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21세기에 만학 이야기를 전하는 20세기 샐러던트
86. 나의 생
사람의 생애는 말로 다 옮기지 못할 고요한 무게가 있다. 내 생 역시 그러했다. 어린 시절, 나는 부모가 살아 있음에도 부모의 품에 머물 수 없는 아이였다. 우리 집은 가난했고, 자식들은 많았다. 친척 집에 대대로 이어 줄 자식이 없어서 그 두 집안의 형편과 사정이 얽혀 어린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이 아닌 아들’로 새로운 집안의 문턱을 조용히 넘어가야 했다.
사람들은 그 선택이 옳았다고 말했지만, 아무도 나의 마음에서 떨어져 나가는 조각들을 보지 못했다. 그때 나는 아직 이유를 물을 나이도, 설명받을 힘도 없었다. 그저 어른들의 결정에 따라 어떤 생은 설명 없이 떠밀려 나가는 것임을 어린 몸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친척 집의 문은 늘 무겁게 닫혀 있었다. 그 집에서 나는 잘해야 했고, 조심해야 했고, 기대에 맞춰야 했다. 내가 있어야 했던 것은 ‘아이가 아니라 집안을 잇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기대를 읽을 줄 아는 아이였고, 그 기대를 저버릴까 두려운 아이였다. 그래서 기쁨보다 책임을 먼저 배우며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사람의 생은 누구에게나 비밀스러운 어둠을 품고 있다. 말없이 바라보는 눈빛 속에서 나는 아이가 아니라 ‘의미’였고, 따뜻함을 구하는 마음보다 도리를 지키는 마음이 먼저 앞섰다. 그렇게 나는 너무 어린 나이에 기쁨보다 책임을 먼저 배우고, 사랑보다 조심을 먼저 익혔다. 원하는 마음은 곧 죄가 될 것 같아 숨어야 했고, 기대하는 마음은 금물이라 생각하며 자랐다. 그렇게 내 영혼 깊은 곳에는 말없이 울고 있는 아이 하나가 자리 잡았다.
세월이 흘러, 나는 어른이 되었고 사람들은 내 삶을 성공이라 불렀다. 지위도 있고, 신뢰도 있었고, 믿음의 자리를 성실히 지켜온 사람이라 말했다. 그러나 높은 자리에는 높은 자리만의 고독이 있었다. 사람들이 나를 존경한다 해도 내 안에서 오래된 아이가 쉬 울음을 참지 못하는 날들이 있었다. 믿음 안에 살고 있어도 마음속의 결핍은 가끔 주님의 품에서조차 몸을 숨기고 싶은 그늘이 되었다.
세상은 나를 강하다 했고, 사람들은 나를 단단하다 말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만큼은 오직 하나의 외로운 아이일 뿐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한 줄기 깨달음이 있었다. 나는 결코 버려진 아이가 아니었다. 그저 두 집안의 마음 사이에서 어른들의 사정을 떠안아야 했던 작은 존재였을 뿐이다.
내가 부족해서 보내진 것도 아니고, 사랑받지 못해서 밀려난 것도 아니었다. 그 진실이 내 영혼에 닿는 데 긴 세월이 걸렸을 뿐이다. 내 생을 흔들어온 결핍과 고통은 하나님께서 나를 깊은 사람으로 빌으시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외로움이 없었다면 누군가의 아픔에 이만큼 귀 기울일 수 없었을 것이고, 결핍이 없었다면 기도의 숨소리가 이토록 절실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고, 내 생은 무너진 적이 없었다. 누구도 모르는 곳에서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계셨기 때문이다.
과거를 부끄러움으로 보지 않는다. 결핍은 생의 흉터가 아니라 내 영혼을 하나님께로 늘 기울게 했던 은혜였다. 돌아보면, 양자로 살아낸 그 길은 고통의 길이면서도 은혜의 길이었다. 그 길 끝에서 나는 사람의 사랑보다 더 깊고 사람의 품보다 더 넓은 주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긴 외로움의 세월이 있었기에 주님이 주신 빛을 이만큼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그 고단한 걸음 하나하나가 오늘의 나를 세웠으며, 내 생은 그 자체로 그 어떤 생보다도 깊은 빛을 품고 있었다.