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진화 속 토끼 대 거북이 전략
손에도, 입안에도, 내장 속에도, 흙에도, 음식에도, 그래서 어디에도 있는 미생물은 무엇일까? 소화, 된장과 술 만드는 것 도와주고 똥 속에서 영양분 흡수와 분해를 돕기도 한다. 어디에나 있지만 보이지 않으니 존재감이 부족하지만 인류의 등장 시기 보다 까마득한 이전부터 존재했던 다름아닌 박테리아이다. 박테리아는 이분법으로 번식한다. 몇 분만 지나면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은 넷이 되는 식이다. 순식간에 엄청나게 불어난다. 지금 손에 있는 박테리아는 태고적 선조가 분열에 분열을 거듭해 지금에 이르렀다. 그러니 박테리아는 나이가 없다. 나이를 가름할 수 없다.
이렇듯 죽지 않고 분열을 통해 나이를 잊은 박테리아와 사람과의 또 하나의 큰 차이는 유전자다. 태고적 박테리아의 유전자는 이분법 분열을 통해 지금의 박테리아가 되었기에 조상의 유전자가 지금의 후손 박테리아와 이론적으로는 동일하다. 물론 변종이 발생하기도 하고 박테리아도 촉수같은 침을 찔러 유전자 정보 교환을 일부 한다고 하니 조상 박테리아와 후손 박테리아가 정확하게 동일한 유전자는 아닐테지만 그래도 이론적으로는 동일해야 한다. 사람은 다르다. 우선 수정해서 태어나기 때문에 부모 유전자가 합쳐져서 하나를 만든다. 하나와 하나가 합쳐 둘이 아니라 하나가 되는 과정을 거친다.
동일한 여러 개를 만들어 자신을 보존하려는 존재가 박테리아라면 두 개가 합쳐져서 우연 속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하나라는 가치를 통해 종족을 보존하는 것이 사람이다. “양”의 전략 대 “질”의 전략이다.
박테리아도 죽는다. 하지만 사람과는 다르다. 먹이가 충분하고 조건이 맞으면 박테리아는 죽지 않는다. 먹이가 없고 생존 조건이 열악할 때만 죽는다. 이미 잘 알다시피 사람은 먹이가 아무리 충분해도 생존조건이 완벽해도 반드시 죽는다. 양으로 승부하고 질로 승부하는 전략은 죽음에서도 갈라진다.
종족을 유지하고 자손을 번식하기 위한 이분법은 증식이 빠르다. 질보다는 양이다. 사람의 경우 수정이 된 후 10달을 거쳐야 하지만 박테리아는 분 단위로 자기 몸을 갈라 자손을 만든다. 종족 보존 전략으로 박테리아는 양을 택했고 사람은 질을 택했다. 경주에서 토끼는 쭉 앞으로 나간다면 거북이는 한 걸음 한 걸음 다져 나가는 식이다. 사람은 박테리아와는 달리 거북이 전략을 택했다.
태고적 지구상 모든 생물은 박테리아로부터 출발했다. 그러면 사람도 처음에는 양으로 승부를 걸던 때가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다 질로 바꾼 것이다. 질을 중요하게 여기는 전략은 단세포 박테리아가 다세포 생명으로 그리고 여러 단계를 거쳐 포유류가 되고 다시 영장류, 사람이 되는 과정으로 이어졌다. 박테리아가 생존과 자손 전략에서 철저하게 양으로 승부를 걸었다면 박테리아와 사람 사이 진화단계에서는 극단적 양 전략과 또 다른 극단인 질 전략이 함께 일정 비율로 섞여있다. 그리고 지금의 질 중심의 종족 유지와 자손 번식의 전략이 완성된 것이다.
인류의 피 속에는 당연히 “양” 중심의 생존 전략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서 많은 사회문제를 여전히 “양” 중심으로 해결하려 하기도 한다. 특히, 경제에 있어서는 돈을 매개로 한 거의 모든 이론이 “양” 중심인 것이 사실이다. 인구정책도 경제 정책의 이론 우산 속에서 바라보면 답이 없다. 저출산, 인구절벽, 초고령화 사회의 답을 출산장려에서 찾는 것은 진화의 축에서 보자면 박테리아 전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없는 답을 찾는 격이다. 자본주의, 사회주의와 같은 구닥다리 체계에서 찾으려니 그 정도 해결 밖에는 떠 오르지 않는 것이다. 사람의 생명 하나라도 무궁무진한 가치의 근원이라는 “질” 중심의 전략을 인류 진화 과정에서 기껏 추구해 놓고는 어려운 문제 하나 만났다고 왜 다시 처음 출발점으로 돌아가려 하는지 안타깝다.
전후반 90분 축구경기, 그 중간 경기가 풀리지 않는다고 애써 훈련해 만든 원팀을 포기하고는 연습하기 전 각자도생의 혼돈으로 다시 돌아가 경기를 풀어갈 전략을 찾는 감독은 세상 어디에도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