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팀의 벤치를 보라, "11+17"의 힘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의 갯수는 무한 개지만 난 그 중 딱 하나에 관여하고 있다. 즉, 딱 하나만 제외하고 모든 경기에서 난 어쩔 수 없이 후보 선수다.
후보 선수라고 서운해 할 필요없다. 나 뿐 아니라 제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다르지 않다. 직접 뛰고 있는 경기에서 활약의 정도야 다소간 차이가 날 수 있지만 그래봐야 세상 다른 모든 경기에서는 후보라는 것에는 다를게 없다.
축구 경기에서 공을 갖고 있는 선수는 그 순간 만큼은 다른 모든 선수, 코치진과 관중의 시선 모두를 갖게된다. 그렇지만 공을 패스하든지 상대팀에게 뺏기는 순간 쏠렸던 시선은 사라지고 만다.
그런데 축구를 재밌게 보려면 경기장에 가서 직접 보는 것인데 TV중계와는 달리 공을 갖고 있지 않지만 나름 열심히 뛰고 있는 선수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선수는 공을 갖고 있는 선수 못지않게 열심히 무언가 모색하듯 경기에 임하고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공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열심히 공격의 활로를 찾는 선수의 움직임은 그 순간 공을 갖고 있는 선수에게 영향을 준다. 또한 공을 갖고 있지 않았을 때의 여러 생각이 실제로 공이 왔을 때 결정적인 도움이 되기도 한다.
벤치에 앉아 있는 교체 대기 선수도 마찬가지다. 공을 가진 동료 선수 뿐 아니라 공을 갖지 않았지만 활로를 모색하는 선수, 그리고, 심지어 상대팀 선수의 움직임을 계속 관찰하면서 자신의 몸을 준비시킨다. 몸만 벤치에 있을 뿐 함께 경기를 뛰고 있는 것이나 진배없다.
K리그의 경우, 한 경기 등록 선수는 28명이다. 이 중에서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는 11명이다. 28명 중에서 11명을 골라서 90분 경기에서 어떤 순간 경기장에 내 보내는지가 경기의 승패를 좌우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벤치에서 함께 뛰는 17명의 몫도 분명 있다. 90분 경기에서 매 순간 변화하는 17명의 움직임을 우리는 팀의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매순간 변하는 11명+17명의 조합을 팀의 “구조”라고 한다. 팀을 팀이게 하는 기능은 “11”이 아니라 “11+17”이 하는 것임을 한 순간이라도 잊어서는 안된다.
드디어 감독의 교체 신호가 오면 경기장에서 들어간다. 비로소 경기에 들어온 것이지만 실은 이미 경기를 뛰고 있었고 경기장에서 실력을 발휘한다. 강 팀의 벤치는 뭐가 달라도 확실히 다른데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들의 든든한 환경이 되어줄 수 있다. 경기장 선수와 벤치란 환경은 한 몸, 한 뜻이다. 여기에 감독과 코치가 합쳐지고 서포터즈와 경기장 관중이 힘이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