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야할 것은 도덕이 아니라 전쟁, 국가, 국제, 기업의 “윤리”다
러시아, 미국, 중국, 일본은 이제 선을 넘어도 너무 넘고 있다. 예전 영국,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칼이 그랬다면 지금은 현재의 초강대국이 이어 받았다. 공포의 세계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어벤져스도 없는 세계에서 평범한 사람은 무엇을 의지하고 살아야 할지 막막할 뿐이다. 초등학교 때는 도덕을 배우고 대학 이후에는 도덕 대신 윤리를 배우는 이유가 따로 있지 않았다. 도덕으로는 설명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전쟁, 국가, 경제, 기업과 시장, 정치에는 윤리만 존재할 뿐 도덕은 없다는 것이 현실에서 확인된다. 도덕은 오직 권력에서 빗겨난 개인에게만 부과될 뿐 도덕으로 살 수 있는 세계는 이제 없다. 아니 원래부터 없었던 것이다. 개인을 옭아맨 도덕을 깬 니체의 망치는 이제 초라하다. 그 정도로는 어림없다. 국가와 세계를 무장시킨 권력 윤리를 상대하려면 어벤져스 토르의 해머 정도는 되야한다.
전쟁터에서 승리하면 전쟁 영웅이 된다. 상대국가의 군인을 죽이고 남의 영토를 점령해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 이것이 전쟁윤리인데 극악무도하다. 여기에 도덕이란 있을 수 없다. 학창시절 배운 그 어떤 교과서에도 전쟁에서 사람을 살상하는 도덕률을 배운 적이 없다.
국경있는 전쟁은 이제 국경 없는 경제, 군비경쟁, 외교 전쟁으로 확장되어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도덕의 영역이 아니라 배우고 설명듣고 암기해야 하는 “지식” 수준이 되었다. 모르면 순진하다 못해 멍청한 샌님을 면하기 어렵다. 모르면 가만 있고 표나 찍어라고 하며 가르치듯 기분나쁜 미소를 띠는 장관과 정치인을 보는 것이 영 불편하다. 미국의 자국산업 보호, 중국 중화사상, 일본의 자국 방어능력 주장을 들으면 반박하기 힘든 그들만의 확고한 명분과 논리로 무장되어 있다. 도덕 교과서 어떤 대목으로 이를 설명할 수 있겠는가. 스위스 나이프 윤리로 포장한 그럴듯한 지식으로 해석하기 전까지는 이해 불가능이다. 절대강자들의 물고 물리는 냉혹한 싸움판이다. 하필이면 그 싸움의 링이 한반도 포함한 인근이다.
국내 정치를 초등학교, 중학교 다니는 조카들에게 설명할 도덕을 찾을 길이 없다. 현실은 교과서와는 다르다고 말할 뿐이다. 정치 외 다른 사회 모습도 비슷하니 모두가 길을 잃은듯 하다. 그런데 여전히 학교와 가정, 많은 공동체들에서는 윤리가 아닌 도덕을 강조하면서 가르치고 있으니, 그건 도대체 어떤 자신감인지 궁금해지기까지 하다. 솔직하게 그냥 교육이란 단어 사용금지라고 하고 싶을 지경이다. 학교 교육 대신 “현실 혼란 설명 지식제공소” 정도의 작명이 어울린다. 도덕을 강조해 험난한 세계와 악의 무리들에게 아이들이 다치게 두지 말고 열심히 돈을 벌어 자신을 방어할 경제울타리와 변호사 비용이라도 마련하게 필요한 지식을 주는 것이 낫다 싶다.
어디서 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 오리무중이지만 한가지 명확한 것은, 도덕이 아니라 윤리에서 출발해야 함을 빨리 알아차려야 한다. 국가윤리, 전쟁윤리, 국제관계 윤리, 무역윤리의 알기 힘든 심연의 근원을 찾아내야 한다. 눈물도 피도 없는 윤리가 도덕으로 포장되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보아서는 곤란하다. 그러면 반드시 뒷통수 맞는다. 그만큼 얻어 맞고도 또 속으니 우리 자신을 원망해서라도 이제라도 바꿔야 한다.
한가지 실마리가 있다면 도덕이 윤리로 넘어갈 때 미덕과 가치가 있었다. 미덕은 경쟁 논리로 오판되고 가치는 화폐로 매겨져 다시 권력으로 이어져 버렸다. 하지만 미덕과 가치가 잘못 한 것은 아니며 경쟁과 계급, 자본으로 확장시킨 인류의 기발한 능력이 만든 세계일 뿐이다. 그러니 비록 기능 오류가 발생했더라도, 계급을 작동하는 미덕과 자본을 작동하는 화폐로 돌아가면 해결의 작은 실마리가 보일 것이라고 믿는다.
“개인”이란 개념이 부상되기 시작한 시대 개인을 구속한 도덕을 깨자고 한 니체는 옳았다. 그래서 우린 니체에게 망치를 쥐어 주었다. 이제 개인이 거대한 물결이 된 액체근대, 디지털 정보시대 현대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이제 깰래야 깰 개인이 없다. 그들은 액체 속 물분자에 불과하다. 개인이 아니라 개인이 생산한 정보 데이터가 작동하고 구조를 만드는 게슈탈트란 존재가 생겨나 개인간 경쟁이 아니라 게슈탈트의 화신인 권력이 경쟁한다. 여기서 게슈탈트란 구성요소가 모여 만들어진 전체이지만 구성요소의 합과는 다른 기능하는 총체를 말한다.
개인은 게슈탈트 거인의 작은 세포에 불과하다. 게슈탈트는 국가, 기업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국경있는 전쟁과 국경없는 전쟁을 서슴치 않는 존재는 다름 아닌 게슈탈트란 현상이다. 오직 게슈탈트 윤리만이 세계를 움직인다. 권력과 혼란의 실체는 다름아닌 게슈탈트란 현상이니 그 현상의 재료와 움직임의 동력인 힘과 힘의 원천인 돈을 상대해야 한다. 빔프로젝트로 비친 화면이 게스탈트 현상이라면 화면을 지워봐야 필요없다. 빔프로젝트를 다뤄야 해결된다. 현상을 비추는 근원은 다름 아닌 돈이란 존재라는 것 쯤은 우리 모두는 이미 안다. 애써 외면할 뿐이다. 그 어떤 다른 논리로 얘기하는 자가 있다면 토르의 해머로 내리쳐야 한다.
거대 권력, 초강대국가들이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게 “돈”이라는 존재라면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지 말고 디지털시대 새로운 화폐로 거대한 토르의 해머를 만들면 될 일이다. 해머를 제대로 만들어 보편적 도덕을 지키겠다는 속임수로 세계 경찰을 자처하는 황당한 국가와 왼쪽 깜빡이 켜고는 우회전 하는 믿을 수 없는 국가를 내리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