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되면 내 몫, 잘못 되면 부모탓?
잘 되면 자기 몫, 잘 못되면 부모탓이란 말이 있다. 우리 사회에도 비슷한 것이 있는데 사업이 잘 진행되어 이익이 생기면 개발자 몫이고 사업의 결과 생긴 폐기물은 환경에게 맡기는 관례다. 부모란, 환경이란 으레 그런 것이라고 믿는다.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과거에 일어난 일 중 사회가 기억하고 있어 지금도 활발히 소통되고 있다면 과거사가 아니라 지금 겪고 있는 일이다. 케이블카를 설치하려면 개발 후 환경이 어떻게 바뀌는지 평가하는 환경영향평가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케이블카가 설치되는 산림과 어느 때보다 직접 소통해야 한다. 왜 지금 함께 하는 기억과 산림을 주위로 밀어내 버리고 소통에 참여시키지 않고 환경 취급하는가. 너무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소통하는 시스템과 소통 밖 환경이 잘 구분되지 않으면 제발 우기지 말고 사회학자에게 물어 제대로 파악하고 정치와 개발도 해야 한다. 쬐금 아는 것으로 환경 운운하는 것은 비겁하고 우매한 것이다. 솔직히 역겹다. 단언컨데 누군가 말하는 과거사, 개발 대상인 산림은 환경이 아니라 엄연히 지금 당장 사회가 소통하고 있는 동시대 일이고 일상의 삶이 발생하는 대상이다.
소통 한번 하면 사회가 한번 형성된다. 불행했던 과거에 일어난 일과 한번 소통해서 우리 사회의 모습이 한번 바뀐다. 산과 소통하니 산이 일상이 된다. 환경으로, 외곽으로, 밀어낼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예전 조선시대, 생각과 소통이 백성에게 미치기 힘든 그런 시절도 있었다. 왜구가 해안지역을 노략질해도 먼 소문으로 들려올 뿐 일상에 실질적인 영향이 없었고 나라가 산을 깍아 무언가 지어도 그 영향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지금은 물리적인 영향도 체감할 정도로 직접적이지만 정보와 대화, 그리고, 디지털 세계의 가치 형성도 남의 얘기가 아니다. 잊고 싶다고 잊혀지고 멀리 두자고 멀리 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디지털시대 정보가 가지 못하는 곳은 없다. 정보가 가면 소통이 생기니 환경은 없다는 판단이다. 말로 대화하는 것만 소통은 아니다. 언론이 가서 취재해 보도하고 정치인이 반응하고 대통령이 국민에게 의견을 말하는 것으로 소통을 이해하던 시절은 지났다. 사실, 그런 소통은 원래 없었다. 잘못 알고 있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가서 정보가 생기는 모든 곳에 소통이 생긴다. 소통의 기호가 언어만은 아니다. 돈이란 기호로도 소통한다. 가치를 담는 대표적인 소통도구가 돈인데 그런 소통이 왜 없겠는가. 디지털 화폐라면 더욱 그렇다. 말이든 돈이든 사람들의 관심이 가는 곳이면 모두 해당 기호로 소통이 일어난다. 소통이 일어나면 환경은 사라진다. 디지털 시대 “환경이란 세계”는 결코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래도 잘 되면 자기 몫, 못되면 부모탓, 환경탓 할건가. 이러니 환경 유독 강조하는 개발자, 정치인는 물론이고 보호론자들도 조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