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시대 언어
수수께끼의 결말은 싱겁게 끝이 나고 말았다. 아침엔 네발로, 오후에는 두발로, 저녁에는 세발로 걷는 것이란 스핑크스의 질문에 인간이라고 답하면서 살아 남아 왔었던 오이디푸스는 디지털 시대 스핑크스의 추가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죽음을 당한 것이다. 저녁의 세개의 발로 걷는 인간의 세번째 발이 무엇이냐고 묻는 스핑크스의 물음에 오이디푸스는 지팡이라고 멍청하게 답한 것이었다.
현대산업사회가 본격화되면서 오이디푸스는 사실 위험했었다. 인간의 세번째 발은 지팡이가 아니라 이미 언어로 변했기 때문이다. 인생의 필수품은 지팡이가 아니라 인간의 언어로 변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오로지 언어를 통한 소통으로만 지켜질 수 있다. 한번 소통하면 사회가 한번 변할 수 있으니 사회 구성원인 인간의 존엄성은 다름아닌 소통의 도구인 언어가 지켜주는 것이 틀림없다.
인간의 언어에는 말과 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은 소통이 꼭 말과 글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하나 들면, 경제소통의 도구가 무엇인가? 경제소통을 말과 글로 하지는 않는다.
소통은 받은 정보를 일부 버리는 ‘소’(즉, 소외)와 일부는 받아들이는 ‘통’의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받은 정보 모두를 우리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게 했다가는 아마 단 하루도 견디기 힘들것이다. 판단해서 버릴 것은 버리고 소중한 것만 받아들여 내것으로 삼는 것이 소통인 셈이다.
경제소통도 모든 것을 다 사지는않는다. 선택해서 좋아하고 나에게 중요한 것만 구입한다. ‘소’하고 ‘통’한다. 경제소통의 언어는 다름아닌 돈이다. 모든 것을 구입하지 않고 선택해서 좋은 것만 구입하는 역할을 사실은 돈이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교환의 도구이기도 하지만 가치의 기준을 돈이 제공하기 때문이다.
소통의 도구는 언어이다. 하지만 경제를 포함하는 다른 영역으로 소통을 확장시키려면 언어란 단어보다는 기호란 단어가 적합하다. 의미를 지니지 않지만 담는 그릇을 기호라고 한다. ‘나무’란 글에는 실제 나무가 들어있지 않다. 다만 우리가 ‘나무’란 단어를 나무를 의미할 때 사용하자고 약속한 것 뿐이다. 돈도 마찬가지다. 무인도에 홀로 사는 사람이 억만금을 가지고 있어도 의미가 없는데 경제소통할 사회가 없기 때문이다.
디지털시대 언어는 보다 본격적으로 기호로 변하고 있다. 디지털기호는 대화의 수단인 말과 글, 경제활동 도구인 화폐, 그리고, 가상세계를 표현하는 새로운 수단을 제공한다.
교육의 예도 살펴보자. 디지털시대 교육의 언어가 더 이상 학점과 학위가 아닐지 모른다. 교육에서 학점과 학위만큼 소통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있을까. 학점이란 언어(즉, 기호)없이 대학교 강의에서 수강하는 학생들을 열심히 경청하고 공부하게 할 수 있는 교수가 있는가? 하지만 디지털 시대 교육의 기호가 만약 바꿔 학점이 무너진다면 대학이 새롭게 변모하는 차원이 아니라 대학자체가 사라질지 모른다.
불쌍한 오이디푸스는 인간 세번째 발은 디지털 기호라고 답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