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행복한 과학
현미경으로 보여줘야만 실천하는 사회
손바닥만한 작은 샘플이라도 현미경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은 극히 제한된다. 현미경으로 한번 본 후 샘플을 다 보았다고 할 순 없다. 맨 눈으로 전체를 본 후 미세한 부분 확인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흠집을 찾아내어 이를 뻥튀기 하기에는 현미경만한 것이 없다. 맨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가의 첨단 현미경있으면 최고의 논문을 낼 수 있다고 믿는다. 장비없어 연구 못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과학자의 모습이다.
현실도 마찬가지다. 굵직한 현실은 당연하게 보여 간과되기 쉽다. 사회의 전체 모습과 연결되는 뚜렷한 근거없이 특정 사안에 집중적으로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은 분명 다른 의도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기후재앙 시기 이산화탄소 배출 당연히 줄여야 한다. 그런데 현실 속 대중의 실천은 어렵기만 하다. 일상 속 이산화탄소의 모습을 대중은 맨 눈으로 보아야 자신의 의지로 실천할 수 있다. 그런데 직접 보려 하지 않고 전문가가 보여준 이산화탄소의 모습만을 믿으니 유엔 실천목표가 어떠니 탄소중립이 어떠니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신 똑바로 차리고 보면 유엔과 탄소중립을 이루었다는 빅테크 기업들의 모습에는 이산화탄소는 단언컨대 없다. 단지 그들의 현미경으로 찍은 이산화탄소 마크만 뚜렷하게 찍혀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