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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단 Jul 30. 2024

빵 하나 구웠을 뿐인데

지식인이 되는 일상

빵 하나 구웠을 뿐인데


밀을 빻아서 밀가루를 직접 만드는 사람은 없겠지만 밀가루 사서 반죽하고 이스트 효모를 넣고 적당한 온도에서 몇 시간 부풀게 하는 발효를 거친 후 오븐 또는 후라이팬으로 구우면 빵을 쉽게 만들 수 있다. 기대한 것보다 맛있는 빵이 된다. 밀이란 곡식으로 빵을 만든 것이다. 밀과 빵 모두 물질이지만 빵은 음식, 밀은 빵이란 음식의 재료가 된다. 밀이란 재료 외에도 물, 이스트 효모란 재료 그리고 오븐, 후라이팬 등의 도구가 필요하다. 밀이 빵이 되는 지식을 우린 하나 얻게 되었다. 밀이 빵이 되는 중간 과정들이 있다. 밀가루에 물을 섞어 반죽 덩어리를 만든다. 마른 밀가루와 반죽된 덩어리는 사실 같은 밀가루 이지만 전혀 다른 모습과 성질을 가지고 있다. 다른 두 모습을 통해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 올릴 수도 있겠다. 사람들도 한 곳에 모이기도 하지만 밀가루 처럼 금방이라도 흩어질듯 모여만 있는 경우도 있다. 신호등 앞에 잠시 멈춘 사람들은 신호가 바뀌면 금방 자기 갈 곳으로 간다. 마치 밀가루를 훅 불면 먼지처럼 어디론가 날아가는 것과 유사하다. 대신 반죽 덩어리는 가족 또는 친밀한 동료 같다. 좋아하는 축구팀을 응원하는 하나로 똘똘 뭉친 서포터스의 모습 같기도 하다. 마른 밀가루는 목적 없는 단순한 집합, 군중으로, 반죽 덩어리는 원팀, 공동체 등이 연상되는데 개념으로 확장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밀가루는 한 덩어리로 만들기 위해서는 물이 필요하다. 물이 없을 때는 서로 붙지 않고 밀쳐내던 밀가루 입자 사이의 관계와 물을 머금은 후에 달라 붙는 관계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비슷한 현상을 유리창에 마른 종이를 붙이면 바로 떨어져 버리지만 종이에 물을 적셔서 가져다 대면 붙게 되는 것에서도 발견한다. 과학용어를 이용해 설명하지 않더라도 물은 물질이 서로 붙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밀가루 반죽 현상과 유리창과 종이가 붙는 현상을 연결시키는 논리를 찾아낸 것이다. 물질을 다루면서 지식, 개념, 논리를 찾고 알게 되는 경험을 한 것이다.


그런데 밀가루로 빵을 만든 후에는 자연스럽게 쌀이 떡이 되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밀과 쌀 모두 곡식인데 밀로 만든 빵과 쌀로 만든 떡은 왜 맛이 다른지 궁금해진다. 그럼 만드는 과정에서의 차이를 찾게 되는데 밀가루에 이스트 효모를 넣는다는 것을 알게 되고 또한 빵은 굽지만 떡은 찐다는 차이도 발견한다. 빵이 되는 여러 과정과 떡이 되는 여러 과정을 비교하고 각각 어떤 반응들이 있는지 파악하면서 분석하기도 한다. 과학 행위를 한 것이다. 관찰로 출발해 왜 라는 질문을 하고 과정이 어떤 체계를 갖추었는지 연구한 것이다. 이후 밀가루 반죽을 하는 물의 양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이스트를 조금 또는 많이 넣었을 때 또는 아예 넣지 않았을 때 빵의 성질, 이스트 발효 시간을 바꾸면서, 오븐의 온도와 시간 등을 변화시키면서 굽혀진 빵의 맛을 비교하면 이것이야 말로 빵 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


빵 굽는 과정을 통해 지식이 되기 위해서는 개념과 논리 그리고 이를 생각해내는 과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 보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상의 여러 활동을 통해 부지부식간에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과학 활동을 함으로써 지식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밀이 빵이 되는 과정을 다시 살펴보면 물질, 개념, 논리, 지식, 과학이 어떤 것인지 이해되는데 빵을 만드는 사람을 빼고는 그 어떤 것도 설명하기 어렵다. 빵을 만들었으니 요리사이기도 하고 전문 요리사는 아니지만 집에서 간단하게 먹고 싶어 빵을 만든 일반인 또는 여러 조건에 따라 빵의 다른 맛을 찾고자 실험한 연구자 일 수도 있다. 요리사, 연구자, 빵 굽는 일반인 모두 과학을 한 것이고 개념을 통해 지식을 만든 주체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빵 하나 구웠을 뿐인데 과학자도 되고 사회를 기여한 지식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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