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하단 Dec 03. 2023

대학의 기적, 다학제 융합이 가능하다고 믿다(2)

분과 학문의 지식 인프라

분과 학문의 지식 인프라

학문의 분류는 정체성을 가진 학자의 탄생을 알렸지만 다른 학문에 대한 배타성 또한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배타성은 분과학문의 발전을 위해 오히려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A가 A와 B로 분과되어 나누어질 때, 각 학문이 담당할 범위를 나누었을 것이다. 절대적 기준을 갖고 분리되지는 않았겠지만 분과학문이 다룰 범위가 구별되는데 동의했을 것이다. 범위가 정해지니 분과학문이 행하는 연구와 교육은 분과학문의 정체성을 확보해 주는 규율이 되고 학문을 단련하는 방법론 또한 제공하게 된다. 이를 규율성을 가진 단련법(discipline)이라고 한다. 그렇게 분과학문은 규율과 단련법을 가지게 되어 그 범위 속에서 연구하고 교육하게 되었다. 분류된 분과 학문의 범위와 합리성 속에서 지식이 형성되고 있는지 단련법은 늘 검정하고 경계를 벗어나면 경고하고 심하면 거부함으로써 분과학문의 정체성을 지키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대학의 교육도 분과학문의 단련법 속에서 이루어지게 된 것은 자연스런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학문의 분류는 분과 내 전문학자가 생긴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분과학문의 여러 다른 단련법이 대학 내에서는 각기 다른 이름을 가진 학과로 이어지게 되었다.


전문 학자의 연구와 교육을 담당하는 분과 학문 단련법과 함께 형성된 것이 있는데 지식 인프라이다. 고속도로가 생기면 그곳으로 차량의 흐름이 일어나고 상수관이 건설되면 관을 거쳐 수도꼭지로 수돗물이 생기듯 지식 인프라를 통해 지식이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저널과 학회가 대표적인 예이다. 각 분과 학문에는 지식의 흐름을 유도하고 책임지는 저널과 학회가 있는데 형성된 지식이 지식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한다.(**Book “the Promise of Infrastructure”**, 2018 Duke University Press, Chapter 8 (Sustainable Knowledge Infrastructure, by Geoffrey C. Bowker)) 형성된 지식이 흘러가게 도와주는 역할 뿐만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인가 지식의 형성 자체를 어느 정도 조절하고 통제까지 하게 되었다. 소위 상위 랭킹으로 분류된 저널이 학자의 연구방향을 제시하게 되었다. 그런 결코 없고 의도한 적도 없다고 저널은 말 하겠지만 분과 학문 별로 상위 랭킹을 차지한 저널들이 부지불식간에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대학과 연구소 연구자들의 많은 연구가 상위 랭킹 저널에 논문을 출간하는 목표를 가지며 연구 프로젝트의 평가도 논문으로 이루어 지는 것을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대학에서 교수를 채용하고 연구자를 평가할 때 어떤 연구를 어떻게 했냐고 묻기 보단 연구결과가 어떤 저널에 실렸는지 따지게 되었다. 출간된 논문의 수를 양으로, 출간된 논문이 실린 저널의 해당되는 분과 학문 내 랭킹과 인용지수를 질로 평가하는 것이 표준이 되었다. 정부가 운영하고 승인하는 은행에서 나오는 돈만 법적으로 인정하고,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만 위생적인 수질로 보장하듯 상위 랭크된 저널에서 나오는 논문만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언제 부터인가 컴퓨터를 켜서 논문을 클릭하면 그곳에 지식이 흘러나오는 것이 당연해 졌다. 수많은 논문이 마치 수도꼭지에서 물 나오듯, 전기코드로 전기가 쓰이듯, 마치 정해진 인프라를 통해 나오는 표준화되고 정형화된 형식을 자유로와야 할 지식이 취하고 있다. 물론 이를 통해 지식을 알리고 접근하기 간편해 진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런 연유로 형식과 지식 표현 양태를 바꾸면 마치 틀린 답을 쓴 오류 답안지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물은 반드시 수도꼭지에서 나와야 믿을 수 있다는 믿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웅덩이에서,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을 어떻게 믿을 수 있냐는 식의 태도를 지식에서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대학의 기적, 다학제 융합이 가능하다고 믿다(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