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하단 Mar 04. 2023

모든 문은 하나의 벽이다. 근데 벽으로 문이 된다

안도 다다오의 문과 길

제주 성산일출봉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걷다보면 언덕을 만나게 된다. 언덕 위에는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유민미술관과 글라스하우스가 있다. 미술관을 보고 글라스하우스에서 차 한잔하는 호사를 누리기 위해서는 언덕길을 잠시 걸어야 한다. 그러다 생뚱맞은 긴 벽을 만난다. 직선길로 글라스하우스로 빨리 가는 것을 막기라도 하듯 버티고 있는 장벽에 둘러 걸어야 한다. 이 또한 건축가의 배려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 길을 가로막고 있는 벽에 구멍하나가 뚫려 있음을 발견한다. 발길을 옮기던 사람은 두 개의 길을 만나게 된다. 오던 길이 이어지는 우회로로 돌아 걷든지, 벽에 뚫린 구멍으로 관통해 가로질러 가야 한다. 길을 선택하게 만든 건축가의 장난기가 느껴진다.


책읽고 글쓰며 일상에서 배움을 구하는 길에 문뜩 거장이 준 문제가 떠 올랐다. 제주를 다녀온지 만 1년이 다 되가는 지금에사 생각하니 아둔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늘 그랬던것 같다. 평생을 줄 쳐진 길로만 걸어온듯 하여 억울하기도 하다. 정답있는 지식을 외우느라 분주했던 10대, 그런 지식이라도 목말라했던 20대는 그렇다 치더라도 세상이치를 조금씩이라도 알게된 후에도 가이드있는 길만 걸었다. 벽을 뚫어 만든 문으로 연결된 길도 다르지 않았다. 누군가 문을 열어주면 앞장서 가는 것을 용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열린 문은 쉽게 다시 닫히지 않았다. 조금 빨리 발디딘 사람들은 뒤따르는 사람들을 때론 비웃기도 했다. 열린 문으로 들어간 후에 누군가는 닫았어야 했었다.


문지방 닳게 넘나들어 이제 닫히지 않게된 문 바로 옆에 다른 문이 발견되었다. 슬쩍 밀면 열리는 문들이었다. 이제 그곳으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렇게 문이 하나씩 열렸다. 벽은 실은 문으로 연결된 벽처럼 보이는 벽체였을 뿐이었다. 이제야 빙둘러 가야만 했던 길이 눈에 들어왔다. 그 길을 가노라니 예전에 없었던 흙 벽이 하나 놓여 있었다. 문을 낼 수도 없는 언덕이었다. 문지방 넘던 다리로는 오를 수 없는 언덕이다. 그 때는 보였었지만 이제 언덕이 막고 있어 너머 세상이 보이지 않았다.


콘크리트 벽 사이로 뚫린 문이 그 옛날 둘레길 너머 세상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이것 정도는 알아챌 나이는 되었다. 거장은 자신이 설계한 두 건축물 사이에 이렇게 인생을 건축해 놓았다.


작년, 벽 뚫린 문에서는 사진 찍는 관광객들이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왠지 보기 불편한 예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