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 어느날 갑자기..
1866년 대원군은 무너져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나라를 구할 자금 마련을 위해 “당백전”을 발행한다. 한 사람이 백 사람 몫을 한다는 말 그대로 발행한 동전이 “일당 백” 역할을 해 주길 원하면서. 딱 거기까지였을 것이다. 아무리 큰 뜻을 가진 자라도 돈을 잘못 만지면 그것으로 끝이 난다. 대원군은 순수했지만 순진했고 실패했다. 일당 백 몫을 하는 화폐를 만들어 나라를 구하려 했다면 그 뜻을 숨기고 교묘했어야 했다. 목적은 숨기고 명분을 내세우되 치밀했어야 했다. 돈은 원래 그런 성격을 갖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발행한 화폐에 일당 백 역할을 하라고 당백전이란 이름을 붙였으니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돈에게 희생을 강요했으니 그게 통하겠는가.
1933년 3월 4일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미국 33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자마자 모든 은행의 문을 나흘 동안이나 걸어 잠그고 금융개혁을 단행한다. 1929년 불어닥친 대공황으로 망가진 나라를 그대로 둘 순 없었다. 백약이 무효라고 그는 생각하고 무모한 결정을 했다. 무모했지만 한번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먼저 화폐의 근간을 바로 잡아야 했다. 금본위제도를 폐지하면서까지 금의 해외 유출을 막았는데 이는 나라 돈의 기준이 바로 서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이미 도산해 몇 남지 않은 은행들과 경제기반인 농업을 살리고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고 믿었다. 이 모든 개혁을 하기 위해서 루즈벨트 대통령은 무모해야만 했는데 기꺼이 무모함을 자처했고 대신 용의주도했다. 그는 나랏돈이 일당백 역할을 해 내기 위해서는 그가 가진 패를 국민에게 보여주어 희생해 달라기 보다는 개혁의 결과로 국민을 설득했다. 돈과 가치의 새로운 거래(딜, deal)를 화폐 기준을 다잡음으로써 생긴 돈으로 경제를 살려냈다. 그의 성공한 개혁을 우리는 새로운 거래 ‘뉴딜’이라고 부르는 배경이다.
2023년 지금, 한국의 구한말과 미국의 대공황 못지않은 경제불황이 전세계를 덮고 있다. 대원군과 루즈벨트 대통령이 느꼈던 위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직 불황의 골이 충분히 깊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팬데믹으로 침체된 경제가 아직 회복이 덜 되어 힘들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지금은 비록 힘들지만 서서히 나아질 것이라 믿는 것이다. “아니다!” 제대로 힘든 경제상황이 아직 오지 않았음이 느껴지지 않는가. 치솟는 물가, 화폐 가치 하락, 일자리 부족은 대원군의 구한말, 루즈벨트 대통령의 미국과 꼭 닮아 있다. 여기에 한술 아니 몇 술 더 뜬다. 에너지 위기, 기후재앙 위기, 그리고 전쟁까지. 물론 위기는 늘 왔었고 또 흘러가 극복되기도 했었다. 다만 어떤 국가는 기회로 삼았고 어떤 나라는 제대로 대처못해 가혹한 시련을 겪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른 “패”가 하나 보인다. 전 세계가 모두 만지작 거리는 아직은 생소한 “패” 말이다. 그것은 디지털화폐라는 새로운 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세계질서 재편 가능성이다.
당백전이 통할 것이라 믿었던 대원군이 되어서도 안되지만, 금이라는 과거로 부터의 유산, 그리고, 이미 여러번 써 먹었던 기축통화(미국 달러) 중심의 금융개혁 정도로 지금의 위기가 극복된다고 믿어서는 안된다. 국가 위기야 정부가 알아서 할 일이고 자신은 가진 돈 잘 지키고 또 뒤를 떠받쳐 주는 지금은 저평가되어 있지만 부동산이 있으니 걱정없다고 믿을 수 있다. 1866년, 1933년, 2008년 처럼 가진 자들에게는 유독 관대했던 금융개혁들이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그들은 믿는다. 정말 그럴까? 그렇게 믿는다면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이 큰 실수라 후회할 순간이 왠지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기우일까.
지금 위기에 쓸 수 있는 패는 사실 1933년, 2008년과 별반 다를게 없다. 미국이라는 거대국가는 금을 가졌고 기축통화인 달러도 가졌다. 여전히 세계 경제 축을 뒤흔들 수 있는 금융도 보유하고 있다. 중국이 조금 성가시기는 하지만 아직 라이벌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1933년, 2008년 상황과 딱 한가지 다른 것이 있기는 하다. 디지털화폐의 존재이다. 미국은 중국도, 러시아도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두려워 한다고 엄살을 떨면서 자국을 위해 챙길 것 마련하고 자기 편 만들기 좋은 상황으로 몰고 간다. 일본이 그렇고 우리가 그렇게 되고 있지 않은가. 거대국가인 그들이 두려워 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새로운 화폐의 기준이고 금융질서의 재편이다.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화폐가 가치의 기준을 새롭게 세우기 시작하면 미국의 패권이 위협받을 것이 자명하다. 지금 미국이 만지작 거리며 고민하는 것은 금리인상을 통한 국내 물가안정, 투자확대 통한 새로운 뉴딜 일자리 마련, 위기를 틈타 가능한 국가부채 탕감 정도가 아닐 것이다. 팬데믹 이후 상황과 러시아 침공전쟁으로 어수선한 지금이야 말로 블록체인 디지털화폐가 가치의 기준이 되는 새로운 금융세계의 패권을 미국 중심으로 만들려고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을 것이라 해석한다.
2030년 어느날 은행 뿐만 아니라 모든 온라인 금융이 중단되면서 세계를 뒤집을 블록체인 기반 화폐 개혁이 거대국가 미국에서 일어나지 않으란 법은 없다. 그들은 지금의 위기를 통화붕괴라 쓰고 통화교체라 읽고 있는듯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