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하며 산다
일상은 ‘"어디쯤 거기’서 ‘대중인 그들’과 함께 있는 삶인데 요즘 일상이 편안하신지요?
만약 무인도에 고립되어 혼자 평생 살아야 한다면 사람들이 그리워 죽을 지경일텐데 간사하게도 대중 속에 묻혀 있으면 또 지겨워 죽겠다고들 한다. 그럼 다른 사람들, 대중 속에 묻혀 있는 사람은 무인도에 고립되고 싶은가? 그건 아니다. 대신 대중 속에서 자신이 띄고 싶다. 결국 말의 흐름을 따라가 보니 무인도에 고립된 사람은 대중 속에 있고 싶은데 그 이유는 대중 속에서 떠 튀고 싶은 것이었다.
개인은 대중 속에서 어떻게 띌 수 있나? 돈으로 띄워져서 튈 수 있다. 돈으로 산 명품으로 치장해 띨 수도 있다. 자수성가한 사람도 있지만 부모 잘 만난 자도 있다. 특출한 재능이 있어도 띠는게 가능하다. 경쟁에 능한 자들이다. 재능은 부족하지만 끈기를 갖고 한가지 일에 몰두해도 일면 가능하다. 무엇으로 띌지 또는 뜰지 각자 결정할 수 있다.
그런데 잊고 있는게 하나 있다. 일상의 가치다. 자신을 띠게 만드는 길은 각자 선택할 수 있지만 마음껏 자신을 띄운 다음 또 다음에 욕심껏 띠려면 반드시 일상 속 그들로 돌아와야 한다는 거다.
그렇게들 튀고 싶을까? 지금 세상을 보면 드는 생각이다. 저렇게까지 라는 의문을 가져보지만 또한 나라고 뭐 특별히 나은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난 남이 띄게 돕는데 좀 재능이 있는데 라고 스스로 위안을 해 보기도 한다. 한 움큼 밖에 안되는 권력으로 사람들 모아 저렇게까지 튀고 싶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짜증 나다가도, 저들 권력을 보니 그래도 나 자신이 헛살고 있지 않다는 확신이 들어 저들에게 오히려 고마워해야할까 싶기도 하다.
이래 저래 일상이 바쁘다. 한쪽은 튀려고 다른 쪽은 뜨려는 사람들 덕분에 자신을 돌아보기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