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 ‘큰 대'가 쓰인 이유

지식이 아니라 지식이 쓰일 상황을 배우는 곳이기에

by 강하단
대학이 큰 우주란 이름을 얻게된 순간을 잊지 말자


교육의 단계를 보면 목적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초등, 중등, 고등이 그 것인데 배움을 시작하는 ‘초’가 출발이고 배워 가다 보면 가운데 ‘중’에 도달한다. 이후 높은 단계 ‘고’에 이른다. 초등, 중등, 고등으로 이어지는 배움의 단계 이동이다. 이어진다고 믿는 대학은 실은 고등의 다음 단계가 아니라 차원을 바꾸는 것이다. ‘고’보다 더 높다는 의미의 단어를 쓰지 않고 큰 ‘대’를 사용한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영어로도 대학은 우주라는 뜻을 담고 있지 않은가. 대학은 세계가 아니라 세상을 공부하기에 배움의 범위를 벗어나 차원을 다루게 된다.


주어진 방정식이 유일한 길이 아닐 것이라는 질문을 하는 곳

공을 던지면 포물선을 그리고 날아가다가 다시 땅으로 떨어진다. 공을 던진 힘을 알게 되고 힘은 공기 중에서 마찰력과 중력의 영향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진다는 것을 학교에서 배운다. 이를 수학으로 표현하고 힘, 마찰력, 중력을 변수로 날아간 거리와 착륙지점을 계산할 수 있다. 초등, 중등,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물리의 세계다. 하지만 대학에서는 공을 관찰하고는 다른 차원을 고민한다. 공의 궤적을 알기 위해 필요한 변수가 어떤 배경에서 힘, 마찰력, 중력인지, 꼭 그렇게 단정해야만 하는지, 혹시 다른 변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대안을 간과한 것은 아닌지 묻는다. 그래서 이를 높다고 하지 않고 크다고 한다. 높은 지식은 전수가 되지만 즉 가르칠 수 있지만 큰 지식은 함께 알아가야 한다. 대학에서 여전히 강의하지만 형식일 뿐 실제로는 함께 고민하는 순간일 뿐이다.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을 ‘앎’이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큰 지식으로 고민을 하는데 등수가 매겨진다?

대학교육에서 학점으로 순위가 매겨지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아무리 노벨상 받은 물리학자라도 입자 이동방정식 변수에서 힘의 항을 의심하는 학생들의 토론에 어떻게 높고 낮은 점수를 매길 수 있겠는가. 대학을 스스로 깍아내리는 행위다. 상대평가 운운하면 학점 가이드라인, 심지어 이를 대학이 실천하는지 평가하는 교육부의 교육정책은 벗어나야 할 교육 구조의 대표적인 예이다. 학생의 큰 고민과 배움을 행동주의 운운하며 상과 벌로 조절하려는 것에서 대학은 벗어나야 한다. 학생 뿐만이 아니다. 심지어 대학에도 순위가 있단다. 국내외 대학의 등수를 매겨 좋은 대학, 나쁜 대학이 생기게 만들고 만다. 평가지표가 생겨 큰 배움에 좋고 나쁨이 생겼다. 이를 보고 있으면 대학이 각자 지닌 차원 다른 어리석음을 경쟁하면서 등수를 매기는 곳 인듯 보인다.


대학은 인재 공급소가 아니라 세상을 여는 인간이 형성되는 곳이다

기업인들로부터 참 많이 듣는 말이 있다. “대학에서 무얼 배우는지 모르겠다. 입사 후 모두 다시 가르쳐야 한다” 대학을 고정된 지식을 배우는 학원 정도로 취급하는 말이다. 하지만 대학은 그 기업인이 말한 기업의 상황에서 쓰이게 될 지식이 유일한 길인지 고민하는 능력을 쌓는 곳이다. 과학기술 지식이 사회의 위기에 쓰여 사회가 가게 될 세상을 가름하는 능력이 형성되는 곳이다. 아무리 세계 속 기업경쟁이 힘들다고 해도 지식과 학문의 차이를 혼돈하는 것은 곤란하다. 교육부도 치열해지는 세계 산업경쟁에 대처하기 위해 지식과 기술로 무장한 인재를 대학이 공급한다는 교육관을 재고해야 한다. 산업상황은 급변하기 때문에 대학에서 무장시킨 지식과 기술은 채 몇년을 못 버티고 수명을 다한다. 그러면 기업은 새로운 인재를 찾는 식이다. 교육부는 정책으로 이를 지원한다. 그들이 믿고 있는 인재가 급변하는 세계경제 속 경쟁 상황에서 역할을 하는 것은 대학에서 배운 특정 지식과 과학기술 때문이 아니라 고갈된 지식과 기술에도 불구하고 지식과 기술이 만들어지는 세상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이를 기업이 재교육한 결과라고 믿고 싶겠지만 실은 기업과 교육부가 인재라고 믿는 “사람이란 존재”가 경쟁 세계 속에서 세상을 알고 대처한 결과이다. 이것이 대학이 여전히 역할을 하고 존재해야할 유일한 이유다. 사람이 세상을 고민하는 일 말이다.


그러니 제발 목에 핏발 올리며 제가 아는 한줌 지식과 권력으로 대학을 멍들게 하는 일만은 멈춰주길 바란다. 대학이 멍드는데 학생은 오죽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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