가 피운 진실이 보인다.


2022년 11월 20일 실상사 보현법회 도법스님 법문을 듣고 생각을 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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