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로 모여 의미로 찢어지면 이름만 남아 이름으로 모인다
사용 후 버리는 물을 인근 시냇물의 물 보다 오히려 깨끗하게 유지할 목적으로 모인 마을이 있었다. 가장 먼저 화장실을 생각했다. 수세식화장실을 사용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도 마을 밖으로 나가는 물이 인근 시내의 흐르는 물보다 깨끗하긴 힘들었다. 모두 생태화장실을 만들어 사용했다. 세수, 샤워도 해야 하고 설거지와 빨래도 해야 하니 사용한 물은 한 곳에 모아 크고 작은 자갈을 쌓고 수생식물을 심어 그 사이로 하수가 흐르도록 했다. 식물과 자갈에 붙어 사는 미생물이 물 속 오염물질을 거르고 먹이 삼으니 사용한 물은 정화된다. 하지만 식물과 자갈 미생물이 감당할 수 있는 오염물질에는 한계가 있고 사용한 물에 혹시라도 독성이 있는 화학물질이 포함되어 있으면 식물과 미생물이 죽어 버리니 주민들은 조심했다. 비누와 세제도 식물과 자갈 미생물이 견딜 수 있는 것으로 선택해서 사용했다. 그렇게 해서 마을 밖으로 흘러 나가는 물은 인근 시내의 물보다 깨끗했다.
깨끗한 물을 버리는 것이 삶의 목적은 아니지 않냐고 누군가 물었다. 하지만 그 목적으로 하필이면 그 장소에 모인 것은 사실이다. 그 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그 장소가 아니어도 되었다. 그리고 각자의 삶은 따로 있고 각기 다른 목적을 갖는 것이 당연했다. 마을 주민의 가치가 모두 같을 필요는 없고 다만 맑은 물이란 의미는 최소한 같다고 믿었다. “맑은 마을”이란 맑은 물 공동체인 셈이다. 물은 사람들이 그곳에 모이게 한 의미였던 것이다.
마을 주민의 삶이 물 쓰고 물 버리는 것만 일 수는 없다. 민박으로 생활해야 하는 주민은 생태화장실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다. 독한 화학약품을 써야 만들 수 있는 물건으로 사업하는 주민은 맑은 물을 마을 밖으로 버리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들여 정화장치를 운영하느라 사업자체가 힘들어져 버렸다. 마을 하수를 정화하는 식물이 자라는 자갈 습지 관리도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누군가는 정기적으로 풀을 베어줘야 하고 자갈 사이의 물길도 확보해야 했다. 의견이 다르고 때론 갈라졌다. 당연하다 생각하면서도 마을을 힘들게 했다. 마을을 하나로 만들어 준 상징이었던 물은 이제 마을을 여러 갈래로 찢는 화근이 되어 버렸다.
마을은 언제가부터 “물”이란 말을 하길 꺼려했다. 그래도 마을의 이름은 여전히 “맑은 마을”이었다. 맑은 마을은 처음부터 물이 없는 마을 같았다. 마을은 이제 “맑은”이란 단어로만 인근 마을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다. 맑음이란 단어가 마을의 상징이 되었다. 때론 “저 마을은 무엇이 맑은 거지?” 하고 묻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그마저 드물어져 따지지 않고 그냥 맑은 마을이 되었다.
마을을 떠나는 사람도 나타났다. 새로이 들어오는 사람도 생겼다. 떠나는 이유를 모두 알기 힘들지만 들어오는 사람은 예외없이 맑게 살고 싶어 온다고 했다. 마을이 형성될 때는 맑은 물이란 공동의 관심사로 인해 물을 어떻게 사용하고 버리고 처리해서 내보내는 행동을 주로 얘기했다면 이제 물은 사라지고 맑음이란 상징만 남았다. 상징을 구성했던 의미는 사라지고 상징의 이름만 남았다. 마을을 상징하던 행동은 어느덧 마을을 상징하는 캐릭터로 변해 있었다. 동사는 명사가 된 것이다.
양극과 음극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배터리 원리는 이제 전기를 저장하는 새로운 원리를 탄생시켰다. 원래 배터리 원리는 이제 당연한 것이 되어 더 이상 기술이라는 이름도 붙여지지 않는다. 새로운 원리 2차 배터리가 원래의 배터리 기술보다 훨씬 큰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맑은 마을의 원래 배터리가 물이었다면 2차 배터리는 맑음으로 해석될 수 있겠다.
동사로 살던 마을은 이제 명사로 얽혀있는 공동체가 되었다. 물을 맑게 만들던 마을은 물이란 단어를 버리고 맑음이란 상징만 남겼다. 마을은 여전히 물 쓰고 버린다. 하지만 공기를 호흡하듯 물을 더 이상 의식하지는 않는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사람은 이름을 남기듯, 마을은 상징을 남겼다. 물은 잊혀져 맑음을 남겼다. 실체를 가진 물이 의미를 담아 마을 주민 소통을 이끌었던 기호였듯이, 물이 사라진 맑음이란 새로운 상징 기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