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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단 Dec 08. 2023

대학의 기적, 다학제 융합이 가능하다고 믿다(5)

계몽? 깨몽!

(5) 계몽? 깨몽!


다학제 융합을 얘기하는 토론, 학회에 가 보면 자신들의 전문 학문분야 얘기를 잔뜩하고 무엇보다 자신만이 다학제 융합의 열쇠를 지고 있는 양 언제든지 자신에게 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처럼 강조하지만 결국은 모호한 결론을 짓기 일쑤다. 마지막 끝날 시간이 다가오면 급하게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열고 다학제 협력을 위해 노력하자”는 말을 잊지 않는다. 이를 앞서 소개한 경계층 이론에 빗대어 살펴보면 서로 다른 분과 학문 영역간에 존재하는 경계층까지도 가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매운 고추의 성분이 물에 있어 기름 영역으로 이동하는 것은 물 보다는 기름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속한 분과 학문 영역보다 더 좋아해 가고 싶은 다른 분과 학문이 없는데 어떻게 분과 학문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층으로 이동할 수 있겠는가. 경계층까지 이동하기 보다는 멀리서 다른 분과 학문을 바로 보고 소리 지르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것도 자신이 속한 분과 학문이 더 귀하고 가치가 높다는 얘기를 외치면서 겉으로만 마치 다른 분과 학문을 고려하는 척 하는 것이다. 다학제 융합은 어쩌면 영원이 일어나지 못할 기적과 같은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분과 학문이 본격적으로 생기기 시작한 것은 계몽주의 시대였다. 계몽사상은 무조건 옳은 사상이라고 믿었던 학창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뚜렷하게 이를 반박할 만큼 깊은 논리를 갖고 있지 못하다. 다만 언제 부터인가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에는 쉽게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 계몽이란 단어가 가진 밑바닥 의미에는 지식의 꼰대처럼 자신이 어두움을 깨쳐주겠다고 하니 괜스레 그것이 무엇이든 동의하기 싫어져 버렸다. 학문을 전문화 한답시고 세분화해서는 자신들만의 학문영역을 구축하고는 계몽이라는 명목으로 지식을 전파하려는 태도 같아 불편하다. 산산조각난 지식으로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이 세상 지식 중에 누군가의 어두운 무명을 깨쳐줄 만한 것이 있기는 한 것인가 의심이 들고 자신들 분과학문의 지식만이 계몽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아 믿음이 사라진다. 그러다 편협한 지식으로 복잡한 세상의 문제를 만나 해결에 난관을 겪자 그제야 다학제 융합을 하자고 한다. 하지만 제 버릇 남 못준다. 말은 열려 있는 마음으로 하자고 하지만 여전히 자신들이 중심이 되고 주도하는 방식을 고집한다. 자신들이 여전히 계몽할 수 있다는 착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계몽이 일어나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구심점 힘이 전체를 지배하듯 언제나 옳은 절대지식 같은 것은 애당초 없다. 분과 학문이 세상의 모든 문제들에 답을 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여러 조건들을 가정하고 상황을 극단적으로 단순화 한 후에 분과 학문의 한계 속에서 만든 해법을 세상의 진리인양 제시한다. 과학기술 사회에서는 그런 해법이 통하기도 하며 통하는 길을 기어코 찾아 적용하는 권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수도꼭지에서 나와야만 안전한 물이라고 믿는 것과 같다. 그들이 만든 지식꼭지란 틀인 저널을 통해 나와야만 믿을 수 있다는 철칙을 고수한다. 그러니 늘 그들만의 합리로 방어기작을 준비한다. 분과 학문은 본질상 구심점이 확실해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힘을 자신들 논리의 중심으로 끌어오려 노력한다. 분과 학문 정체성 확보를 위한 자구책이기도 하다. 유전자 연구 분과 학문이 세상 생명현상을 유전자로 설명하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자신들 분과 학문의 중심과 세상 이치의 중심을 맞추는 노력이다. 이런 분과 학문 이론의 합리성을 대변해서 변호하는 이론이 있었다. 아인슈타인이 1905년 발표한 특수 상대성 이론이다. 그의 편미분방정식은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세계의 시간과 공간을 변수로 전개되었지만 로렌츠 변환으로 바꾸니 그가 상상한 지오데식 세상이 되었다. 현실이 상상 속 기하 세계로 옮겨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아인슈타인의 천재성을 발견할 수 있다. 현실 세계에서는 힘으로 설명할 수 없었던 현상들이 그가 상상한 변환된 세계에서는 설명가능해진 것이다. 그가 이해하는 방향으로 힘이 완벽하게 작동하는 기하학적 세상을 찾아낸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만든 지오데식 세계는, 분과 학문의 구심력이 완벽하게 작동하는 분과 학문 영역을 연상하게 된다. 분과 학문은 연역법을 통해 기반을 마련하고는 특수 상대성 이론을 만나 학문의 합리성을 완성하는듯 보인다. 특수 상대성이론이 만약 절대적으로 옳다면 분과 학문도 비판하기 힘든데 분과 학문이 통하는 좁은 범위 영역으로 어떻게든 변환시킬 수만 있다면 분과 학문의 절대성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복잡한 세계를 연구하기 위해 분과 학문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대안없는 학문의 길인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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