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인 화해가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겠다
책 출판을 계획할 때 출판사가 저자에게 물어보는 첫번째 질문이 있다. “책을 통해 꼭 하고 싶은 한마디 말이 무엇인가요?” 책은 그 한마디 말을 하기 위해 전체를 할애한다. 배경도 밝혀야 하고 왜 그 말이 그렇게 중요한지 설명하기도 한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독자의 이해를 돕고 관련 사실들을 가져와 믿음을 갖게 해야 한다. 독자가 출판된 책의 맨 마지막 쪽을 덮으며 저자의 그 한마디가 뒷가에 들린다면 책은 성공했다. 정리하면, 저자가 하고 싶은 한마디 말이 “원인”이 되어 책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독자는 책을 읽고 나면 저자의 한마디 말 때문에 책 전체 내용이 어떤 의미였는지 깨닫게 된다. 저자의 말 한마디가 들리면 책 내용을 비로소 해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책을 유전자에, 진화는 책을 해석하는 과정이라고 비유한 책이 있다. 저자가 하고 싶은 한마디 말은 생명의 지금 모습이다. 2020년 출간된 “다윈에서 데리다까지”라는 책인데 저자는 진화생물학자, 하버드대학교 교수인 데이비드 헤이그이다.
헤이그 교수의 이론을 처음 접하면 무척 혼란스럽다.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지금 모습이 진화의 원인이라는 이론이기 때문이다. 원인은 결과보다 시간이 앞서야 된다고 알고 있는데 헤이그 교수의 이론은 원인과 결과가 시간 축 상에서 뒤바꿔 있다. 지금의 모습이 그간 진화한 모든 과정의 “최종 원인”이라고 그는 말한다. 지금이 있기에 과거가 그렇게 결과 되었다는 해석이다.
원인과 결과를 헤이그 교수는 왜 뒤집었을까? 다윈의 진화론 처럼 시간의 흐름 축으로 유전자 진화과정을 설명하려면 환경에 적응한 종만 생존했다고 이해해야 한다. 자연선택이다. 그러니 모든 종은 그저 생존하려고 환경에 적응하고 경쟁하면서 살아온 존재에 불과하게 된다. 그런데 생각을 바꿔 종의 지금 현재의 모습이 원인이라고 한 이후에 진화과정을 살펴보니 진화의 순간 순간이 모두 의미를 가지더라는 것이다. 흥미롭기도 하고 그 다음 얘기가 궁금해 읽게 되지만 다 읽고 나면 저자의 하고 싶은 한마디 말 때문에 책 전체 내용이 그렇게 흘러 갔구나 하는 의미를 알게 되는 것과 유사하다. 책을 읽는 중간에 재미없어 포기하면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모르게 된다. 이는 진화과정에서 생존하지 못한 종이 지금에 이르지 못한 것과 비슷하다. 종은 생존해 지금에 이르렀고 책은 독자를 중간에 포기하지 않게 만들어 완독을 이루었다. 현재 생존해 있어야 진화과정의 의미를 알게 되고 책을 완독되어야 의미 해석이 가능해 진다.
유전자를 책 속 글이라고 비유한 헤이그 교수 이론은 “최종 원인”은 곧 목적이라고 말한다. 최종원인 개념은 많은 철학자들이 사용해 왔었고 “목적”이란 단어 속에는 “의미를 제안하다”라는 어원이 담겨 있다. 시간이 흘러 현재가 되어서야 모든 사건이 그렇게 흘러 온 원인을 파악할 수 있고 삶이란 제안서를 비로소 발견한다는 이론이다. 기발하기도 하지만 심오하기도 하다.
“다윈에서 데리다까지”는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진화생물학 여러 지식은 물론이고 최종원인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칸트 철학이 담겨있다. 유전자는 생명체의 모든 것이 해체되어 코드화 된듯 보이기에 이를 설명하는 포스트모더니즘 해체를 얘기한 자크 데리다를 다루기도 한다.
진화과정을 거쳐 기어코 생존해 현재에 이른 생명체는 다윈의 진화론으로 이해되지만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고 헤이그 교수는 말하는듯 하다. 다윈의 진화론을 부정하지 않고도 현재 생명체의 모습이 있어 진화의 과정이 모두 의미를 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현재 생명체의 지금 모습을 절대 초월적 존재가 창조했다고 해도 진화론과 배치되지 않는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진화론이 창조론과도 화해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나의 생각일 뿐이다. 종교가 기독교는 아니고 또 헤이그 교수의 이론 속에 이런 의도가 담겨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과학과 기독교 종교의 화해 말이다.
책을 통해 꽤 많은 지식과 새로운 가설 이론을 접하는 재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지금 현재 나의 모습이 내가 살아온 삶의 원인이었다는 해석은 살아낸 모든 삶의 의미를 비로소 찾게 되는 매력과 따뜻한 메시지를 “다윈에서 데리다까지” 책은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