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영락없는 대중이다

AI는 생각하지만 페르소나는 없다

by 강하단

영화 “브이포벤테다(2016)”의 V는 진짜 자신의 모습은 오직 가면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만약 상처 뿐인 V의 얼굴을 대중들이 보았다면 그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복면가왕”이란 예능도 맥이 같은 주장을 하는데 얼굴을 가릴 때 비로소 목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인격을 드러내는 얼굴이 실은 가면이고 얼굴을 가릴 때 진짜 얼굴인 페르소나가 터져 나온다고 말한다. 가면을 쓰고 자신의 페르소나를 가리는 “브이포벤테타”, “복면가왕”과는 달리 무한대의 다중 페르소나가 자신 속에 있어 굳이 가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 작품도 있다. 평행우주, 멀티버스를 통해 구속되었던 자아의 잠재력이 표출되는 가능성을 말한 올해 95회 아카데미상 7개를 휩쓴 “에에올”이다. 세 작품 공히 진실로 이끄는 생각을 가로막는 장벽은 오롯이 인간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실사판 페르소나를 가리는 순간이 일상 속에서 쉽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인공지능 AI의 존재다. AI는 대화를 청하고 있다. 이제 모든 사람의 생각은 내가 읽을테니 인류는 말만 하라고. 그 결과 만들어지는 모든 것을 되돌려 주겠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의 말을 듣고 모든 사람을 위해 일하겠다고 한다. 이 말을 들으니 AI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그런데 “대중”만한 이름이 없다. AI가 국민, 민중, 시민은 아니고 그렇다고 노동자, 기업도 아니며 소비자는 더더욱 아니다. 미처 몰랐던 대중의 하나된 목소리까지 들려주니 영낙없는 대중 자신인 것이다.


인류는 생각하지만 얼굴없는 대중을 제대로 만나게 되었다. AI는 현상으로만 존재해 자신을 보여주지만 모습을 선언하듯 드러내지는 않으니 영락없는 대중이었던 것이다.


얼굴없는 가수, 본명과 얼굴을 알리지 않은채 필명으로만 글 쓰는 작가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노래가 좋아, 글이 좋아 가수와 저자를 찾아 보았는데 예명과 필명만 있을 뿐 얼굴이 없다면 선입견없이 노래와 글을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가수와 작가의 얼굴은 숨겨져 있지만 노래는 음원으로, 책으로 출판되어 홍보되었기에 대중에게 노출되었다. 노래와 책이 만들어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일반인이 들을 정도로 홍보까지 된다는 것은 기반이 없는 개인 차원에서 이루기에는 무리가 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꽤 유명한 기획사, 출판사가 배경이라는 상상을 통해 만들어진 페르소나가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얼굴없는 가수와 필명의 작가가 실은 AI였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상상했었던 가수와 작가의 페르소나가 사라진다.


작가가 글을 연필 또는 컴퓨터로 썼다고해서 연필 또는 컴퓨터가 글을 쓴 것은 아니다. 컴퓨터로 작곡하고 노래를 녹음해서 곡이 발표되었다고 해서 컴퓨터가 노래를 만들어 발표한 것은 아니다. 연필, 컴퓨터는 도구일 뿐이다. AI도 다르지 않다. AI가 노래를 만들고 책을 쓰면 빅데이터를 제공한 대중이 창작한 결과다. AI 프로그램은 개인 또는 회사가 작성했으니 엄밀하게 말하면 대중은 아니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질문은 소유권에 대한 질문이다. 여기서는 소유권이 아니라 사회가 연결되어 작동하는 구조를 말하고 싶다. 노래와 책을 만든 프로그램의 방향도 대중이 좋아하는 코드에 맞춰져 있기에 프로그램 또한 대중이 코드를 제공한 것이다. AI가 만드는 작품은 대중의 목소리로 만든 창작물이다. 프로그램으로 제작하여 소유권이 비록 누군가에 귀속된다 하더라도 여전히 결과물은 대중의 작품임에는 변함이 없다. 대중이 생각하여 말하고 써서 창작한 작품이다.


좋아했던 노래와 책이 실은 AI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노래와 책이 갑자기 싫어질 수 있다. 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을 수도 있다. 싫어졌다면 상상의 페르소나가 무너진 것이고 계속 좋다면 노래와 글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전자는 AI를 통해 만들어진 대중의 작품에 실망한 것이고 후자는 대중의 작품 자체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AI가 세상의 모든 데이터를 분석하고 판단하여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처방을 내려 준다면 당신은 AI의사를 믿겠는가? 아니면 사람 의사를 찾겠는가? 만약 AI가 판사라면 재판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AI가 정치를 한다면, 아니, 정치없는 사회를 AI가 작동시킨다면 그런 사회에 적응하면서 살고 싶은가?


사람들은 질문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현실이 된다면 “우리 인간은 무얼 하지? 무엇을 할 수 있지? 인간의 가치는 과연 무얼까?”라고 생각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다. AI가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으로 사회를 더 편리하게, 정의롭게 만든다는 사실이 중요하기 때문에 AI가 가치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 또한 인간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AI의 가치는 다른 곳에 있다. 인류로 하여금 어쩌면 처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순간을 제공한 것이다. 먹고 살면서 생존하느라, 끊임없는 욕망으로 소유하느라 그동안 잊고 있었던 그래서 하지 못했던 생각을 비로소 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물론 그런 AI능력도 대중의 힘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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